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연출과 연기로 만나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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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기’의 연출과 연기로 만나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
  • 윤세민
  • 승인 2015.12.0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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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의 영화읽기(5)] 가족 감동 뮤지컬 <아버지: 목련을 기억하다>

오랜만에 가슴 훈훈해지는 뮤지컬 한 편을 만났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소박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처음엔 먹먹한 가슴으로 출발해 결국엔 훈훈한 가슴으로 돌려주는 소극장용 가족 감동 뮤지컬 <아버지: 목련을 기억하다>.

스튜디오 반의 2015 가족극 레퍼토리 <아버지: 목련을 기억하다>는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 이도형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로, 언젠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기억 속에서 스러지지 않는 존재와의 추억, 사랑, 아픔과 교감하는 이야기를, 잔잔하지만 진지하고 아름답게 펼쳐낸다.

 

가족은 놓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소중한 존재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로 늘어남에 따라,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가족 개념은 물론이고, 삶과 죽음을 대하는 여러 가지 다른 패턴들이 발생하고 있다. 시대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는 오늘, 우리는 우리를 지탱시켜 줄 누군가를, 아니면 그 무엇인가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족은 가족이다. 아무리 ‘가족 해체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가족은 우리를 지탱해 주는 기둥임은 분명하다.  


작품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물리적인 뇌기능? 그렇다면 물리적인 뇌기능에 의해 우리에게 남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니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잊지 못할 그 뭔가를 남기려는 의도적인 해석은 아닐까.

알츠하이머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이도형에게 가족은 놓치지 말아야 할 마지막 소중한 존재다. 아니 놓지 말아야 할 가장 소중한 기억이자 마지막 생존의 이유기도 하다.
 

작품은 이도형의 소멸되는 기억과, 그에게 영원히 각인돼 있는 존재, 우리가 소중히 지켜나가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비와 목련나무는 이도형과 아내 한다희를 상징하는데, 아련한 기억과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김성배 작가의 잔잔한 때로는 서늘한 어조로, 이율구 작곡가의 아름다운 선율로 펼쳐진다.  

 

‘더하기’ 보다는 ‘빼기’의 연출과 연기


홍인표의 연출은 ‘더하기’ 보다는 ‘빼기’에 주력한다. 그 안에서 베테랑 뮤지컬 배우인 아버지 이도형 역의 장보규, 어머니 한다희 역의 김선호 역시 ‘더하기’ 보다는 ‘빼기’의 연기로 함께 호흡한다. 그것은 아주아주 속 깊은 자제와 절제가 아니고선 그리 표현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경계의 미학이기도 하다.


사실, 평론가 개인 입장에선, 이 ‘더하기’ 보다는 ‘빼기’의 연출과 연기가 참 맘에 들기는 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걱정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상업적이요 선정적이지 않고서는 대학로 연극 바닥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세상 아닌가. 거기에 대중 관객의 얄팍한 호불호는 또 어떤가. 과연 오랜만에 만나는 작품성 좋은 이 작은 뮤지컬이, 억지로라도 ‘더하기’를 더해야만 그나마 관객들이 찾아들고 버티며 살아남을 텐데 하는 그런 걱정 아닌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가볍지 않은 주제로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이 작품의 분위기를 아들 윤수 역의 이두열, 딸 윤희 역의 배수정, 이 둘의 도전적인 열연으로 작품은 뜨거움을 유지해 나간다. 거기에 멀티남으로 등장하는 김영준의 감칠맛 나는 열심 연기는 관객의 편한 웃음을 유도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네 가족 구성원이 펼치는 갈등과 화해는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따뜻하게 관객의 가슴에 저며져 온다.

 

가족의 죽음, 슬프지만 그것 또한 인생의 한 과정


가족이 머무는 공간인 집, 그 집 안에 우리는 또 다른 집을 지으며 살아간다. 요즘에는 가족 사이에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골조를 세우고 벽을 채워 만드는 집, 그 집 안에 또 다른 집을 만들어놓고 가족조차 안으로 들이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는 나 아닌 타인에 대한 포용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요즘 세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가족 구성원의 죽음은 생활의 모든 게 달라지는 충격이다. 이들은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서로에 대해 고민하고 반목한다. 그러다가 서로를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건 역시나 ‘가족이라는 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족 구성원의 죽음으로써 그걸 알아가게 된다는 게 슬프지만, 그것 또한 인생의 한 과정임을, 가족이므로 그 아픈 과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그들은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을 관객의 마음에 심어주면서.


12월에 만나는 사랑과 가족의 의미 


스튜디오 반(叛)은 가족 해체 시대에 새로운 ‘가족상’(아니 원래부터 존재했고 영속적인 ‘가족상’이지만)을 만들어 감으로써 우리에게 가족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튜디오 반(叛)의 창작 뮤지컬 <아버지: 목련을 기억하다>는 12월 4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3관(쇳대박물관 지하1층)에서 공연된다.(문의 및 예약 010-6705-2882)


눈이 내리기 시작한 12월의 겨울이다. 이 12월의 겨울을 눈 녹듯 따뜻하게 해줄 이 작은 뮤지컬을 적극 추천한다. 연인과 가족이 함께 보며 새롭게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에.  

 

윤세민 / 경인여자대학교 영상방송학과 교수(언론학박사). 대학에서 스토리텔링, 시나리오 작법, 커뮤니케이션 등을 강의하며,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로서 주로 출판, 방송, 영화, 연극 등에 대한 평론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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