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립니다 - 배다리에서 책방 할, 책 좋아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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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립니다 - 배다리에서 책방 할, 책 좋아하시는 분
  • 곽현숙
  • 승인 2022.12.01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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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책방거리에서]
(1) 배다리 책방 주인들 - 곽현숙 / 아벨서점 대표
배다리 책방거리의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의 글을 12월부터 매달 연재합니다. 배다리 헌책방과 책방거리 일대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 각종 문화적 사건, 행사들을 배다리에서 잔뼈가 굵은 곽현숙 대표의 눈으로 보고 느끼며 차분히 글로 써내려 갑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

 

내마음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 도른 숨어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끊임없이 삶의 굴레에 부데끼면서도 무던하게 받아내는 마음의 길을 봅니다. 하늘에 길을 놓아, 사람의 몸을 지나, 바다로 흐르는 마음 길!

사람의 마음은 그래서 깊고 넓어질수록 하늘과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빛이 되어 흐른다고 시인은 은빛 물결처럼 시어를 뿌립니다.

제가 책방을 하고 싶었던 것은 그냥 책이 좋아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깊었습니다. 철학성이 다분한 나를 풀어내는 길로 책방에 들어섰습니다. 많은 내안의 물음을 풀어내지 않고서는 세상을 잘 살아낼 수가 없을 것 같았죠.

73년에 시작한 책방에서 77년에 고요한 나를 만날 수 있었으며, 78년에 책방을 잘 정비해서 79년 2월에 다른 분께 넘겼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과일도 팔아보고 집 짓는 곳, 스텐 공장, 책 구르마를 만들어 공장 길에도 가보았습니다. 동생 결혼 그리고 시골 아버님의 장례와 올케의 병원 시중, 교수님 댁에 식모도 하면서... 지위를 불문하고 사람들 안에 깃든 외로움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든 그 외로움을 풀어가는 삶의 모습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지요. 그 방법의 일환으로 독서가 주는 힘은 매우 가깝게 하늘 길로 마음을 열어가는 방법이라고 보였습니다. 1981년 2월 일생을 걸고 책방에 다시 들어섰습니다. 그래도 이 사회 일원으로서 내게 필요하고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40년이 지난 2021년, 몇 명의 중학생들이 와서 이야기를 청합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책을 왜 보는가 물었습니다. 그 중 한 여학생 답이 ‘그냥 내 마음에 무언가 있는데 잘 보이지 않아서 책을 보면서 알아 가려고 보게 되요’ 라고 합니다. 그 학생의 대답에, 이 시대 청소년에게 책을 위한 나의 노동이 포상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 현실로 와서 책의 길을 인정 해 주는 듯 그랬습니다.

이젠 많이 열린 시대입니다. 거기에 걸맞게 책방거리도 변화가 있습니다. 한 책방이 전체 종목을 하는 것보다는 각 분야에 맞는 전문인들이 들어서 책방을 꾸려갑니다. 예를 들어, 음악이라 하면, 음악을 좋아 하는 사람들의 책방이 되어 자연스런 토론장이 되고, 알고 있는 것을 열어 보일 기회로 공연도 하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찾아가는, 학교를 넘어서서 살아있는 현장, 에너지의 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퇴직을 하고 책방을 운영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수없는 책들을 사고 팔아보면서 오래된 책인데도 새로 만나는 책들을 많이 봅니다. 끝없는 무한 세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시도할 때, 흙을 손으로 만져 생기로 전해지는 자연의 동질감을 느끼듯, 몸 노동이 서툰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책방 노동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삶에 생기있는 호흡을 얻는 일이지요. 손수 책꽂이를 만들어 책을 꽂을 때를 상상해보세요.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주 밀접하게 주인이라고 책방에게 인정을 받을 마음이 생기거든요. 상큼한 '독립'의 기본이지요.

하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엮어 간다는 일의 또 다른 이면에는, 어쩌면 추운 겨울 시멘트 벽에 살을 긁히는 매운 맛이 코 끝에 스치는 시간들을 수없이 감내해야 하겠죠.

그런데 배다리에서는 벌써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적자를 보면서도 새 책 무인가게를 꾸려가는 '나비날다' 점주, 이진규 어른께 인수 받으셔서 7년차 되시는 '삼성서점' 점주, 대창서점을 인수하셔서 인문학 서점으로 꾸려 가시는 '모갈 1호' 서점주, 집현전 서점을 건물 째 인수하셔서 2년 넘게 힘들여 꾸며내신 '집현전' 서점주, 양조장 한옥 점포에 어린이 책 '마슈 서점' 점주. 이렇게 힘을 모으는 서점주들의 기운을 받아 배다리 골목에 '시와 예술'이라는 서점이 초록빛 생기를 띠고 횃불을 들고 요정처럼 나타났어요. 그리고 대를 이어가는 '한미서점' 점주도 문화 공방을 곁들여 단단한 힘으로 서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게으를 수가 없네요, 배다리 서점들은 모임도 없이 개인 플레이 이지만 정신의 생태계가 담겨져 있는 책방들이기에 책과 사람이 만나 도시 속 마음의 숲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책 마을은 결국 사랑을 짓는 사람들의 도시를 꾸며 가는 일이지요. 

기다리겠습니다.

책 마을에서 삶을 꾸릴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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