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의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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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의 안부를 묻다
  • 김정화
  • 승인 2023.03.02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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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김정화 / 문학평론가
인천in이 전문가 칼럼 '문화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인천지역 문화지형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제안하는 칼럼을 6인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한편씩 이어갑니다. 필진으로는 전영우 인천생각협동조합 이사장, 연창호 검단선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고동희 부평구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이상하 조각가, 김정화 문학평론가, 한은혜 은하수미술관 대표까지 여섯 분이 참여합니다.   

 

가끔 무위의 시간을 누리고 싶을 때 동네 책방 나들이를 한다. 주로는 독립서점 나들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책방 주인장이 자신의 취향과 관심을 반영하여 선별한 책들을 나름의 질서 속에 배열하고 방향을 잡아 놓아둔 공간을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고요해지는 몰입의 시간에 들게 되기 때문이다.

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나 놓인 책들 사이에 유사점이나 한 무리의 책들은 다른 무리의 책들과 어떤 차이점들이 있는지 유추해보기도 한다. 몇 걸음 옮기면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진열된 독립출판 도서들의 개성적인 책 제목과 표지 디자인과 앙증맞은 굿즈들을 구경한다. 마치 정해진 주제도 없는 막연한 질문에 해답을 구하듯 이런저런 상념에 들며 시간이 흐르는 그 공간이 좋다. 그 작은 공간에 나름의 질서가 있다.

 

딴뚬꽌뚬 공간 모습
주안동 딴뚬꽌뚬 공간 모습
책과 홍차가 있는 풍경-딴뚬꽌뚬

원도심 주안 시민공원 사거리 쪽에 ‘사람과 공간’을 표방하고 2019년 개점한 딴뚬꽌뚬에 들렀다. 서점 이름 딴뚬꽌뚬은 라틴어로 ‘딱 그만큼만(as much)’ 이라는 뜻이라하니 서점 열 때 주인장의 진정을 읽을 수 있다. 딴뚬꽌뚬은 책방이기는 하지만 ‘책과 커피’ 라는 슬로건도 양보하지 않을 만큼 주인장이 커피에 진심이시다. 일단 들어서면 다양한 책들 큐레이션되어 있고 음악감상실 부스처럼 생긴 유리 공간 안으로 커피 로스팅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독립서점들에 비해 공간 규모도 큰 편인데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공간 인테리어와 소품들을 감상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의 카페 문화가 자리 잡고 독립출판이 증가하면서 커피와 함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 카페로 출판사의 신간을 발 빠르게 소개하고 책을 할인해서 팔기도 하는 형태로 속속 문을 열었다. 책방에 카페를 더할지 말지는 책방 주인들이 겪는 딜레마라 한다.

커피로 손님을 모으는 효과도 있지만 서점이라는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와 식음료로 인해 책이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주인장들의 염려도 있다. 딴뚬꽌뚬은 책과 커피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주인장과 대화를 몇 마디 나눌 수 있는 것도 동네 책방의 소소한 매력이다. 책방 운영자의 그 독창적 행위를 감상하며 솜씨를 발휘하는 타인의 취향과 마음을 읽으려 나누는 몇 마디 대화도 흥미롭다. 주인장은 본래 공간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주목을 했다며 아직은 그 과정 속에 있다고 했다. 공간 대여를 원하는 분들에게 기꺼이 공간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계신단다. 올해부터 미추홀시립도서관과 협력하여 희망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말앤북스
구월동 말앤북스
오일 파스텔화 수업 장면
오일 파스텔화 수업 장면

팬데믹 이전 소위 구월동 먹자골목 쪽에 있던 말앤북스는 얼마 전 구월동 건설회관 쪽 작은 건물 3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로나 시기에도 골목 모퉁이에서 심야책방과 독립출판 작가와의 북토크 등을 꾸준히 이어오던 젊은 책방지기는 제주살이를 떠나고 지금은 모친이 미술 관련 클래스를 함께 운영하고 계신다.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테이블에는 예전처럼 책이 진열되어 있고 벽에는 오일 파스텔화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주인은 한창 오일 파스텔화 수업하시다가 이런저런 안부를 들려주시며 직접 향긋한 커피를 내려주셨다. 대부분의 독립서점들은 책 판매로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아 카페를 겸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북카페 형태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취향과 욕구를 고려했으리라. 말앤북스는 이제 식음료는 팔지 않고 미술 관련 원데이 클래스와 정규과정을 여는 등 지속적으로 관련 수업을 열 예정이라고 했다. 지인에게 선물할 책 한 권을 장만했다. 말앤북스가 지역에서 예술체험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강화읍 모도서점 공간
화수동 모도서점 공간
모도서점 외관 스케치 및 미니어처

