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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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 조영옥
  • 승인 2023.02.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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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조영옥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아카데미 소통의 글쓰기반

사르락 사르락 사뿐히 내리던 눈이 어느새 자동차 지붕에 수북히 쌓이고 건너편 상가 지붕도 덮고 새하얀 세상을 만들었다. 강추위에 마음도 움츠러들어 밖에 나가려는 생각은 아예 접었다. 천진한 아이들처럼 눈이 오는 것이 좋아 나는 밖을 마냥 쳐다보고 앉아 있다. 남편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창문 밖을 내다보다가 뜬금없이 손녀에게 토끼를 잡으러 가자고 한다.

“할아버지 토끼가 어디 있어요?, 저는 추워서 싫어요”

하지만 옛날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 오른다.

“옛날에 할아버지 어렸을 때는 눈이 오면 토끼 잡으러 친구들과 산으로 갔단다. 신나게 엎어지고 미끄러지면서 토끼를 쫓다 보면 잡지는 못해도 산을 헤매고 다니는 재미가 엄청났단다. 그때는 좋은 오리털 점퍼가 없어서 솜바지 저고리를 입고 다닐 때였지. 산을 뒹굴다 보면 옷도 젖고 짚신 속에 솜버선도 다 젖어서 집으로 내려오면 할머니께 꾸중을 들었단다. 오늘 눈 내리는 것을 보니 그때가 생각나는구나.”

“윤교야 토끼 잡으러 가기 싫으면 참새 잡는 이야기 해줄까?” 토끼 사냥으로 이어진 남편의 옛이야기는 참새잡이 이야기로 이어졌다.

“할아버지 어릴 적에는 지금보다 훨씬 춥고 눈도 많이 왔단다. 시골집은 짚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이었고 뒷마당은 수숫대로 엮은 엉성한 울타리가 있었어, 거기에 작은 돌을 모아 평평하게 만든 장독대가 있었는데 눈이 오면 장독대에 눈이 소복이 쌓였지, 눈이 오는 날은 새들도 먹을 것을 찾기가 힘들었나 봐, 짹짹거리는 소리가 나서 안방 뒷문 구멍 난 곳에 눈을 대고 밖을 보면 새들이 수수깡 울타리에 죽 앉아있곤 했지.”

“그 때 할머니는 슬그머니 일어나 뒤뜰로 나가셨어. 장독대 옆 평평한 곳에 눈을 한쪽으로 쓸어내고 맷방석을 두어 자가량 막대기로 버티어 놓고 그 아래에 알곡을 뿌려 놓았어. 막대기 아래 긴 줄을 묶어 안방 뒷문으로 끌고 와서 고정 시킨 후 할머니는 방에 있는 우리들에게 떠들지 말라고 단도리를 하셨지.

할머니도 아이들도 창호지 문틈으로 빼꼼히 밖을 내다보고 기다렸어. 곡식 냄새를 맡았는지 울타리에 앉아 있던 새 중에 한두 마리가 날아왔어, 그런데 선뜻 먹이를 물지 않고 빙빙 돌기만 하고 경계를 하는 거야, 그러다가 한두 마리가 포르르 내려앉아 먹이를 쪼는 거야. 그것을 본 다른 새들이 그제서야 여러 마리 따라서 날아들었어. 방에서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시던 할머니가 ‘이때다’ 하고 줄을 확 잡아당기시면 맷방석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참새 대여섯 마리가 그 안에 닫히게 되었어. 동생들과 나는 참새가 잡혔다고 좋아라 하면서 무척 흥분했단다. 그런데 깜짝 놀라서 도망가던 참새가 그제야 친구가 없어진 것을 알았는지 다시 돌아와 맷방석 주위를 한참 빙빙 돌더라고. 체념을 했는지 나중에 호로록 날아가 버리더라. 참새가 얼마나 약은지 바닥에 곡식이 널렸는데도 그날은 절대로 먹으러 오지를 않더라고.”

남편은 지금도 재미있다는 듯 얼굴이 상기되어 이야기를 끝냈는데 손녀는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눈에 익지 않은 초가집, 맷방석, 장독대 이런 모습이 전혀 낯설기만 한 모양이었다. 새 이야기라면 선비 덕분에 생명을 구한 까치가 선비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져 있는 손녀에게 참새 잡는 이야기를 끝내고 재미있어 하려나 기대하고 있으니……

어색한 느낌을 받은 남편은 그제서야 이야기를 돌려서 하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참새도 개구리도 잡아서 불에 구워 먹었단다. 그때는 사람들이 야생동물들을 먹을 만큼만 조금씩 잡아왔지. 그 때는 눈오는 날 들판에 나가면 야생 토끼가 나올만큼 자연이 훼손되지 않았지. 그 안에서 적당히 생물들이 살고 우리 사람도 살고 그렇게 더불어 살았지.”

“너희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이런 말이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는 쌀이 없어서 굶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쌀독에서 쌀을 한 바가지 퍼내시더니 나에게 저 언덕 위에 있는 집에 갖다주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어. 젊은 엄마가 아기를 낳고 먹을 것이 없어서 젖이 안 나온다며…”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할머니가 좋은 일을 하시는가 보다’ 하고 쏜살같이 달려가서 쌀을 갖다 드린 기억이 있단다.“

사실 한국 전쟁 후에는 먹을 것도 없고 땔감도 없었다. 날은 추운데 땔감이 없어서 남의 산에 가서 몰래 나무를 베어오다가 산 임자에게 걸리면 나무를 빼앗기고 혼이 나기도 했다. 땔감을 구할 수 없을 때는 나무 뿌리도 캐어오던 시절이었다. 커다란 나무 뿌리를 만나는 날에는 캐느라고 힘은 엄청 들었지만 횡재했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대한민국의 산이란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되었고. 숲에 살던 야생 동물들도 자연히 사라졌다.

”윤교야 지금 산에 가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지 않니? 그때는 너도 나도 나무를 마구 베어서 산은 벌거숭이가 되어 여름 장마철이면 산사태가 나서 논을 쓸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났단다. 그 후로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는 나무를 열심히 심기 시작한 거야. 오늘의 푸른 숲은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란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미국에서는 토네이도가 일어나는 거예요.” 거대한 폭풍이 집을 쓸어 가버리는 다큐 장면을 본 손녀가 질문하였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우리가 불러들인 거란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한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과 열기, 냉장고, 에어컨, 네가 쓰는 스프레이 등에서 나오는 프레온 가스도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 온난화를 불러오는 데 한몫을 했지.”

“편리함 뒤에 오는 불편함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우리 한 번 생각해 볼까? 쓰레기도 줄이고 물도 전기도 아껴 쓰면 어떨까? 휴지 한 장 꺼내서 쓰는 것은 쉽지만 숲이 줄어들면 어떤 자연 현상이 생길까 생각하면 쑥쑥 뽑아 쓰던 손길이 줄어들겠지?”

토끼 이야기에서 참새 이야기로 나아가 기후 변화까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계속 되는 동안 점차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손녀의 표정을 보면서 저으기 안심이 되는 것은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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