['2015세계 책의 수도 인천' 기획] 나는 제주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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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세계 책의 수도 인천' 기획] 나는 제주를 알지 못한다
  • 이희인 여행가 겸 작가
  • 승인 2015.02.27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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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인의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4. 제주 한라산




 
나는 제주를 알지 못 한다
 
- 찾아간 곳 / 제주, 한라산
- 읽은 책 / 현기영, <순이 삼촌>
 

제주로 향하는 길은 봄으로 가는 길이었다.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넘어가면서 마침내 긴 겨울의 터널이 막 끝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해 겨울은 길고도 혹독했다. 삶의 방향을 잠시 잃어버린 나는 늘 그랬듯이 여행에서 길을 구했다. 신년 초에 인천항에서 배를 타 만주로 넘어갔고 얼어붙은 몽골과 시베리아의 들판을 헤치고 다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시 배를 타고 동해안을 건너 묵호항에 도착하니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머뭇거리다가 집으로 가지 않고 그 길로 바로 포항으로 내려갔다. 겨울 울릉도에서 디저트 여행을 하며 남은 겨울을 떠나보낼 생각이었다. 포항에서 이틀을 허비했지만 울릉도의 뱃길은 열리지 않았다. 기상 상황 때문에 파도가 높아 일주일에 한번이나 배가 뜰까말까 한다고 했다.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섬에서 나올 일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때, 늘 한 번 들리라고 말하던 제주 사는 친구의 부름이 들려왔다. 울릉도를 포기하고 포항에서 진주, 삼천포로 넘어왔고 제주도 가는 밤배를 타게 되었다. 큰 배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어디어디 산악회의 깃발이 대합실에 나부꼈다. 그 많은 산객들이 객실에 앉아 밤새 시끄럽게 술판을 벌이다가 새벽녘에야 꾸역꾸역 자리를 잡고 새우잠을 청했다. 그 틈에서 혼자 떠다니는 나그네만 잠들 수 없었다.
 


 
 
이른 아침 제주에 내려 친구에게 전화를 해 한라산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정오 전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야 입산이 허가되기에 친구는 서둘러 짐을 챙겨서 왔다. 만주와 시베리아를 지나온 내 배낭엔 겨울 산행도구가 없었는데 녀석이 아이젠이며 장갑, 간식까지 다 챙겨왔다. 아무래도 영실계곡에서 어리목으로 넘어가는 게 좋겠지? 차를 몰고 1100고지 도로를 건너 가는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고, 곧 눈길에 미끄러져 길 밖으로 튕겨나간 차들도 보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는 서울의 공기업에 다니다가 제주로 발령이 나 가족들과 함께 제주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다. 한 달에 한 번은 한라산에 오른다는 녀석은 제주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그 두 주일 전에도 한라산을 탔는데 그땐 눈이 없었다고, 오늘은 눈이 제법 올 것 같다고 등산화에 아이젠을 부착하며 녀석이 말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 편에서도 극찬한 바 있는 영실계곡의 아랫녘에 까맣게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눈보라에 희붐하게 가려진 계곡 아래로 까마귀 떼가 떠다녔다. 제법 두터운 눈발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던 우리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두런두런 속삭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넌 왜 그랬니? 그때가 참 좋았지? 그 녀석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등등. 눈이 제법 내렸지만 큰 불편함 없이 어리목까지 넘어왔다. 그 저녁엔 녀석의 아내와 어린 딸들과 함께 제주 사람들만 안다는 작은 포구의 이름 없는 횟집에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노형동과 연동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새벽까지 차수를 늘려 술을 마셨다. 새벽에 여행자 숙소에 돌아와 점심 무렵에야 잠에서 깼다.
 
 

 
 
이튿날은 혼자 제주를 떠다녔다. 제주라면 한 해 한 번은 오는 곳인데, 녀석이 내게 강력히 권한 곳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제주 돌문화공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은 좋이 걸리는 곳이었다. 공원 앞에 내렸는데 한겨울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고 바람만 거세었다.
 
