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여전히 정치의 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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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여전히 정치의 시녀
  • 박병상
  • 승인 2023.05.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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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2011년 대지진 때 폭발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도쿄전력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2016년 3월 촬영한 모습으로 단계적 폐로 작업이 진행중이다. 사진=연합뉴스
2011년 대지진 때 폭발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도쿄전력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2016년 3월 촬영한 모습으로 단계적 폐로 작업이 진행중이다. 사진=연합뉴스

 

1994년 12월이었다. 뉴스에서 느닷없이 단일 응회암으로 형성된 “굴업도는 핵폐기물 처분장 적지”라는 과학자 주장이 나왔다. 이후 정부는 과학을 근거로 굴업도의 핵폐기장 건설을 기정사실로 추진했다. 민간 지질학자와 동행한 환경단체는 경찰이 집결한 굴업도를 즉각 찾았다. 정부 용역을 받지 않은 지질 전공 시민과학자는 굴업도에 발 딛자마자 응회암 곳곳에서 뚜렷한 지진과 절리의 흔적을 찾아냈다. 정부의 논리라면 핵폐기장이 들어올 수 없는 부적격 지형이었다.

실상은 과학적인 조사와 관계 없었다. 현장 조사 없이 헬기로 간단히 들러보고 핵폐기장 적지로 결정한 것으로, 정부 강요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부정행위였다. 굴업도는 오랜 시간 범죄 없는 마을이었다. 당시 노인 위주로 5가구 9명이 거주했으니 범죄가 일어날 갈등이 생기지 않았는데, 행정 공백 상태였다.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 예고된 지역이라 책임질 행정이 부재했고, 주민들이 노인이므로 정부는 고관대작의 결정에 관행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멋대로 예단했을지 모른다.

판단 착오였다. 광역시로 등극한 인천시도 방관할 거로 오판했는데, 인천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노동단체와 환경단체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체를 결성해 체계적이며 합리적 검증과 행동에 들어갔고 굴업도는 정부의 논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지질을 가졌다는 걸 증명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았고 시민사회의 저항은 격렬해졌다. 시민단체의 추궁에 갈피 잡을 수 없었는지, 1995년 봄, 당시 과학기술부 차관이 말실수했다. “과학은 정치의 시녀”라고 실토한 것이다. 정치가 결정하면 과학은 뒤처리할 따름이라는 자조였는데, 요즘은 어떨까?

국민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후쿠시마 핵오염수 처리는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해 더욱 철저히 검증하고 빈틈없이 국민 건강 대책을 세우는 게 정치권이 할 책무”라면서 “검증되지 않은 괴담을 유포하고 국민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 실효적인 대책 마련에 도움 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한 정치인이 있다.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 TF’ 위원장인 그 정치인은 석학임을 내세우며 해외 전문가를 초청해 간담회를 자행했다. 옥스퍼드대학교 웨이드 앨리슨(Wade Allison) 명예교수로 평소 핵발전소를 편향적으로 옹호하는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적절했을까?

국내에도 정부 눈치 보는 전문가는 많건만, 자연 방사선과 다핵종 제거장치를 거친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비교하며 안전을 주장한 그 석학은 그 물을 마실 용의를 과시했다. 1리터를 넘어 10리터까지 장담했는데, 그는 제거장치를 거친 오염수는 다른 물과 마찬가지이므로 굳이 일본에 둘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전했다. 과학자답지 않게 아리송했다. 간담회 발표 대가를 두둑하게 제공한 우리 위원장의 눈치를 보는 거였을까? 일본 정부 눈치 살피는 게 분명한 우리 정치의 모습을 간파한 게 아닐까?

정파 이익에 편향적인 그 정치인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고 접근하려는 의도라고 밝히며 “괴담이 아닌 과학으로 접근할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면 그는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문제를 괴담으로 이해하는가? 광우병 논쟁을 괴담으로 이해하는 게 분명한데, 그 과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광우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과학자가 제시한 주장을 괴담으로 몰아가는 의도는 무엇일까? 당시 간행된 수많은 과학자의 주장과 근거를 제멋대로 무시하는 태도가 무척 교활해 보인다.

자연방사능과 비교할 때 핵오염수가 안전하다고? 터무니없다. 흔히 X레이 촬영과 비교하는데, 자연방사능이든 X레이든, 그 방사선은 몸을 뚫고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오염수 안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은 다르다. 그걸 모를 리 없는데 석학? 자국의 정치인 앞에서 같은 주장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무슨 의도로 그따위 허위 주장을 감행하는가? 우리 정치를 무시하거나 우리 시민사회를 몰랐을지 모른다.

다핵종 제거장치의 효능이 의심스럽다는 일본 시민과학자와 세계 반핵전문가의 주장을 일본 정부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하지 못한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물고기의 방사선량을 살펴보면 시민과학자의 주장이 합리적이다. 핵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수소는 다핵종 제거장치로 전혀 걸러낼 수 없게 작다. 우리 몸은 70%가 물이고 대부분의 체내 물질에 수소를 가졌다. 사람만이 아니다. 동식물, 플랑크톤을 포함한 미생물이 마찬가지다.

방사성 수소는 아무리 희석해서 태평양에 버려도 바다에 분포하는 생물에 들어가고 생물의 체내에 방사능을 내보내게 된다. 지나가는 자연방사능이나 X레이와 달리 몸 안에서 계속 방사능을 뿜는다. 그 강도는 거리의 3제곱에 반비례한다고 알려져 있다. 방사성 수소의 반감기는 13년이 넘는다. 핵 전문가는 반감기가 최소 10회 지나야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핵오염수 안의 방사성 수소는 먹이사슬을 타고 번져나갈 것이고 때로 농축될 수 있는데, 안전하겠는가?

희석해도 소용없다. 방사성 물질은 희석보다 총량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터에 10년 이상 모은 핵오염수를 30년에 걸쳐 모두 버리겠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다핵종 제거장치에서 거르지 못하는 방사성 원소는 수소만이 아니지 않은가! 방사성 수소 이외의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과 반감기는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수소보다 심한데, 과학자가 안전을 이야기하다니, 부끄러움도 모르는 석학을 본다.

못된 정치는 또 과학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어떤 효과를 노렸는지 영국의 노회한 핵과학자를 불렀다. 번번이 당한 시민단체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더는 그 불온한 의도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정파적인 정치인은 양치기를 자초했는데, 기대는 과연 충족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정치는 과학을 다시 시녀로 여겼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과학자들이 당장 분노하지 않더라도 양치기의 소란은 곧 분노의 응답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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