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검도 채플 - 위로 나누는 '영혼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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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 채플 - 위로 나누는 '영혼의 쉼터'
  • 김시언
  • 승인 2023.02.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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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이야기]
(16) 동검도 채플
동검도 채플 - 채플과 갤러리

 

언제나 열려 있는, 주인 없는 집

강화군 길상면 동검도에 채플(chapel·예배당)이 생겼다. 동검도는 강화도 남동쪽, 면적 1,61㎢, 해안선 길이 6.95㎞인 아주 작은 섬이다.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데다 하늘과 바다, 갯벌과 바닷물이 들어온 바다를 품고 있다. 이 작고 아름다운 동검도 낮은 언덕에 일곱 평의 작은 성당이 지난해 4월에 문을 열었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성당 안에서 삶에 지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동검도 채플, ‘영혼을 위한 숨터’는 천주교 사제이면서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 유명한 조광호 신부가 마련했다. 조광호 신부는 유학 시절에 알프스의 작은 채플에서 받았던 위로를 다시 나누고 싶어 이 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성당 안내문에 쓰여진 글귀는 이렇다.

‘문은 있지만 언제나 열려 있는 이곳은 주인이 없는 집입니다. 굳이 주인을 찾으면 이 집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당신이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이 집은 당신의 집입니다. 고요와 침묵과 경건함으로 비워진 이 공간이 당신에게 기쁨과 평화로 채워지는 ‘영혼의 쉼터’가 되길 빕니다.’

 

채플 아래쪽에서 바라본 강화도 갯벌
채플 아래쪽에서 바라본 강화도 갯벌

 

오랜 시간을 품은 동쪽 검문소, 동검도

동검도는 조선시대 강화도와 한강으로 들어가기 위한 ‘동쪽 검문소’였다.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선박은 물론 중국에서 우리나라 서울을 왕래하던 사신이나 상인이 통과할 때 검문받던 ‘동쪽의 검문소’라는 의미에서 ‘동검도’가 되었다. 석모도 하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는 ‘서검도’는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사신이나 상인이 황해로부터 한강 입구로 들어올 때 검문받던 곳이다. ‘서쪽의 검문소’라는 의미에서 ‘서검도’가 되었다.

필자가 동검도를 처음 간 25년 전쯤에는 동검국민학교가 폐교가 된 채 운동장에는 풀이 무성하고 놀이기구는 녹슬어 있었다. 삐거덕거리는 시소를 타고 녹슨 철봉 옆에서 바라본 바다는 참으로 오랫동안 바닷가마을로 남았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 마을은 파도소리와 새소리만 들릴 뿐 아주 고요했고, 물 나간 마을은 간간이 개 짖는 소리와 닭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어느 집은 지붕 없는 뒷간이 마당 한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노인들은 바다와 맞닿은 땅에 사자발쑥을 키우면서 돌봤고, 낮은 돌담 안으로 마당 구석과 처마에는 사자발쑥을 말리고 있었다. 몇 집은 허름한 건조장도 있었는데, 그야말로 그 당시 동검도는 여느 바닷가 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걸어서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동검도 남서쪽에 있는 동그랑섬을 돌면 동검포구가 나왔고, 그곳은 물이 들어올 때는 작은 배들이 떠 있었고, 물 나간 갯벌에는 여기저기 배가 기우뚱 갯벌에 기대고 있었다. 또 그곳에서는 영종도가 가깝게 보여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날이 맑은 날은 시계가 좋아 송도신도시와 청라신도시에 아파트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아무튼 필자에게 동검도는 오랜 시간을 품은, 늘 가고 싶은 섬이었다.

 

갤러리 내부 모습
갤러리 내부 모습
채플 내부 모습
채플 내부 모습

 

그리움과 고요함을 담은 섬에서 위로받다

이러구러 강화에 살면서 동검도에 채플 갤러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준비 중일 때부터 들었지만, 최근에야 다녀왔다. 그리움과 고요함을 담은 채 언제 가봐야지 했던 동검도는 초입부터 많이 바뀌어 있었다. 1985년에 동검도 북쪽과 강화도를 잇는 연륙교를 지으면서 육지와 이어졌으나, 다리 아래로 바닷물이 드나들지 못해 갯벌이 제 구실을 못해 썩은내가 진동하던 때와 달랐다. 동검도로 들어가는 곳에 2차선 다리가 놓였다. 선두리에서 동검리로 들어가는 다리는 예전에 있던 다리 형태라 교행이 어렵지만, 전에 있던 다리의 형태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에는 여전히 넓디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한나절에는 볕을 받아 반짝이고 저녁 때는 석양을 받아 붉게 빛나던 갯벌이다. 갯벌이 살아 있으면 생태가 살아 있을 테니, 동검도는 아직 건강한 섬이었다. 동검도 초입에 있어 오가면서 생수를 사 먹던 ‘돼지상회’는 사라졌고, 그 옆으로 동검포구로 향하는 넓은 길도 생겼고 펜션과 카페도 어마하게 많아졌다. 그래도 갈대밭은 여전히 남아 방문객을 반겼다. 가을이면 함초가 갯벌을 수놓을 것이고 갈대숲에서는 새들이 바쁘게 드나들 것이다.

 

채플 외부 모습
채플 외부 모습

 

누구나 명상할 수 있는 곳

일요일 오후, 채플갤러리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명상하는 곳’,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창밖에 서 있는 십자가와 실내에 있는 스테인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명상하는 곳’이었다.

명상 길잡이에는 <저 멀리 수평선으로 이어진 창밖의 십자가와 산사나무는 채플 안의 유리화(가시관)와 일직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가시 돋힌 산사나무의 꽃말이 ‘유일한 사랑’이듯 우리에 대한 예수의 한없는 사랑도 화려한 왕관이 아니라 고통의 가시관으로 표현됩니다. 모세의 가시덤불에서 하느님이 나타나셨듯이 ‘희생의 고통’ 속에서 탄생되는 생명의 본질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영원하듯 생명도 영원하고, 아름답고 귀한 선물인 생명은 ‘영원한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구하는 기쁨과 행복은 물론, 부활의 삶도 극락왕생의 희망도 그 누군가를 위한 당신의 작은 사랑의 희생으로부터 이루어질 것입니다. - 채플주임 조광호 신부> 라 적혀있다.

성당 옆으로는 갤러리가 있어 유리화 작품을 맘껏 감상할 수 있었다. 조광호 신부의 작품도 구입할 수 있었고, 차도 마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창밖 경치가 좋았다.

차경. ‘잠시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을 지닌 차경이 생생한 곳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갯벌과 긴 산줄기가 꿈틀대는 마니산, 물 나간 바다와 2월의 푸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분오리돈대도 삐죽 나와 있었다. 느닷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다니! .

동검도 채플에서 모든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적막과 고요, 침묵과 묵상, 아름다운 경치. 비록 신앙은 없지만 이곳은 살면서 간간히 생각날 것 같았다. 조만간 석양이 질 무렵 어느 날, 다시 찾아야겠다.

조광호 신부의 작품도 구입할 수 있다.
갤러리 내부 - 조광호 신부의 작품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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