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얼'을 지키는 창영초교, 우리 詩의 얼을 지키는 시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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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얼'을 지키는 창영초교, 우리 詩의 얼을 지키는 시조회
  • 이희란
  • 승인 2023.01.31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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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이희란 / 인천시조문학회 회장
1월 28일 열린 141회 배다리 시낭송회
1월 28일 열린 141회 배다리 시낭송회

계묘년 정월 초이레(2023.1.28.토) 오후 2시, 배다리 아벨전시관 2층에서 141회 배다리 시낭송회가 열렸다

이날 초대는 '고 최성연 선생님과 인천시조문학회'였다.

연이은 강추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되었지만 배다리에서는 바람과 햇살이 부드럽게 감싸 돌고 있었다. 2007년 11월부터 141회 동안 이어온 시낭송회에서 시조는 처음 초대 된 터라 인천의 시조인 들은 조금은 들뜨고 상기된 표정으로 아벨전시관에 일찌감치 삼삼오오 모여들면서 겨울 냉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시낭송회는 최성연 선생님을 추모(김학균 전인천문협회장, 신연수 시인)인사하는 시간으로 먼저 문을 열었다. 시조시인이셨던 최성연 선생님은 깊은 애향심으로 인천 근대사 발자취를 찾고자 사재까지 털어가며 발품을 팔아 ‘개항과 양관 역정' 책을 만들어낸 향토학자이셨다. 그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아벨전시관에는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46명의 눈동자가 빛을 내며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최성연(호 소안素眼.우백又百) 선생의 추억담은 아벨전시관에 모인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시조집 '은어'와 '갈매기도 사라졌는데'에서 발췌한 시조를 참석자들이 낭송하였고, 2부로 인천의 시조인 17분들 시낭송으로 이어졌다.

최성연 선생님은 1914년 율목동에서 출생하여 인천공립보통학교(창영초등학교)를 졸업하셨다. 창영학교는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이다. 올1월 30일자 인천일보 이문일 논설위원의 글을 빌리자면 1895년 7월19일 공포된 소학교령(고종황제 칙령145호)에 ‘인천부공립소학교’ 설치를 발표했고 이듬해 1896년 2월 문을 열어서 배움의 터전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1883년 개항으로 인천 개항장 근처에 터를 키운 외세는 그곳에 거주하던 조선인을 남촌(쇠뿔고개)으로 내몰아서 터전을 빼앗았고 삶의 터전을 잃은 조선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를 보내며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또한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1919년 3월1일, 인천 최초로 독립만세를 외치던 발상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도 하나 넘어 있는 일본의 서슬 퍼런 위세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배다리 쇠뿔고개 꺼지지 않은 불꽃”은 창영(창성하고昌,영화로운英)학교가 세워졌음이며 그곳은 “인천의 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인천 교육당국은 한국근대사적 인천의 얼이 깃든 창영초등학교를 또 다른 경제와 효능의 변칙을 대며 도리깨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얼 = 정신의 줏대”은 본질을 버리지 않음이다. 얼”은 기운이다. 정신의 푯대다. 자기의 생각을 꿋꿋이 지키고 내세우는 기질과 기풍을 가진 인재를 키워내지 않으면 인천교육은 얼이 빠진 교육이 된다.

예를 들면 서울 교동초등학교도 폐교 위기에 내몰렸는데 서울형 작은 학교로 지정된 후 공동학구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어느 지역에서든 전입할 수 있게했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전통과 미래가 만나는 인천창영초등학교”에서 1000년을 향해 인천의 얼, 즉, 대한민국의 얼이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인천시조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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