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빗장에서 열린 소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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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빗장에서 열린 소통으로
  • 박병상
  • 승인 2023.01.30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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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사진=연합뉴스

드디어 마스크 실내 착용이 완화되었다. 의무에서 권고로 바뀌었으니 식당이나 카페 복도에서 늘어뜨린 마스크를 엉거주춤 착용하는 일은 줄어들겠다. 새 확진자를 알리는 그래프는 주말효과를 반영하면서 톱니처럼 내려간다. 머지않아 감염 추이와 위험성이 독감 수준으로 완화되리라 전문가는 점친다. 3년 만의 일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관계 맺지 않은 삶은 불가능하므로 인간(人間)이라 말할 텐데, 인구가 도시에 늘어나다 보니 지나치게 밀집되었다. 사람 사이의 밀접한 관계 안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생물이 사람이지만, 관계는 사람에 한정하지 않는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그렇듯, 사람 이외의 생명이 온전할 때 비로소 건강할 수 있지만 생태계에 가장 늦게 동참한 인간은 오만해지면서 자신의 생존 기반마저 훼손했다. 순환하는 에너지를 독점하면서 인구를 일방적으로 늘리며 생태계를 제멋대로 교란했다.

순환을 거부하는 개발과 에너지 소비로 생태계가 회복탄력성을 잃자 코로나19가 창궐했다. 생태계의 순환이 원활했다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채로운 생물이 마구 번져나가는 걸 막는다. 그러나 깊숙한 자연까지 파고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자동차와 비행기에 실린 병원체를 사람이 밀집된 도시로 순식간에 전파한다. 면역력 없던 사람 사이로 거침없이 전파된 코로나바이러스는 3년이 지나가면서 결국 물러나려나? 그리 소망하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잘 사는 국가에서 백신을 거듭 개발해 서둘러 보급한 성과만이 아니다. 전에 없던 강력한 거리두기가 유효했기 때문일 텐데, 익숙한 일상을 포기하게 강요한 거리두기는 버거웠다. 반복하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변이가 유별난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는 백신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되었다. 기후변화는 그만큼 심각해졌을 텐데, 온난화는 영구동토를 녹이면서 얼어붙은 바이러스를 깨운다. 현 생태계의 생물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데,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력과 독성을 능가할지 모른다. 지난 3년 동안 인구를 80억으로 늘린 인간은 다시금 긴장하며 혹독한 거리두기와 백신 개발에 몰두할 수 있을까?

화석연료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해소될 가능성은 없다. 2023년을 맞이해 우리와 세계, 중앙정부와 인천시 어느 곳도 화석연료 과소비를 전제로 가능한 개발을 읊는다.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일상을 반드시 열어야 코로나19처럼 위험한 바이러스의 창궐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데, 개발이 제시하는 탐욕적 편의에 중독된 인간은 3년 전의 일상이 재개될 거라 기대한다. 코로나19의 교훈을 잊었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 완화되어도 시민은 당분간 마스크를 지니고 다닐 것이다. 코로나19는 그만큼 강렬했다. 경각심이 희미해지기 전에 우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을 새롭게 열어야 한다.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으로 거침없이 창궐할 환경을 돌이켜야 한다. 회복탄력성의 회복이다. 경쟁과 차별로 거리 두었던 인간관계가 정의로운 소통으로 가까워야 할 뿐 아니라 비인간이 누리던 생태계를 돌려주어야 한다. 인간사회를 정의로운 소통으로 여는 데에서 그칠 수 없다. ‘생태정의’도 실현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를 앞둔 코로나19 이후에 우리는 미래세대의 생존을 생각하는 새로운 정의를 추가해야 한다. 세대정의다. 생태계 회복을 외면하며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개발이 2023년 이후에 계속된다면 미래세대의 생존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 징후는 2022년까지 분명했고 지금도 경고는 무서워진다. 늦기 전에 인간이라 말하는 사람은 이제 미래세대와 정의롭게 소통해야 한다. 선조가 그래왔듯.

우선 출입구에 빗장을 건 인천시에 요구한다. 코로나19 핑계로 걸었다지만, 바이러스보다 시민의 출입을 일방적으로 차단하는 빗장부터 없애야 코로나19 이후의 일상을 시민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수 있지 않은가. 코로나19가 물러선 이후 세계 초일류 도시, 인천으로 만드는데, 빗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다가오는 시민을 당혹하게 만드는 빗장은 초일류에 반하는 망측한 장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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