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네 점심, 밥상머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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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네 점심, 밥상머리 이야기
  • 강영희 시민기자
  • 승인 2013.03.29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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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사람들의 노고와 애환이 배어나는...
 달이네 점심모임
 
 배다리 생활문화공간 <달이네>가 공간 정리를 하면서 2층 공간을 사용할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혼자 만의 공간을 가졌으면 하셨던 마을공방<다행하다>의 '꽃길'이가 그 공간을 마음에 들어하여 달이네 2층에 세를 들기로 했다. 그러면서 함께 도시락 점심을 먹던 '강'이 생각났는지, 걱정이 됐는지  점심을 함께 모여서 먹자는 제안으로 달이네 점심모임이 시작됐다. 
 도시락 싸 오듯이 찬꺼리를 싸갖고 모여서 먹고, 기본적인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처음에는 500원 밥상이었다가 쌀도 사야하고 이래저래 점심밥상에 드는 돈이 있어서 2000원이 되었다. 그래도 시중의 저렴한 식사의 반값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세번, 많으면 5번 가량의 점심을 함께 나누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복잡한 세상살이를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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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미술수업이 있는 날이라 식사준비가 어려워서 간단한 반찬꺼리를 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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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할때는 주로 나비가 준비하고, 종종 함게한 분들이 간식꺼리를 가져온다
 
 밥상머리 이야기들
 꽃길이, 나비와 강의 가족, 이웃, 매일의 일상 부터 마을살이를 하며 드는 생각, 어떻게 하면 공간 운영비를 벌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 이야기까지, 우리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다살림 벼룩시장>을 고민하면서 저비용으로 누리는 풍족한 생활이나 지구환경과 생태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헌책방의 의미들이 나눠진다. 
 마을신문 <우각로신보>를 기획하고 구성하면서 마을의 일들을 살피고, 마을의 문화적 의미를 주민들과 나누는 방법도 많이 고민한다. 이웃들의 참여는 우리 일상의 여가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TV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과 다른 지역에 가서 장시간의 노동을 하는동안 자신이 잠자고 일어나는 공간은 산다기 보다 들러가는 공간이 되는 서글픈 현실까지 이어지면 나도 내가 잠자고 일어나는 공간을 옮겨야 할까, 그 곳에서 이런 활동을 해보는게 어떨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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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이 바쁘다. 소박한 식단이지만 함께 나누는 식사는 풍요로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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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이 바쁘다. 소박한 식단이지만 함께 나누는 식사는 풍요로와진다.
 
 요즘은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졌다고 한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각자의 일상과 생각, 느낌을 이야기 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었을테다. 그러나 그 조차 부모의 노동이, 자녀의 학교생활이 길어지면서 함께 저녁 먹는 풍경은 TV속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어렸을때는 경제발전의 쳇바퀴에 맞춰야 했던 노동자인 부모는 쉴 시간도 부족했고, 부모가 자식과 같이 식사를 하고 싶어질 즈음이면 아이들은 머리가 커져서 부모의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옛날이야기 하며 그들의 원하는 삶을 맞추길 바라는 밥상머리는 피하고 싶어진다. 이제는 설령 마음이 있어도 함께할 시간이 없고, 그런 날들이 이어져 습관이 되니 대화를 하는 일이 피곤해지고, 모처럼의 대화는 낯선 일이 된다. 
 밥상머리 '교육'은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 하는 '대화'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이야기지만 그러다 보면, 좀 다투기도 하고 꾸지람도 듣고 용서도 빌과 사과도 하고 서운하거나 즐거울 때도 있다. 그것이 '함께하는' 밥상머리의 삶이다. 소소하고 지속적인 만남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이제 습관이 된 따로밥상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지만 그 환경을 풀어가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점심밥상이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배려 즉, 각자의 개성이 있다보니 다 좋을 수는 없지만 그 개성을 인정하며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 머리로 맘으로 손발로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
 
새 점심식구 동균은 빔의 별비 새 짝입니다.
 
