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5년에 지은 고택 도심 한복판에 꿋꿋하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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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5년에 지은 고택 도심 한복판에 꿋꿋하게 남아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1.30 0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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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좌3동, 300년 전 마을 최초의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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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서구 가좌3동 원적산 네거리 방향에 300년 된 고택이 있다. 주변에는 공장과 음식점이 있고, 그 옆으로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린다. 가죽나무 수십 그루가 울타리 친 듯 높이 자란 곳에 앉은 기와집 한 채. 심재갑씨(인하공전 명예교수)의 10대조가 1715년 지은 마을 최초의 기와집이다.
 
이 집은 1940년에 안채를 헐고 다시 지었는데, 압록강에서 우리소나무를 가져와 서까래와 기둥을 세웠다. 병자호란 때는 영흥도에 있는 임경업 장군 사당으로 있던 곳의 기와를 배로 실어와 지붕에 얹었다. 집을 다시 지을 때는 3년이 걸렸고, 이때 개성목수들이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엮어서 튼튼하게 지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이 몰리면서 이 집에 20가구 이상이 살았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농촌계몽운동의 하나로 야학을 지도하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인천고, 제물포고, 인일여고, 이화여고 학생들이 방학 때 찾아와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굴곡진 우리 역사와 300년을 함께 지내온 기와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사랑방과 그에 딸린 방, 왼쪽에는 헛간과 외양간이 있다. 안채는 정 남향에 위치해 역사적 증인으로 버티고 서 있다
 
대문 앞을 기웃거렸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종이박스를 든 할머니가 300년 된 고택이 맞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 할머니는 고택 옆에서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앞뒤마당 꽃밭을 돌본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노인이 아들과 살면서 이 고택을 돌본다며 지금은 자는지 꼼짝 안 한다고 전했다.
올해 78세가 된 김현주 할머니는 고택 앞마당과 뒷마당에 있는 나무를 다 꿰고 있었다. 가지도 잘라주고 넝쿨도 올리고 꽃도 심는다고 했다. “수선화 피고, 목련 피고, 작약 피고… 수선화 올라오는 거 보여줄까?” 할머니는 낙엽을 발로 쓱쓱 치우더니 파랗게 올라오는 수선화를 가리킨다. “수선화 나오잖아. 봄에 나뭇잎을 탁탁 긁으면 풀이 얼마나 많이 올라와 있는지 몰라. 이건 골담초, 앵두, 주목, 오갈피, 이건 능소화… 꽃이 피면 이 집은 정말 화려하고 예뻐. 저건 사철나무, 치자, 연산홍… 여기 죄 올라가는 건 더덕이야. 별 거 다 있지? 목련 필 때는 집이 참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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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는 2001년부터 이 집에서 밭을 일군다. “집 주인은 어쩌다 한 번씩 오지. 이 집은 헐리지 않을 것 같은데. 세를 놓겠어, 팔겠어. 그냥 두고 보는 거지. 전철도 지하로 다닐 거잖아”라며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곳을 가리켰다.
집은 사람이 그 안에 살아야 더 오래 튼튼하지 않을까. 집 주인 심재갑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물으니 심씨는 “개인적으로 잘 관리할 겁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주인은 아니지만 할머니는 고택에 찾아올 봄이 기다려진다. “뽕나무 사철나무도 있구. 울타리는 쥐똥나무로 둘렀는데 비둘기가 따먹어. 그 비둘기를 고양이가 잡아먹으려고 하고. 새매가 돌아다니니까 고양이가 덜한 것도 같구. 봄이 되면 퇴비도 주려고 이렇게 모아놨지”라며 나무 뒤에 있는 퇴비를 보여주었다. “조금 있으면 동백꽃이 예쁘게 피어. 치자, 연산홍, 백합이 쪼옥 피면 얼마나 화려한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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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좌동 고택은 지난 2008년 가좌동 재정비촉진지구에 포함돼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람들은 고택을 마을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가좌2동 주민자치센터와 ‘희망을만드는마을사람들’,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등의 단체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만들기사업 일환으로 역사적 의미와 마을문화공간을 위한 주민참여 방안을 위한 주민강좌도 열었다.
또 몇 년전에는 경인고속도로 직선화 사업으로 헐리게 된다는 말도 나왔다. 확정된 사실을 아니었지만, 서구 공촌동 시문화재 ‘심즙신도비’ 곁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경인고속도로 직선화 사업은 무산됐다.  그리고 300년 고택은 지어진 곳에 그대로 지금 꿋꿋하게 버티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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