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책을 닦아야 겠다
상태바
오늘 나는 책을 닦아야 겠다
  • 곽현숙
  • 승인 2023.05.02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다리 책방거리에서]
(6) ‘한국의 명문’- 배달민족의 얼을 일깨운 44인
곽현숙 / 아밸서점 대표

 

책방에서 책을 닦다가 잘 닦아지지 않는 책을 다시 만지면서 제목에 마음이 꽂힌다. 책 옆 날개 면이 흙빛이 되어버린 70년대의 ‘마지막 말’이라는 책과 송기숙의 ‘어머니의 깃발’, 문 밖 세멘 둔 턱에 놓고 한손으로 30센티 뿔자로 눌러 고정한 다음 페이퍼로 갈아낸다. 노리끼하게 바뀌어가는 책 옆면이 손힘에 열기를 동하게 한다. 접힌 곳을 펴고 한 면한 면 갈고 털고 젖은 수건과 마른수건으로 닦아내는 손이 움직이는 만큼 의젓하게 제 모습을 찾는 책들, 손질하는 가슴은 흐믓 함을 먹고, 책은 다시 책 손을 맞으러 책꽂이에 제목을 뽐내면서 진열된다.

다음 책은 겉 케이스와 비닐 커버가 있는 양장본으로 7,80년대 책 모습이다. 책을 잡으려는데 손님이 책을 계산대에 올려놓으면서 “의제에서 나온 ’공조설비의 관리‘라는 책을 사러 왔는데 없어서 이 책도 자료가 될 것 같아서 골랐네요.” 하신다. “네, 본래 찾으시던 책보다 연구하시는 분야에 자료가 될 만한 책을 더 골라 가시는 분들이 종종 있으세요...”  계산대에는 ’건축설비의 유지관리‘라는 책 올려져있다.

책값을 계산하는 사이 책 손님 말씀이, 우리가 기술은 좋아서 제품을 만들 수는 있는데 후학을 가르칠 자료 차원에서 남겨야할 기본서가 없다고 한다. 서너 권 적어온 책 제목을 보이며 각 기술 분야에 기초서로서 그것도 일본사람들이 만들어 논책을 번역한 책인데 구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말한다. 컴퓨터도 자바라 같이 힘든 부분은 공부하는 젊은이가 없다며..... 힘든 일을 멀리하는 사회 분위기를 토로한다. 그래도 기본서들을 만들어 후학들에게 전수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책을 찾아 다닌다고, 찾은 책 한 권을 소중하게 안고 나가는 책 손을 아릿한 마음으로 배웅한다.

다시 딱으려던 책을 잡는다, 제목부터 한문으로 되어있다.

‘한국의 명문’ - 독서신문사 편 -

- 작고 명사의 명문선 - 뒷면에는 책에 대한 설명이 국한 혼용으로 쓰여있다. '대선각자들의 논설, 연설, 기행, 서간, 수필, 감상문들 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것만을 모은 단행본(한국의 명문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새 사조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1800년대 중반부터 3.1운동, 조국광복, 6.25의 수난, 4.19와 5.16 두차례에 혁명을 치르기 까지 한국사 속에 뿌리박힌 ‘배달민족의 얼’이라고 하겠습니다'

케이스를 빼서 닦으면서 어떤 분들일까 궁금해 목차를 열어보니 삽화를 머리에 이고 세로 줄로 된 명문 이름들 밑에 저자들이 함자가, 그 단아한 한자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한권에 책으로 민족의 얼을 깨어 가신 44분의 어른들을 만날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에 붉은 등이 책방을 덥힌다. 목차 초입에 讀書開進論독서개진론 安在鴻안재홍 12쪽으로 되어있다. 開進(문물이 발달하고 사람의 지혜가 열림) 이라는 단어가 책속으로 마음을 끌고 간다.