참으로 이상한 공원이었다. 현무암을 비롯해, 제주의 온갖 돌로 그렇듯 거대한 볼거리를 꾸며놓을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돌과 지질학을 테마로 한 박물관, 전시관도 마련돼 있었다. 공원은 그때에도 아직 미완성인 채여서 2020년을 완공 목표로 한쪽에서는 여전히 공원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스산한 공원에 눈보라가 날려 돌출한 돌하르방의 눈가와 콧가에 모로 쌓였다. 세상의 온갖 스산함을 다 갖다 놓고 전시해 놓은 형국이었다.
 
나는 그 공원을 얼마 뒤 영화 스크린에서 다시 만났다. 한 달쯤 뒤, 화제를 불러 모았던 독립영화 <지슬>의 많은 장면이 바로 돌문화공원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감독의 작품답게 흑백의 농도 짙은 화면은 한 컷 한 컷이 강렬한 그림이자 사진 작품이었다. 자막을 따로 넣어야 할 만큼 농도 짙은 제주 방언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의 리얼리티를 높여주었다. 무엇보다 영화 안에도 스산함이 가득했다. 제주 양민학살을 소재로 한 만큼 끔찍하고 그로테스크 한 장면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 유머와 익살도 섞였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역시나 ‘스산함’이었다.
 
 
돌문화공원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이 쓴 <순이 삼촌>을 떠올렸다. 그 아름다운 섬에 해방직후 벌어진 끔찍한 학살의 기억은 소설에도, 영화에도, 돌문화공원의 스산함 속에도 모두 깃들어 있었다. 대학 때 읽은 <순이 삼촌>의 다음과 같은 구절은 내 기억에 제주에 관한 지워지지 않는 강한 영상을 남겨 놓았다.
 
자정이 넘어 큰아버지가 우리들을 깨워 세수하고 오라고 방 밖으로 떠밀었을 때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싸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 집 저 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 오르곤 했다. 한날 한시에 이 집 저 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중략) 아, 한날 한시에 이 집 저 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성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 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5백 위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현기영, <순이 삼촌>에서)
 
빨치산 토벌을 구실로 서북청년단과 국군에 의해 마구잡이로 자행된 양민 학살의 비극이 오랫동안 쉬쉬 하며 묻혀갈 즈음, 제주 출신 작가 현기영은 소설로써 그 역사를 증언했다. 한날 한시에 총살당한 5백여 명의 유족을 제사지내기 위해 온 마을에 일제히 시작되는 곡성의 풍경. 그 묘사가 하도 선명하고 충격적이어서 오랫동안 나는 그 공감각적 이미지를 제주의 이미지로 못 박을 수밖에 없었다. 돌문화공원의 스산함은 그 느낌을 고스란히 되살려 낸 것이었다. 함께 대학에서 <순이 삼촌>을 읽었을 녀석이 왜 돌문화공원에 가보라 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사흘째 되는 날, 날은 많이 개었다. 오랜만에 성산을 찾아가 일출봉에 올랐다. 그리곤 일출봉 아래 두어 번 간 적이 있는 경미휴게소에 찾아가 그 집의 문어라면을 먹었다. 소설가 윤대녕의 에세이에서 읽어 기억해 두었다가 간신히 찾아낸 집인데, 예전에 함께 갔던 친구들도 모두 만족해 한 집이었다. 여전히 라면에 큼직하게 들어간 문어도 실했고 한라산 소주에 곁들인 해산물 회 한 점도 바다 맛이 깊게 났다. 해삼 한 점에 봄 바다 냄새가 차갑게 피어올랐다.
 
사실 나는 제주에 대해서 여전히 잘 알지 못하겠다. 경상도, 혹은 경상도 사람하면 이런저런 이미지와 느낌이 있고, 전라도나 충청도, 서울도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제주도와 제주 사람들에겐 그런 게 딱히 없다.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거나. 누구나 주변에 한두 사람쯤 제주에 지인이 있을 것이고 여행의 추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에 대해 확실히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심지어 그 곳을 고향으로 두었거나 살고 있는 사람까지도 말이다. 올레길이 뚫리고, 중국인들이 땅을 너무 많이 사들여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제주도. 남국의 푸른 바다를 상상케 하는 그 땅에 70여년 전 끔찍한 학살의 역사가 있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땅인 것이다.
 
가까운 우도로 넘어가 멀리 우뚝 선 한라산을 보았다. 산정엔 아직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는 온통 봄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긴긴 겨울여행 끝에 거기서 마침내 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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