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으로 가는 길' 진해 '여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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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으로 가는 길' 진해 '여좌천'
  • 이창희
  • 승인 2013.04.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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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세상 진해를 찾아
벚꽃이 너무 아름다워 눈을 뜨기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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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로 가는 길에는 벚꽃이 요란하다. 수줍은 듯 꽃봉오리가 살포시 머금었더니 며칠 새 희디흰 속살을 한껏 뽐낸다. 다른 벚나무의 기세에 눌릴세라 앞 다투어 꽃망울을 활짝 핀다. 새하얀 꽃송이들이 겹겹이 포개고 얽히니 벚꽃 안개로 자욱하다. 만개한 벚꽃과 길섶 위에 떨어진 벚꽃 두덩이 화려하다. 도시 전체가 벚꽃 천지다.
 
진해군항제는 진해 전체가 벚꽃으로 휩싸이는 시기인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열린다. 이 기간 동안 진해는 벚꽃 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굳이 공원이나 벚꽃터널을 찾지 않아도 된다. 길가에 벚꽃 세상이다. 이해인 시인은 “꽃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향기에 취해 멀미가 난다”고 했다.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 향기에 취해 사람들은 함박 미소를 짓는다.
 
 
만개한 벚꽃도 아름답지만 한꺼번에 비 내리듯 떨어지는 벚꽃도 아름답다. 김영남 시인은 “쥐어뜯어 꽃잎처럼 바람에 흩뿌리겠네. 뿌리다가 창가에 보내겠네. 저 벚꽃처럼”이라며 벚꽃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10일 동안 하얀 물감을 뿌린 벚꽃은 사방으로 색을 흩뿌리며 사그라진다. 봄비와 바람에 벚꽃이 우수수 진다. 떨어지는 꽃에 닿으면 금세 하얀 색깔이 물들 것 같다.‘일 년 중 가장 좋은 풍경이 모춘 10여 일에 불과하므로 이때를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조선시대 문인 이덕무의 글이나 소동파가 노래한 ‘봄밤의 한 시간은 천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시구 모두 벚꽃이 떨어질 때의 허무함과 절묘하게 맞닿는다. ‘낙화유수’라고 했던가. 떨어지는 꽃의 한 순간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는 진한 아쉬움이 깃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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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 벚꽃은 가까이서, 멀리서도 봐도 다 좋다. 진해의 벚꽃은 제주도 원산인 ‘왕벚나무’이다. 꽃이 크다고 해서 왕벚꽃이 아니라 나무가 크고 꽃도 많이 피기 때문에 ‘왕벚나무’라고 한다. 일제는 진해를 영구 지배하기 위해 관광수나 가로수로 벚꽃 10만 500그루를 심었다. 광복 후 주민들은 군시설 등 통제구역이나 장복산이나 안민고개 등 사람이 가기 힘든 곳을 제외한 시내에 있던 벚나무를 일본 나라꽃인 줄 알고 모조리 없애버렸다. 1960년대에 관광도시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 꽃임이 판명이 되고 관광수로 결정이 나자 본격적으로 조경에 나섰다. 현재 30만여 그루 넘게 심어져 옛날보다 더한 ‘벚꽃의 고장’이 됐다.
 
제황산은 옛 이름이 부엉등 또는 부엉산이었다. 그런 것이 이 산의 북방에서 제황이 탄생한다는 속설이 전해지면서 제황산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산마루에 지금은 진해관광탑(진해탑)이 세워져 있지만 일제시대에는 일본의 러·일 전쟁 승전 기념탑이 서 있었다.
 
 
기념탑을 만들 때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향토연구가 황정덕씨가 쓴 [우리 고장 문화유산]을 보면 공사기간 중 일본인 감독관과 석공이 죽고 다치는 참사를 겪고 1929년에 준공했다. 밤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산신령이 나타나 “내 머리 위에 무거운 짐을 얹어놓아 몸을 쓰지 못하겠다. 영적을 보여주겠다”며 사라졌다.
 
