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주소록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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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주소록을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4.02.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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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45화

 

 

친구들이 유독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대부분이 무척 바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피면 대부분 사업이 잘 되거나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소속된 단체도 많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바쁘지요.

그러나 자신의 사업이 무너지거나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모였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사라지곤 합니다. 그 사람의 사업과 자리를 보고 밀려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잘 되어 있을 때는 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내가 무너졌을 때는 썰물처럼 사라지는 것이 삶의 실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삶이 그런 것이라고 하니까요. 바쁘면 바쁠수록 주어진 24시간 동안 특별한 한 사람에게 낼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러니 겉만 훑고 다음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할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깊은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내가 외로울 때 전화 한 통 걸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이유입니다.

인터넷 자료 중에 ‘세계 유명인들의 후회’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쁜 사람과 친구하지 마라’는 말은 돌아가신 지인이 병상에서 동생에게 한 말이다. 임종을 앞두고 친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왜 그런 말을 남겼을까?

세계적인 갑부인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이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이 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를 했다고 한다. 임종이 가까워져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자신에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더라도 그렇다. 임종을 앞둔 이반 일리치가 괴로웠던 건 용변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쾌하고 견디기 힘든 이 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하인인 게라심이었다. 그가 생각할 때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그를 가엾게 여기는 사람은 게라심 한 명뿐이었던 거다. 잠자러 갈 생각도 않고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게라심에게 미안함을 표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위해서 수고 좀 못하겠습니까?”

얼마 전 세계적인 갑부인 워렌 버핏의 일화가 매체에 보도되었다. 미국 내브래스카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이 경제전문지 《포춘》이 주최한 <여성과 일>이라는 주제의 강연회에서 그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의 위치에서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버핏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많이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까, 나를 사랑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면, 그게 성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세상의 모든 부를 다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건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버핏은 이어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덧붙였다.

“오마하에 벨라 아이젠버그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어느 날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워렌,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매우 더뎌요. 왜냐하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질문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나를 숨겨줄까, 라고 말이에요. 당신이 70세나 75세가 됐을 때 주위에 당신을 숨겨줄 만한 사람들이 있다면 성공한 거예요. 반대로 아무도 당신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 돈이 얼마나 많든 저는 상관 안 해요. 그러면 당신은 성공하지 못한 거니까요.”

 

잠시 제 휴대폰에 들어있는 주소록을 열어보았습니다. 수백 명의 이름이 있더군요. 외로움이 밀려들 때 누구에게 전화를 걸까, 라는 마음으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내 실망합니다. 내가 외롭다고 전화하기에는 왠지 편한 사람들이 무척 적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동안 친구들에게 무심했다는 것이 들켜버린 것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이 외로울 때 달려간 적이 없었으니까요.

죽을 때 내 곁을 지켜주는 벗이 있으려면 살아 있을 때 아린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가 지쳐서 주저앉아 있을 때 곁을 지켜주는 과정이 차곡차곡 기억 속에 쌓여있어야 비로소 죽음의 순간에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 듯싶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휴대폰 속에 저장된 친구들에게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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