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익은 가을 단풍과 함께 한 강화 감성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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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가을 단풍과 함께 한 강화 감성나들이
  • 허회숙 전 인일여고 교장
  • 승인 2022.10.30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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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부터 25기까지... 인일 동문들의 강화 나들이

 

시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29일 새벽 5시,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인다.

오늘 따라 왜 이리 아침시간이 더딘지 조바심이 난다. 마치 옛날 학창 시절 소풍가던 날 아침 같다.

인일여고 총동문회가 마련한 강화 나들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한다.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답게 하늘은 높고 푸르고 햇볕은 따사롭다.

송내역에 내리니 두 명의 안내원이 기다리고 있다. 후배이자 제자인 안내원은 “인일 동문이신가요?”하다가 “어머 선생님”하며 화들짝 반긴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이 전에 모이던 곳과 반대편이어서 안내가 없었다면 헤맬 뻔 했다. 버스가 늘어선 앞에 도착하니 전체 안내를 총괄하는 17기 대표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이번 가을 강화 나들길 행사에는 1기부터 25기까지 총 260명이 참석하여 버스 6대로 이동했다. 몇 달 전부터 철저하고 세심하게 준비해 나가는 모습에 ‘청출어람’이 이래서 생긴 말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장 맏이인 우리 1기 5명은 송내 1호차의 맨 앞자리에 탔다. 이 차에는 1기부터 8기까지32명과 안내와 도움이 역할을 맡은 17기 3명이 탑승했다. 차에 탄 동문들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고 옛날을 회상하며 깔깔거리다 보니 어느새 강화군 온수리의 성공회 성당 앞이다.

나는 강화에는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성공회 성당은 처음이어서 웅장한 목조건축물이 이채롭다. 성공회(聖公會)는 영국의 잉글랜드에서 기원한 카톨적인 요소가 강한 개신교다. 이 건물은 1906년(고종 43)에 영국인 초대 주교인 코프(Corfe, C. J.)에 의해 건립되었다.

성당의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은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한옥 교회건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기법으로 교회의 내부공간은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라 지은 목조건물이다. 초기 성공회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종교사 및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마치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온 기분으로 성당 앞 층계에 차량 별로 나란히 앉아 기념 촬영을 했다.

차량 6대로 온 260여명이 성당 앞뜰을 가득 메운 가운데 서로 찾아다니며 인사 나누기에 바쁘고 즐거운 모습들이다. 여기서부터는 강화 둘레길 걷기 팀과 고려궁지 산책 팀으로 나뉘어진다. 우리 일행은 고려궁지의 산책을 택해 단풍 곱게 물든 언덕길을 오른다.

고려궁지는 1964년 사적 133호 지정된 강화읍 북문길 42로에 있는 궁궐터이다.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해 고종 19년(1232)에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긴 후 궁궐을 건립하고 39년간 사용한 곳이다. 몽골과 화친한 1270년 환도하면서 몽골의 요구로 궁궐과 성곽모두를 파괴 하였다. 조선시대에 왕이 행차 시에 머무는 행궁과 유수부 동헌, 이방청, 외규장각, 만녕전 등을 건립하였다. 병자호란과 병인양요로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1977년 강화 전적지 정화사업으로 보수 정비되었다. 현재 이 곳에는 조선시대 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외규장각(2003년 복원)등이 남아 있다.

외규장각에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갔던 많은 수의 의궤가 모두 반환되어 보관되어있다(2011년 4월과 5월). 2007년 6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조선왕조의 의궤’로 지정되었다.

고려궁지는 전에도 몇 번 방문하였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몽고와의 항쟁이나 삼별초의 난 부분 해설은 사관에 따라 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앞으로 조금 더 세심한 재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풍 곱게 물든 고려궁지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낸 후 점심식사와 즐거운 여흥이 기다리는 에버리치 호텔로 향했다. 에버리치 호텔은 강화읍 화성길 50번길에 위치한 3성급 호텔이다. 조금은 일본식 분위기가 풍기는 조용한 곳이다. 커다란 컨벤션센터의 중앙 무대에는 ‘인일! 그대의 자랑이듯. 그대! 인일의 자랑이어라’하는 현수막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뭉클해지는 심정으로 맛있는 비빔밥을 후딱 먹어 치우고 향기 짙은 원두커피 한잔 뽑아들고 친구와 둘이 숲속 길을 산책한다. 이 순간을 즐기라는 ‘카르페디엠’이란 말이 저절로 입가에 맴돈다.

정진향 MC(13기 동문)의 걸쭉한 입담과 순발력있고 재치있는 사회는 연신 좌중에게 폭소를 안긴다. 기별 장기 자랑으로 등단한 11기의 가장 무도회는 60대 중반으로 믿기지 않는 관능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막내 25기의 ‘낭랑 18세’무도는 역시 젊음의 싱싱함이 번득이는 무대여서 인기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세계 각지로부터 온 동문들이 7,8명에 이른다.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카나다 등에서 이 행사를 위해 왔다는 동문들은 한 자리에서 모든 친구들을 만나고 동문 전체가 함께하니 이 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교가를 2절까지 제창한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열기가 가슴에 퍼진다. 260여명 전원이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율동을 섞어 이별의 곡을 합창했다.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다. 오후 3시가 넘어 귀가 길에 오른다. 서로 찾아다니며 얼싸 안고 내일을 기약하는 모습들이 정겹다.

인일의 미래가 인천의 미래이고, 인천의 미래가 곧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자성예언으로 오늘의 행사를 정리하며 한결 젊어진 기분으로 귀가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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