 

독립서점 동네책방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대개 도시의 골목길 어디쯤에 자리잡고 있다. 간판은 한결같이 겸손하다(?). 찾아가는 여정 또한 이 도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이다. 동구 화수동 골목길 책방 모도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흐린 날 오랜만에 찾은 책방의 민트색 페인트 공간 안에 따뜻한 조명등이 켜져 있는 게 보인다.

주인장과 얘기를 나눠보니 팬데믹 시기에도 고무적인 소식이 적지 않아 반가웠다. 인근 송현초등학교와 책 선물 책날개 사업도 함께하고 있고 올해부터 미추홀시립도서관과 협력하여 희망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를 본격 시작하고 있는데 주민들과 학부모님 반응이 좋다고 하신다. 희망도서 바로 대출서비스는 지역에서 책방 운영을 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대개 독립서점의 경우 책 덕후들이나 카페문화를 좋아하는 20, 3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주민 친화적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개점 5주년을 맞이한 기념선물로 추억이 돋는 넘기는 큰 달력을 만들었단다. 화수동 쪽에 배 타는 분들이 가끔 서점에 오셔서 물때가 적힌 달력을 제안하셨단다. 책방 모도는 주민과 지역과 이렇게 안착되어 가고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독립서점, 동네책방 등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책방들이 개점했다. 2년마다 통계를 내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전국 서점 수는 2528개로, 2019년 2320개보다 10여 년 동안의 감소세가 늘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물론 이러한 서점의 양적 증가 수치가 조사 방법 변경과도 관련 있고, 여전히 많은 서점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상황이 현실이다. 연합회 측은 공공기관 도서 구매 시 지역 서점 우선 이용을 권고하는 지역 서점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등 지역 서점의 최소한의 생존 기반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둔 결과라고 분석했다. 독립서점의 수도권 쑬림현상도 완화됐다고 한다. 여기에는 핫플레이스 인스타그램 포스팅족 증가라는 자연스러운 바이럴 마케팅도 한몫을 했다.

독서인구는 줄어가는 추세에 동네책방과 독립서점이 늘어나는 현상은 코로나의 역설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사람과 공간에 대한 가치를 확인한 결과라 생각한다.

인천의 다른 독립서점들은 안녕한가. 인하대역 근처 복합상가 건물에 작년에 문을 연 ‘책방 한줄한줄’이 올해 1월 몇 달 만에 문 닫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책방지기는 청년기의 성장통을 겼었던 경험을 책으로 낸 젊은 작가이기도 글쓰기 수업과 독서 프로그램도 진행하여 하여 관심 둔 곳이었다. ‘책 덕후’ 들 사이에서 철학 책 큐레이션을 주목 받은 부평 굴포천역 근처 ‘서점 서행’도 작년 1월 문을 연 지 5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다.

인천도 독립서점 동네서점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서점의 성장은 단발성 지원과 도장깨기 스템프 투어 같은 일회성 행사로 도움 되지 않는다. 독립서점이 동네 책방을 넘어 문화사랑방, 문화기지가 될 수 있도록 공간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정책의 뒷받침과 관심이 아쉽다. 기계 부품처럼 움직이며 애쓰며 산 자신을 위로 받고 싶을 때, 그냥 무위의 시간을 느릿느릿 보내고 싶을 때, 자본의 논리와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책방지기가 지키는 독립서점을 방문하시길.

앞으로도 독립서점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이 도시와 함께 생성과 정체와 침체와 변화를 겪으며 성장할 것이다, 딴뚬꽌뚬이 책과 카페의 균형을 잘 잡고 사람과 공간의 가치를 살려가고 있다면 말앤북스는 이제 클래스로 전환하고 있고 책방 모도는 본격적으로 책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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