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식 多對多 돌봄 농장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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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식 多對多 돌봄 농장을 꿈꾸다
  • 이광구
  • 승인 2022.10.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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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정책, 듣다]
이광구 / 강화밝은마을 대표

‘새벽 씨가 장애인이냐고 몇 번 물어봤어요.’

꿈공작소 김은회 소장이 문화제가 끝나고 보내온 카톡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중간중간 새벽 씨가 “쿠키 먹어요!”라고 소리칠 때마다 자기들과 뭐가 다른지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이렇게 응대했다.

‘애들이 관찰을 잘했네요. 이런 것도 장애인식 교육의 일부겠지요.’

 

발달 장애인과 어울리기

꿈공작소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지도를 하는 곳인데 특별히 진로지도에 초점을 두는 기관이다. 그래서 김 소장은 지역의 이런저런 현장에 아이들을 많이 데리고 다닌다.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세상을 익히라는 뜻이다. 그런 김 소장에게 나는 ‘화가와 장애인의 세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자는 제안을 했다.

발달 장애인인 새벽 씨가 손풍금(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화가가 그걸 그림으로 그려주는 걸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장애인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중견 화가의 스케치 솜씨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미술의 세계도 맛보게 하자는 뜻이었다.

초등 2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한 첫 시도였는데, 분위기는 많이 어수선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보려는 숨은 의도는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길상면 선두리의 아름다운 카페 다루지에서 ‘흑염소 없는 거, 보러 가요.’라는 제목의 문화제가 열렸다.

장애인 친구들이 악기연주를 하고, 만든 영화와 그린 민화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장애인 친구들이 주도하는 문화제에 동네 사람이 백 명 넘게 모였다. 카페 주인은 장소를 빌려주고, 협동조합 이사들은 김밥과 샌드위치 그리고 쑥떡을 만들어왔다.

특별한 음식은 과자(쿠키)였다. 강화교육지원청의 장애인 제빵 교실 출신인 두 친구에게 나는 행사에 쓸 과자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친구들은 반갑게 제안을 받았고, 교육청의 제빵실을 빌려 이틀 내내 100명분이 넘는 과자를 만들었다.

“제빵실 선생님이 굉장한 성공이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말하며 두 친구는 자신들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행사 날에도 일찍 와서 준비하고, 끝난 뒤에는 늦게까지 뒷정리를 했다. 나는 과자 만들던 첫날 밤에 제빵실 청소와 설거지를 도와주고, 족발을 함께 사먹었다. 친구들은 먹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걸 더 좋아했다. 행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한 이후, 저녁 먹을 때도 친구들은 말이 많았다. 더 특이했던 건, 행사 다음 날 저녁에 한 친구한테서 온 전화였다.

“지금 일어났어요.”

과자 만드는 것도 다 끝났고, 행사도 끝났는데, 솔이 씨는 늦잠 자서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쯤 되면 솔이 씨가 이번 행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솔이 씨는 정신과 약을 먹고, 몸도 아픈 데가 있다. 잠이 불규칙하고 늦잠을 자느라 약속을 못 지키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번에 과자 만드는 책임을 완수하느라 바짝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다른 한 친구인 선희 씨는 모임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여러 차례 진단을 받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못 찾았다. 그래서 더 불안해하고 자꾸 아프다고 한다. 나는 이 친구에게 이렇게 놀려(?)주었다.

“나는 너무 바빠서 아플 틈이 없어.”

내가 2년 동안 영화모임을 같이 하면서 살펴봤는데, 이 친구들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친구도 몇 안 되는 것 같고, 돈 버는 일은 거의 없다. 한 친구는 군청에서 주는 임시 일자리를 두어 달 했다. 카페 일도 두어 달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시내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이후로는 그 일도 못 하고 있다. 일도 없고 놀 친구도 거의 없으니 집에 있는 일이 많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이 규칙적이지 않다. ‘이렇게 살면 없는 병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이 친구들에게 제안했다.

“나 따라다니며 일할래?”

평소 하는 걸 보면 싫은 건 금방 반대하는데, 내 말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선희 씨가 더 관심을 보였다.

“고구마 캐야 하고, 들깨도 베야 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농사일은 좀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내일모레, 아는 사람들하고 교동에 사진 찍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선희 씨는 동의했다. 그날 오전 내내 교동 이곳저곳을 같이 다녔다. 점심을 같이 먹고, 우리는 일행과 헤어져 철산리 우리집으로 와서 들깨 수확을 했다. 선희 씨는 처음 해보는 거라고 했다. 일을 안 해봐서 그런지 힘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와 아내가 하는 사이, 선희 씨는 쉬지 않고 열심히 낫질을 했다.

“이제 들깨 수확도 해봤네~.”

“그렇네요.”

이렇게 대답하는 선희 씨 표정이 평소보다 밝았다.

 

여럿이 모이면 서로 돌봄이 가능

내가 대표로 일하는 ‘농업회사법인 강화밝은마을’(이하 밝은마을로 줄임)은 발달장애인 가정들이 주로 모여서 만든 회사다. 강화의 농산물을 외지에 팔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영화모임과 음악 모임을 해왔다. 지렁이농장에 커피 찌꺼기를 수거해 운반해 주는 일도 장애인들과 함께 해왔다.

그러다 올해부터 농식품부에서 선정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농장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역사회서비스공동체’이다. 밝은마을과 다른 4개 기업이 함께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을 하는 사업이다. 

“안 그래도 하는 일인데, 돈을 대준다니 더 좋은 일이죠.”