이화여대 이어령 교수가 권장하는 글은 '1950년 2대 국회의원에 당선 6,25때 납북, 1914년 와세다 대학 졸업 3,1운동으로 피검 3년 복역 1923년부터 계속 독립운동으로 투옥되었으나 정계와 언론계에 ...... 명 논설을 남김. 여기에 권하는 ‘독서개진론’은 파란만장한 독립운동과 언론생활과는 토운이 다른 독서를 권장하는 글이다. 독서의 의의, 독서의 요령, 독서의 방법, 독서의 기쁨을 해박하게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일생을 일하고, 일생을 읽으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독서로 사람의 길을 타고 흐르는 법을 조용히 설파하신다.

- 언제나 독서는 자아인 인생을 객관의 경에서 새로 발견하는 것이오, 졸고 있던, 정돈 되었던 위대한 나를 고인의 자취에서 고쳐 인식하는 것이며, -중략

-독서는 꼭 높은 것을 귀하다고 안하나니, 모름지기 自家자가의 智力지력에 맡겨 소화되는 것으로 비롯할 것이요 반드시 많은 것을 탐낼 일이 못되나니 우선 沈潛침잠 反覆반복하여 알고 깨달아 이른바 融會貫通융회관통(자세히 알아 뜻을 밝히다.) 하는 바 있음을 요하는 바이다-. 중략

-나는 남에게 종교인이 되기를 권하지 않는다. 그러나 망망한 대우주가 정연한 질서로서 일정한 발전과 진화의 도정을 걸어가고 있는 생명의 원천인 것은 인식하지 아니할 수 없고, 탕탕한 대우주에서 자연으로 온 나의 인생이니 옴이 있으면 반드시 감이 있는 것인지라, 다시 대우주에 환원할 필연의 약속을 믿어야하고, 물질적으로 본 인생의 운명은 결국 북망산에 딩구는 일개의 촉루(해골)밖에 아니됨을 알아야 하고, 아무리 투지에 날뛰고 강철같이 굳은 마음이로되 언제인가는 人世인세의 無常무상과 무력을 깨닫고 의식할 날이 있어야 할 인생의 멀고먼 나그네의 길인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요, 인생은 짧되 예술은 긴지라, 짧은 인생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靈火영화를 우주의 한 구석에 켜두고 가려는 것이 인생의 본능적인 稚氣치기 인 것을 알아야 한다.- 중략

-무릇 仁人인인이요, 達士달사인 자는(일백번 고쳐 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의 뜨거운 희생심과 한 가지 백년 늘어 살아 두고두고 민족과 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노파심적인 염원도 있는 것이니, 이것도 대컨은 독서 수련으로 좇아 나오는 마음의 매듭인 바이다.-라고 끝을 맺으신다.

책을 닦다보면 옛 선각자들이 평생 퍼 올려 정제시킨 옥수를 가슴에 비를 내리면서 맛볼 때가있다. 이어 지금 우리나라는 안녕한가? 항상 진행형처럼 물음이 고개를 든다.

올 1월부터 4월까지 인천일보19쪽 오피니언 지용택 칼럼에는 평생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사신 인천의 어른이 세계정세 속에 우리나라가 살아 내야할 길을 4회 연속 성토 하신다.

-우리는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나라의 이익을 제치고 우리나라를 도울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깨어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깨어있어야만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 이 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닦는 일이다. 역사의 진통 속에 태어난 책들을 닦아 호야 등에 혼 불을 켜 듯, 인천 어른이 말씀하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의 완성을 위하여 하늘인 국민의 옷을 챙겨야겠다.

ㅡ 서점에서 안재홍 독서개진론과 김소월의 시혼을 5월 15일 에 전문을 복사해서 나누어드리겠습니다.

설얇고 앙증맞게 작은 ‘책상은 책상이다’를 만지면서 잠깐 책속으로 들어가 본다. ‘페터 빅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심증 여행이 눈을 못 떼게 마음을 끌고 간다. 안정되고 싶은 정말 일거리가 부진한 삶에서 생을 뒤적여내는 작가의 상상이 안스러움으로 박수를 치게 한다. 귀엽고 단단한 철학적인 속살을 덮으며, 손길은 책뚜껑을 만지작거려 닦음을 마무리 한다.

필자는 이 명문의 전문을 복사해서 이번 스승의 날에 나누어 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