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주를 물고 미래를 여는, 용현3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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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물고 미래를 여는, 용현3동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1.16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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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96) 미추홀구 용현3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용현시장 북문, 2023ⓒ유광식
용현시장 북문, 2023ⓒ유광식

 

정초부터 강화도 지진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설 즈음이 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은 바쁜 일정을 기대할 것이고,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위태로움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고요한 느낌이다. 분명 조용한 시간은 아니다. 한 해의 일정을 자유롭게 적어 보는 기회의 시즌이 아닐까 싶다. 작년을 지워 낸 빈 곳에 재차 그리고 지우고 하는 일련의 활동에서 ‘출발’을 짙게 새기게도 된다. 지금은 인천대로가 된 경인고속도로, 인하대학교를 품는 구간의 안쪽 마을을 거닐어 보았다. 용현3동으로 지칭되는 이곳은 수봉산 끝자락에 있는 비탈진 보금자리이다. 해넘이뿐만 아니라 해맞이 맛집이다.  

 

용현3동 행정복지센터(곧 새 청사가 지어질 것이다), 2023ⓒ유광식
용현3동 행정복지센터(약국 탓인지 병원 같기도), 2023ⓒ유광식

 

인천대로 안쪽은 서남향으로, 집들은 모두 이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다. 다양한 생김새로 야산에 자리 잡은 주택과 빌라, 아파트는 지난 시절의 증표로 빛나는 중이다. 국일아파트 주변의 부동산과 골목의 현수막에서 개발과 연관된 심란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골목에는 오랜 역사를 말해주려는 듯 정각(이윤생·강씨 정려)도 함께 한다. 따사로운 햇볕에 눅눅한 기분을 말리는 동네 골목을 따라 겨울이 내달린다. 어느 한 무리의 가족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온 모양으로 왁자지껄하며 집으로 향한다. 간혹 사진기를 들이밀면 때를 같이해 담장 아래에서 삐죽하고 얼굴을 내미는 어르신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네 동네에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고개를 내미는 백구처럼. 

 

비룡길82번길에 자리한 지역주택조합(현재 철거됨), 2021.12ⓒ유광식
비룡길82번길에 자리한 지역주택조합(현재 철거됨), 2021.12ⓒ유광식
주택가에서 불쑥 나타나는 이윤생·강씨 정려 정각, 2021.12ⓒ유광식
주택가에서 불쑥 나타나는 이윤생·강씨 정려 정각, 2021.12ⓒ유광식

 

지명이 그래서인지 골목길도 용의 등줄기 같다. 비룡쉼터에는 인근 노인복지센터에서 산책 나오신 어르신과 아이랑 뛰노는 아빠, 반려견 산책을 나온 주민이 한가한 오후를 그려내고 있었다. 기분 좋은 날엔 까치나 멧새 소리가 유난히 청아하게 들려온다. 어느 양철 지붕 위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진하게 찍혔다. 비탈면에 눈이 오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지만 동네는 문제없이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다. 좀 걷다 보면 오래전 방공포대 진지 자리에 들어선 새 주인인 인천보훈병원을 만나게 된다. 2018년 개원하여 전국에서 6번째로 세워진 보훈병원이다. 아무래도 병원이 들어서니 건너편 용현시장과 맞물리며 시너지가 발생하는 것 같다. 한편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갖게 된 아픈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훈병원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치료가 곧 기억일 터이다.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비룡쉼터, 2023ⓒ유광식
따사로운 햇볕이 가득한 비룡쉼터, 2023ⓒ유광식
인천보훈병원 1층(외래약국 앞), 2023ⓒ유광식
인천보훈병원 1층(외래약국 앞), 2023ⓒ유광식
비룡길 골목, 2023ⓒ유광식
비룡길 골목, 2023ⓒ유광식

 

병원 앞길로 아무리 봐도 낡은 용현3동 행정복지센터가 건물 사이에 낀 모양새다. 이전 신축 논의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던 만큼 올해는 부지 매입과 설계가 잘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용현3동의 자랑이라면 바로 용현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행정복지센터 뒤편은 전부 시장권이라고 보면 된다. 길이 400m의 주 통로와 사잇길은 바다에서 솟구치는 용의 자태라 해도 믿을만하겠다. 시장 역사가 어느덧 60년이다. 시장 안은 현대화 사업을 마쳐서인지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아서인지 밝고 활기가 넘쳤다. 다만 오래된 구역이라 주택가에 자리 잡은 주차장과 화장실을 찾기가 다소 어려웠다. 시장 중앙홀에서 용의 형상을 담고 남쪽의 산물인 섬초(비금도 시금치)와 귤(제주) 한 봉지를 샀다. 그러다 예전 KBS1 시사/교양 프로그램 ‘6시 내고향’에서 용현시장을 두어 번 시청한 기억이 떠올랐다. 이래저래 많은 이들에게 고향을 선물하는 곳, 시장은 언제나 우리에게 소중하다.      

 

용현시장 뒷골목(용현동 누들로드?), 2023ⓒ유광식
용현시장 뒷골목(용현동 누들로드?), 2023ⓒ유광식
용현시장 중앙홀(용의 비호를 받고 있다), 2023ⓒ김주혜
용현시장 중앙홀(용의 비호를 받고 있다), 2023ⓒ김주혜
어느 빈 칼국수 맛집(옥이네는 총정리?), 2023ⓒ유광식
어느 빈 칼국수 맛집(옥이네는 총정리?), 2023ⓒ유광식

 

시장 북문(방향으로 보면 동문 같으나) 끝에는 맞은편 주택가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예전엔 전부 계단이어서 어르신들의 시장 나들이에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는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와 경사면 캐노피 시설이 설치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그런데도 언덕배기에 사시는 분들은 고충이 크다. 멀리 조망할 수 있는 경치(view)가 있다지만 인근 SK스카이뷰 아파트가 싹쓸이해갔는지 그리 부럽지 않다. 용현사거리 용마루에는 용현자이크래프트 아파트가 올해 말 입주 예정이란다. 비탈면에서조차 SK스카이뷰, 용현자이크래프트 아파트가 서쪽 뷰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줄은 꿈에서라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인천보훈병원 산책로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SK스카이뷰+용현자이크래프트), 2023ⓒ유광식
인천보훈병원 산책로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SK스카이뷰+용현자이크래프트), 2023ⓒ유광식
독정이로30번길에서 장 보러 비탈을 내려가는 세 모녀, 2023ⓒ김주혜
독정이로30번길에서 장 보러 비탈을 내려가는 세 모녀, 2023ⓒ김주혜

 

인천이 뜨겁다, 핫하다고 할 적에 대개 이곳은 후보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짧은 골목 끝에 솟은 높은 목욕탕 굴뚝을 보거나 양옆으로 먹거리가 마음 밭을 달리는 상황, 마을의 유래를 따라 깊어지는 골목이야말로 뜨거운 장소로 부각되면 좋겠다. 이곳은 주민 어르신들의 왕래가 잦다.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동감을 지녔다는 의미다. 새로운 아파트에서도 용현시장에 장을 보러 올 것이고 말이다. 오래도록 한 장소를 일구어 온 시대의 사람들로 시작한 장소는 점차 존재감이 커지기 마련이다. 인천대로 안쪽에 훈훈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인지 해가 넘어갔는데도 온 마을에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용현시장 제1공영주차장 옆 언덕을 오르는 한 어르신의 외출, 2023ⓒ유광식
용현시장 제1공영주차장 옆 언덕길을 오르는 한 어르신,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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