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밑에 새끼를 낳은 떠돌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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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밑에 새끼를 낳은 떠돌이 개
  • 이세기
  • 승인 2022.11.11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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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 설 - 북창서굴]
(19) 떠돌이 개
떠돌이 개
떠돌이 개

놈을 본 것은 저물녘이었다.

나는 재개발로 철거가 막 시작되고 있는 동네 목욕탕 처마 밑에서 내리는 비를 피하며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우울한 하늘만큼 곧 철거될 집들이 앙상한 몰골로 뼈다귀를 드러낸 채 을씨년스러웠다.

건너편 막다른 골목을 등지고 비를 맞고 있는 놈을 만났다. 느닷없이 내린 비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비에 젖은 내 꼴과 다를 바 없었다. 힘이 들어간 두 앞 다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나를 경계했다.

놈에 대한 첫인상은 괴이했다. 적의로 가득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목덜미 털은 극도로 긴장했는지 빳빳하게 일어서 있었다. 꾀죄죄한 몸은 온통 잿빛이었다. 한쪽 귀는 쫑긋 세워져 있었고 다른 쪽 귀는 신경이 끊겼는지 맥없이 축 처져 있었다. 깡마른 몸에 한쪽 눈은 몹시 찌그러져 보이지 않았다. 오른눈은 백내장인지 허옇게 백태가 끼어 있는 듯했다. 눈망울에는 슬픔과 공포의 표정이 분명했다. 하지만 구걸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도도한 눈빛이었다.

놈은 나를 보자마자 체온을 가진 인간을 거부하는 증오의 눈빛을 쏘았다. 좀체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 발짝 더 다가가자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다시 몇 발짝 다가가자 더 이상 뒷걸음치지 않고 이빨을 사납게 드러냈다.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대치가 길어지자 놈은 곧 자신의 영역을 포기했다. 뒷걸음쳤다. 다시 쫓아가자 칠이 다 떨어진 빌라로 들어갔다. 마른 풀이 무릎까지 자란 입구 골목은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놈을 따라 들어가자 지하층에 물이 흥건하게 가득 차 있었다. 철거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건물 행색이었다.

계단 위층 어디서인지 컹컹 짖는 놈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어달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올라오지 말라는 위협인지 해독이 어려웠다. 이층, 삼층 어딘지 분간이 어려웠다. 자꾸만 열리지 않는 문을 열어달라는 것처럼 들렸다.

건물 안은 시체가 썩는 냄새라도 날 것 같이 스산하고 음산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나는 놈을 찾는 것을 멈추고 이층에서 발길을 돌렸다. 머릿속은 쓸데없는 짓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마음이 자랐다. 호의를 베풀고 상처받은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만 발길을 되돌렸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다시 놈을 만난 것은 사나흘 후였다. 집을 나선 나의 발길이 놈을 향했는지 아니면 놈이 나의 발길을 쫓아왔는지 모르겠다. 막다른 골목 끝에서 빈 쓰레기통을 뒤지는 놈과 마주쳤다. 놈은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는지 꼬리를 내리고 슬며시 사라졌다.

나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납작 엎드린 지붕들이 마주한 빌라 골목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시커먼 동굴 같은 물이 괸 지하를 뒤로하고 놈이 사라진 위층으로 성큼 걸어 올라갔다. 놈의 뒷모습을 보니 젖꼭지가 새까맣게 말라 보였다. 진이 다 빠진 근육과 앙상하게 남은 골격으로 몸을 겨우 지탱했다.

순간 나는 놈이 사람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고독이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꼭대기 층에 도달하자 하늘이 훤하게 보이는 옥상 입구로 올라가는 철계단이 보였다. 그 아래서 놈이 빛바랜 털목도리로 보금자리를 튼 채 새끼들을 품고 있었다. 어미의 품속에 있었던 세 마리의 새끼들은 낯선 손님을 향해 일제히 여섯 개의 눈으로 응시했다. 호동그라니 빛나는 눈빛이었다.

염주 씨알보다 작은 까만 눈망울은 무구한 마음이 들어앉아 헤아릴 수 없이 깊었다. 환멸에 찬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새끼의 눈망울을 보고 그 눈으로 어미의 눈을 보자 내 눈은 어느새 무고한 죄책감으로 차올랐다.

나는 비로소 내 마음의 거처에서 자라던 황량한 어둠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무겁게 어둠에 짓눌린 시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옥상 철계단
옥상 철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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