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장의 달력을 넘기고, 정서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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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장의 달력을 넘기고, 정서진에서
  • 유광식
  • 승인 2023.01.0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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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95) 서구 정서진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정서진 노을종, 2022ⓒ유광식
정서진 노을종, 2022ⓒ유광식

 

저 고개 너머로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쥐어졌다. 매년 과제 아닌 과제처럼 소중한 열두 달을 선물 받는 기쁨과 동시에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해를 넘기며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데리고 올 장면들을 상기하니 까마득한 긴장감이 돈다. 모두의 소망이 새해가 되면서 마법처럼 이루어지기를 연신 기대해본다. 그런데 우리의 정보와 사고가 다다르지 못하는 이야기에는 슬픔을 거두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 일, 나의 일이 아니라서 무뎌진 것은 아닌지에 대해 말이다. 난수표나 다름없는 전쟁과 추위 속에 터져버린 빌라왕 사건은 가뜩이나 심란한 시국에 원망스러운 온도가 아닐 수 없다. 잠시 생각을 끊고 껑충껑충 서쪽으로 달려 정서진에 닿았다.

 

눈 쌓인 정서진, 2022ⓒ유광식
눈 쌓인 정서진, 2022ⓒ유광식
아라인천여객터미널, 2022ⓒ유광식
아라인천여객터미널, 2022ⓒ유광식

 

서울 광화문에서 서쪽으로 쭉 오면 닿는 곳이 정서진이라고 한다. 이곳은 인천아라여객터미널이 있는 경인항(인천)이다. 바다와 하늘, 육로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만큼 입체적인 공간이다. 아라 전망대에 오르면 주변을 두루 조망해볼 수 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전망대까지는 23층이라는데, 때마침 계묘년이 거기 있는가 싶기도 한 높이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영종대교와 갑문, 매립지와 뱃길을 지나 세어도, 강화도의 모습이 마음을 푸르게 색칠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검단 방향, 2022ⓒ유광식
전망대에서 바라본 검단 방향, 2022ⓒ유광식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종 방향, 2022ⓒ유광식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종 방향, 2022ⓒ유광식

 

한가한 주차장과 주변 도로는 주행 연습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눈 쌓인 공터 위 바퀴 자국을 보니 그 흔적을 미처 지우지 못하고 귀가한 모양이다. 1층으로 내려와 경인항 홍보관과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난 후, 로비의 작은 카페에서 한 해의 시간을 돌아본다. 우여곡절 속 2022년의 활동과 현상들을 트리 옆에 몰래 심어 보며 흡족해했다. 매 희망적일 수는 없었겠지만, 마주한 현장에 대한 이해와 존중, 위로와 연대를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건강일 터이다. 커피 한 잔의 짧은 시간에 길어 올렸던 청량감에 속이 금세 후련해졌다. 

 

전망대에 오른 두 커플, 2022ⓒ김주혜
전망대에 오른 두 커플, 2022ⓒ김주혜
아라타워 1층 로비에 마련된 대형 트리 장식, 2022ⓒ유광식
아라타워 1층 로비에 마련된 대형 트리 장식, 2022ⓒ유광식

 

밖으로 나와 정서진 표석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가족과 연인, 친구로 보이는 분들을 마주한다. 다른 시설의 육중함 때문인지 다소 썰렁해 보이는 ‘정서진 아트큐브’ 컨테이너 시설을 지나면 커다란 조약돌 모양의 하얀 조형물이 눈에 띈다. 일명 ‘정서진 노을종’ 이라는 시설인데, 겉은 서해의 조약돌(?)이고 안은 종 모양 형태로 꾸몄다. 해가 질 때 종 가운데로 태양이 위치하는 순간이 장관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갯벌 앞으로 노을의 풍광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두 세대씩 챙겨 온 사람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한편 정서진을 노래한 정호승(제목: 정서진), 이어령(제목: 정서진 노을 종소리)의 시비도 정서진의 기억을 돋우는 것 중 하나다. 기억나기로 한번은 이 앞 갯벌에 해외 선박 하나가 빠져 기울어 있던 아찔한 장면을 영종대교를 지나며 보았다. 멀리 영종도 공항에서는 비행기가 이착륙 중이고 그 리듬에 맞춰 내 기분도 연신 오르고 내리길 반복한다. 

 

갑문을 바라보며, 2022ⓒ김주혜
갑문을 바라보며, 2022ⓒ김주혜
노을종 사이로 멀리 보이는 계양산, 2022ⓒ유광식
노을종 사이로 멀리 보이는 계양산, 2022ⓒ유광식

 

여객터미널 옆 천막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드문 행인 때문이라도 이 겨울에 더 추워 보였다. 주말마다 지역 농부들이 돌아가며 판매를 하는 것 같았다. 익히 알고 있는 인근 농장 현수막이 보여 반갑기는 했다. 터미널 뒤편의 유람선 선착장 앞에는 서구 중소기업ㆍ사회적기업 홍보관이 있다. 지역 중소기업 생산품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이게 어쩐 일이야) 담당자 분이 들어와 상세히 설명도 해 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주제로, 결국 우리 곁의 가까운 ‘지역’의 의미인 것 같았다. 가까운 모습과 움직임에 소중함을 던져두지 않는 것 말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안다. 경인항이 반대쪽 김포항보다 침체해 보일지언정 비교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성격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뉴스를 검색하니 운하 일대의 침체를 타개해보자는 주장이 없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것저것 많기는 한데 실속이 없어 보이는 분위기라면 조금 서운한 것인가.

 

인천서구 중소기업ㆍ사회적기업 홍보관 내부, 2022ⓒ유광식
인천서구 중소기업ㆍ사회적기업 홍보관 내부, 2022ⓒ유광식

 

우리 사회는 늘 안전을 꿈꾼다. 안전을 위한 시설과 법이 많은데도 왜 자꾸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안전이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올해에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내 가까이의 안전이야말로 올 한 해 1순위 계획이어야 한다는 자세로 말이다. 올해 전례 없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경기침체가 닥칠 거라고 여러 전문가가 확언한다. 실상이 그럴 예정이라 해도 겁먹지 않고 우리는 늘 극복한다. 벌써 장딴지에 힘이 들어간다. 즐거운 마음의 자세로 토끼처럼 뛰어 가보련다. 깡충깡충~ 

 

재주 부리는 한낮의 운율, 2022ⓒ유광식
재주 부리는 한낮의 운율,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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