 
다음해에 끔찍한 사고가 두 번이나 일어났다. 장복산 터널을 내려오던 열차가 알 수 없는 고장으로 터널 복판에서 멎고 말았다. 진해요새사령부 임시 공연장에서 어린이를 위한 영화 상영 중에 원인 모르는 화재가 일어나 일본인 관람객 105명이 불타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광복과 더불어 이를 해체 철거하고 공사비 1350만원을 들여 1967년 9월에 지금의 진해탑을 준공했다. 군함 윗부분을 모형으로 한 높이 28m의 9층 전망대에 서면 진해 앞바다와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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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탑에 오르는 길은 세 갈래이다. 정면에서 오르는 계단은 365개로 일명 ‘1년 계단’이라고 한다. 최근에 노약자나 다리가 불편한 이를 위해 진해탑까지 모노레일을 설치했다. 오른쪽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37계단과 38계단이 있다. 김수경 진해박물관장은 “일제가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과 전쟁에서 승리한 1905년인 메이지 37년, 38년을 기념하기 위해 계단을 만들었다”며 “철거를 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일제의 역사적 흔적을 가르칠 수 있어 그대로 뒀다”고 말했다. 나머지 한 갈래는 중앙시장에서 시작해서 동쪽에서 오르는 200계단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동물원이 있었다.
 
장복터널을 지나 진해의 입구인 파크랜드에서 진해여고까지는 여좌천을 따라 약 1.5㎞의 벚꽃터널이 펼쳐진다. 데크로드를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경관조명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밤에도 탐스런 벚꽃 세상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벚꽃 길은 연인과 손잡고 걸으면 결혼에 이른다고 해서 ‘혼례길’이라고도 부른다. 드라마 <로망스>를 촬영한 곳으로 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여좌천 끝은 내수면 환경생태공원과 맞닿는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1928년에 만든 양어장이 광복 후 민물고기 보호·육성을 담당하는 ‘내수면연구소’로 바뀌었다. 저수지, 어류, 수생식물, 송림, 습지 등 자연 생태와 여기에 깃들여 사는 조류가 있다.

지난해부터 시는 연구소의 큰 저수지와 그 주변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마련했다. 환경생태공원은 호수, 습지, 솔밭 등 유수지 주변 83.897㎢를 특색 있고 가치 있는 청소년 체험학습장 및 관광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호수 주변에는 배롱나무, 물벚꽃, 수양버들, 팽나무, 회양목 등이 자라고 있으며, 희귀어종인 꼬치동자개, 황쏘가리 등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책로와 벤치, 목교, 데크로드 등 기본 시설과 습지보전 체험을 할 수 있는 관찰습지 등이 있어 시민의 생활 녹지공간 및 환경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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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엔 대마도까지 보이고, 전개되는 해경은 지중해 못잖은 절경을 선사한다. 가을에는 잔잔한 억새와 상록수 군락이 볼 만하다. 명성황후가 전국의 명산에 무당을 보내어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축원을 올릴 때 여기에서도 100일 동안 축원을 올렸다고 한다. 시루봉 줄기가 남으로 뻗어 이룬 곳에 위치한 해발 502m의 천자봉은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의 제왕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진해 최고의 벚꽃 관람 지역은 기지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이다. 입구에서 2㎞ 이상 길 양편으로 수령 100년 이상 된 벚나무가 4월이 되면 머리 위를 뒤덮는 벚꽃 구름을 만든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사이로 가족, 연인들이 사진 찍느라 도로를 가득 메운다. 모두 벚꽃 그늘 아래에서 ‘예쁜 짓’하기에 바쁘다.
 
 
기지사령부 안의 유적지로는 일제시대에 건립된 기지사령부 본관과 해양의료원, 옛 해군작전사령부 본관과 별관, 그리고 고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 등이 있다. 앞의 건물들은 정교한 벽돌쌓기와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붉은 벽돌 건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해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은 과거 일본군 통신대가 사용하던 것을 1945년 해군에서 인수, 이를 개조하여 별장으로 사용하다가 1979년에 보수공사를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별장은 대지 302평에 건평 66평으로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ㄱ’자형으로 배치됐다.
 

 군항제 기간에는 영내가 개방돼 관광객들이 벚꽃이 만개한 영내 전경과 영내에 있는 함정, 실물크기 거북선, 해군 박물관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이 기간 외에는 영내 출입이 금지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시에서 일 2회 군항문화탐방을 실시해 관광버스(20인 이상)를 동반한 단체에 한해서 출입을 허가하고 있다. 신청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탐방일로부터 내국인은 5일 전까지 외국인은 10일 전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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