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스스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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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스스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 고동희
  • 승인 2023.05.18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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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고동희 / 극작가, 부평구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5월이다. 여러 기념일이 줄줄이 지나는 가정의달이다. 어린이날 앞뒤로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자마자 바로 찾아온 때 이른 더위가 순탄치 않을 올해 여름을 예고하는 듯하다.

올해 어린이날은 코로나19 제약에서 벗어나고 처음 맞는데다 연휴로 이어져 곳곳에서 갖가지 행사들을 풍성하게 준비하고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맞을 계획을 세웠다. 공연장에선 가족극 무대가 관객을 맞았지만 어린이날 행사는 대부분 야외에서 진행하는 특별행사였다. 갑작스런 비로 급하게 실내로 변경하거나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어 ‘우리들 세상’이라고 잔뜩 기대했던 아이들로선 이래저래 김이 샌 어린이날이 되고 말았다.

한 주를 늦춰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어린이들의 백일장이 진행됐는데, 입상작품들의 시상을 앞두고 발표된 심사평이 눈길을 끈다. 언뜻 잘 써진 글처럼 보이지만 수상권에는 들지 못한 작품이 있는데, 그 까닭이 초등학교 또래 아이들이 쓰지 않는 말들이나 문장이 섞인 글이라는 게 심사위원장의 설명이다. 아마도 행사장에 같이 온 가족들 중에서 누군가가 과도한 지원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 대상의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노래 부르기와 같은 대회는 참가만으로도 알찬 경험이다. 게다가 이왕이면 잘 쓰고 잘 그리고 잘 불러서 상까지 받는다면 아주 특별한 기억이 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전환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완성된 아이들의 글이나 그림에서 어른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들다운 천재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마주할 때가 있다.

제시된 주제에 대해 함께 얘기하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무얼 생각하는지, 그 느낌을 어떻게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제시하는 건 아주 바람직한 방법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어른의 기준으로 글이나 그림을 마무리하는 건 아이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저 어른들의 성급한 욕심만 드러낼 뿐이다.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어린이답지 않은 작품들도 드물지 않게 제출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바쁜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행사장 곳곳의 다른 볼거리와 체험에 눈길이 가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다 마감시간이 임박하면 어른들의 마음과 손길이 부산해지고 더러는 어른들의 심정이 드러난 작품으로 급하게 마무리한 티가 날 수밖에.

아이들이 노래하는 무대에 대신 올라가 노래할 수 없듯이, 아이들 축구대회에 난입할 수 없듯이, 글이든 그림이든 원고지와 도화지를 채우는 일은 아이들 몫이어야 한다. 미처 채우지 못한 미완성이거나 혹은 이름만 겨우 적은 백지라 할지라도 이 또한 아이들에겐 그만큼의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다.

휴대전화 하나만으로도 온갖 놀 거리가 넘치는 마당에 아이들이 문화예술을 현장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장한 일이다. 게다가 백일장이나 그리기대회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고 나만의 작품을 구상하고 창작하겠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위대한 도전에 나선 아이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게 어른들의 현명한 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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