 이야기 반찬
 요즘 점심밥상의 이야기 반찬은 마을만들기 사업과 우각로신보 만들기, 헌책방거리 활성화 등 각자 살림을 꾸려가느라 힘들지만, 자신의 역량에 각종 사업자금지원을 신청하여 주민과 함께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활동이나 준비를 이야기 하고 있다. 
 나비는 마을만들기를 문화+예술적 마을만들기 개념으로 풀어서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고 제출했고, 우각로신보는 이야기가 좀 더 많아질 것 같다는 것, 그런데 강이 왠 일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 꽃길이는 뜨개모임으로 분주하고, 별비는 새 동료와 레지던시 프로그램 기획에 대한 이야기, 지역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제기를 통해 나쁜사람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이야기다.
 각자 월세를 벌어 채우기도 힘들지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의미를 알기에, 지금 여기에 함께하는 노력을 자근거리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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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에서 찌게를 데우고, 둥근 탁자에는 예닐곱명까지 둘러앉을 수 있다
 
 수요일의 새 손님
 한동안 쉬었던 점심밥상이 시작되고, 손님들이 종종 동석을 한다. 주요 멤버는 강, 나비, 꽃길이, 별비와 이야기였는데 이야기 대신에 동이 빔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롭게 점심멤버가 되었고, 가끔 이들의 손님이나 친구가 함께하고, 아벨서적이나 갤러리 쥔장들이 가끔 동석을 한다.
 수요일 그림 수업이 끝날 즈음 박의상실 어머니의 서림초 동창생이자 75년 파독 간호사인 ‘막달레나 장’께서 함께 하셨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독일 중남부 지역에서 지내셨던 막달레나는 독일이 통일될 때에도 크게 변화를 느끼진 않으셨다고 한다. 긴 시간동안의 노동으로 너무 고생하셔서 다리도 불편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은 것은 본인 뿐 아니라 당시 파독된 간호사와 광부들이 다들 그렇다고 하셨다.
11년 전 처음으로 고국에 들렀고, 다시 5년 전 2달여 머물렀는데 너무 좋아서 한국에 돌아와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셨고, 독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의논을 하고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찬찬히 알아보시기로 하고 오셔서 6개월 여 지내보며 한국살이를 전재로 하여 여러 가지를 살펴보셨다고 했다.
 
박의상실 어머니와 친구분 막달레나 장
'정서가 많이 달라진 거 같아요.' 넓은 평원에서 지내다가 온갖 곳에 낮은 언덕과 산들이 많은데 그게 그리웠는데 막상 와서 보니 답답한 느낌도 들더란다. 게다가 생활하며 지내보니 불편한 몸으로 다니기도 너무 어렵고, 생활시설이나 복지시설도 너무 빈약하고, 병원이며 각종 비용도 너무 비싸고, 불편한 몸이지만 돌아와 일을 하며 살아야 할 텐데 일할 것도 마땅히 없다는 걸 알게 되셨단다.
 
마음이 너무 짠했다. 얼마나 그리운 고국이었을까? 그러나 경제성장의 이면에 자신과 같은 서민들은 너무 팍팍하게 살고 있으니, 그리움만 가시고 다시 힘겨운 삶을 이어가기에는 고된 노동 끝에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곳에서의 삶을 포기하긴 어려운 일이다. 그런 당신과 따뜻한 밥 한끼 함께 나눌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했다.
 
제 탓은 아니지만 참 미안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평생 길고 고된 노동을 해오고 나이들어도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고 사는 수많은 이웃들이 떠올랐다.
 
 
이 와중에 나랏일할 사람 후보를 뽑았는데 부정부패와 탈세에, 불법으로 벌어놓은 돈이 엄청나 연일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연일 공단에 산업재해가 일어나 노동자가 죽고 다치는데 비싸봐야 벌금이 100만원이라고 한다. 돈은 부자들이 벌고, 벌금이며 나쁜 처우는 국민이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받고있다. 이런 나라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당신이 오신다 해도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부끄럽다. 오늘은 그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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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는 마지막이라고 하셔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권했다.
 
6개월의 여정이 마무리되고 다음주엔 떠나신다고 하셨으니 벌써 떠나셨을까? 나비날다에서 종종 책을 고르신게 얼추 한 박스. 독일 가실때 가져가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배다리는 이 날이 마지막이라고 하셔서 두 분 기념사진 찍으셔야 한다고 졸랐다. 초등학교 동창이면 50년 인연 아닌가. 사진정리를 하다가 이 생각 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나라는, 우리 사회는, 우리 노동은, 우리 복지는 ...
멀리 독립을 위해, 이 나라 부강을 위해,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 땅을 떠났던 이들이 편히 돌아와 살 수 있는 공간이, 시간이 올까? 우리가 살기도 더 팍팍해지는데 .. 언젠가는 그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을 꼭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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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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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 11:24:12
손이 나온 식탁 사진이 두개네요. 하나가 없어져야 하는데 ..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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