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끊어내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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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끊어내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 최원영
  • 승인 2024.04.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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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53화

 

 

부모 자식 사이나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도 집착은 사랑의 최대 장애물입니다. 집착을 끊어버리는 것이 힘든 것은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집착을 스스로는 집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는 겁니다. 그러나 상대에게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의 고통이 됩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장웅연)에는 ‘조주록’에 실린 조주선사의 화두가 나옵니다.

 

가르침을 받겠다고 객승이 조주 스님에게 말했다.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주는 이렇게 말한다.

“내려놓아라.”

그러자 객승은 손에 쥔 염주와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내려놓아라.”

이번에는 바랑마저 벗어던졌다. 그러자 조주 스님이 다시 말했다.

“내려놓아라.”

“스님, 다 내려놓았는데 무얼 더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거라.”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의 언행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려놓았는데도 계속 내려놓으라고 하니 말입니다. 다 내려놓고 났더니 이번에는 짊어지고 가라고 합니다.

마음까지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던 온갖 기준과 온갖 배움과 온갖 분별을 모두 내려놓는다는 의미라고 저는 해석해봅니다. 그렇게 내려놓고 나면 어느 누구를 만나도 또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사람이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자는 겉만 내려놓았습니다. 다 내려놓았다고 하자 스님은 ‘그럼 짊어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깨달음에 이르기에는 멀었다는 것이겠지요.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준들, 즉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여기는 판단이나 믿음이나 그동안 배워왔던 지식과 경험들로 인해 형성된 그 기준만으로 세상을 보는 한, 자신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들이 ‘틀린’ 것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그러니 새로운 것을 통해 배울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제자는 배우러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승은 어쩔 수 없이 여기선 아무리 가르쳐도 배울 게 없다며 네가 가진 기준으로 가득 찬 짐 보따리를 다시 짊어지고 떠나라고 할 수밖에요.

이 책을 쓴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보탭니다.

 

“가르침을 받겠다는 마음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된다. 삶의 길은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 어디로든 이어지고 어떻게든 살아진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해서 잘못한 것 또한 아니다. 어느 길에나 그만의 언덕이 있고 또한 쉼터도 있다. 지식과 기술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배울 수 없다. 교훈은 한순간의 사탕발림이고 책 속 인생은 책일 뿐이다. 오직 후회 속에서 알게 되고 절망 속에서 깨닫게 된다. 몇 번쯤은 인생이 부서져 봐야 한다, 그 잔해에서 진짜 인생을 건진다.”

“남들의 잘난 성공담을 들을 시간에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부딪히는 것이 현명한 처세다.”

 

세상에는 배워서 아는 것이 있지만 경험해 보아야만 아는 것도 있습니다. 예컨대 남자들은 산모의 진통이 얼마나 아픈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너무도 외로워서 방안에 틀어박혀 죽음까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의 심경을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공짜가 없습니다. 그런 아픔을 겪고 다시 일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아팠던 경험들이 대나무의 마디가 되어 하늘을 향해 더 높이 자라는 힘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저자는 ‘후회 속에서 알게 되고 절망 속에서 깨닫게 된다고, 그래서 몇 번쯤은 인생이 부서져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 아픈 경험들이 그로 하여금 내려놓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우게 합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이고, ‘틀리다’고 믿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옳고 그르다는 분별심을 내려놓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호기심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그를 향해 귀를 열고 눈을 뜨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배웁니다. ‘너’로부터 말입니다.

집착은 가시가 되어 상대를 괴롭힌다는 것, 동시에 그 가시가 ‘나’에게도 너무나 아픈 상처가 된다는 사실, 집착은 나의 기준을 내려놓지 못해서 생긴 병이고, 이 병이 나와 너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이치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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