주변에서 사회적 농업에 대해 물을 때, 내가 하는 말이다. 사회적 농장으로 선정되면서 일이 지난해보다 훨씬 많아졌다. 장애인 가정들이 토요일마다 모여 텃밭 농사를 짓는다. 혼자 사는 어르신에게 식사재료를 나눠주는 일도 한다. 영화모임과 음악 모임 횟수도 더 많아졌다. 지렁이농장에서 재활용하기 위해 커피를 수거해 오는 카페 수도 두 배로 늘었다. 어르신들의 불편한 점을 조사하는 일도 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분석해서 실제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장애인과 어르신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모아 며칠 전에 ‘흑염소 없는 거, 보러 가요.’라는 제목의 문화제를 한 것이다. 지역 사람과 장애인들이 어울리는 마당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장애인 입장에서는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서보는 기회를 갖기 위한 것이다. 문화제를 구경한 장애인 중에는 이날 선보인 음악, 미술, 영화모임에 참석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농식품부에서 선정하고 지원하는 사회적 농업은 농업과 농촌을 활용해 지역사회의 사회적 약자에게 일자리, 교육, 돌봄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서유럽의 네덜란드,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에서 하는 사회적 농업을 많이 참고한 사업인데, 보건복지부에서 하는 사회복지 사업과는 복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방법은 크게 다르다.

나는 장애인 사업을 하겠다고 설립한 밝은마을 일을 하면서 개인 차원에서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3년째 하고 있다. 이 일은 장애인과 활동지원사가 일대일로 대응해서 장애인의 이동과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다. 수당은 1시간에 14,800원인데, 활동지원사 개인의 수익 차원에서는 사회적 농업보다 훨씬 좋다. 그러나 장애인의 만족도나 활동지원사의 보람은 그다지 크지 않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가 일대일로 몇 시간 같이 있으면 둘 다 지치고 따분해질 뿐이다.

사회적 농업 차원에서 장애인은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비록 사회성은 많이 떨어지더라도 장애인도 여러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싶어한다. 텃밭 농사를 하든, 문화 활동을 하든, 다른 경제활동을 하든 마찬가지다.

내가 돌보는 삼십대 초반 청년은 어떤 면에서는 정신연령이 5~7세 수준이고, 노동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이 청년과 내가 단둘이 있으면 나는 꼼짝없이 이 청년을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이 청년이 돌봄 농장에 가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그 농장에 오는 6살 아이와 청년은 손잡고 함께 돌아다니기도 하고, 청년이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농장에서 아이가 청년의 손을 잡고 걷다가 청년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형아, 형아는 손이 왜 이렇게 커?”

논리적 설명을 못하는 청년은 그냥 웃기만 했다. 식당에서 또 다른 6살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 울고 있었다. 그러자 청년이 그 아이의 뒤에 가서 어깨를 가만히 만져주었다. 그 쉬운 ‘울지마’란 말도 못하고, 그저 서 있기만 했다. 그래도 아이는 기분이 좋아져 이내 울음을 그쳤다.

강화 ㈜콩세알 사회적농장의 텃밭정원

다대다 돌봄인 네덜란드의 돌봄 농장

네덜란드의 돌봄 농장은 우리에 비해 규모가 꽤 크다. 농장 주변에 사는 장애인, 노인, 술중독자,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가 주로 낮에 농장을 찾아 서로 사귀고, 식사도 하고, 적당히 노동도 한다. 농장은 농축산물과 가공품 생산도 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영업도 한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가 그 농장을 이용한 시간에 비례해 예산을 지원한다.

주로 일대일 대응인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제도에 비해 네덜란드의 돌봄 농장 모델이 훨씬 효과가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농업 역시 기존 사회복지제도에 비해 예산 대비 효율은 훨씬 높다고 본다. 당장 제도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가능한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더 좋은 방식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 방향은 첫째, 쾌적하고 넓은 자연환경, 둘째, 일대일 돌봄이 아니라 다대다 돌봄이다.

얼마 전에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센터를 보기 위해 부평구에 간 적이 있다. 장애인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도심의 큰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나름 넓은 공간에 깔끔하게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강화에서 만나는 장애인 친구들을 그런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넓은 자연을 대하고 이곳저곳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그곳이 아무리 프로그램을 잘 운영해도 재밌을 것 같지 않았다. 다대다 돌봄이 유익한 것은, 위에서 설명한 사회적 농업의 돌봄 농장과 네덜란드의 돌봄 농장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나는 강화에서 폐교를 지역사회와 연계된 돌봄 농장으로 만드는 것을 꿈꾼다. 폐교에 식당, 사무실, 숙소, 가공공간, 판매점 등을 만들고, 인근에 사는 어르신, 장애인, 어린이 등이 출퇴근하듯이 주로 낮에 이용하게 한다. 가까이에 있는 농지와 산림도 돌봄 농장의 활용대상이다. 인천 관내의 장애인을 비롯한 학생들이 이런 곳에 와서 숙박을 하며 배우고 쉴 수 있다.

당장 제도를 네덜란드 식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현재 제도를 잘 활용하면 내용상 네덜란드식 다대다 돌봄을 넓고 쾌적한 농촌 공간에서 이룰 수 있다. 폐교가 인천교육청 소유이고, 인천교육청 관내 학생들이 이 공간을 많이 활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천교육청 예산을 적절히 활용해서 제도상 충분하지 않은 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의 복지가 개선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천시와 강화군 예산도 일부 지원될 수 있을 것이다.

복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다. 강화에서 지역 주민에 적합한 새로운 모델이 자리 잡게 되면, 수도권에서 가깝기 때문에 적절한 영업도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의 장애인, 노인, 학생들이 단체로 이 공간을 이용하러 올 수도 있고, 장애인 부모가 며칠씩 장애인 자녀를 유료로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자체가 관광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점과 강화의 역사와 자연환경이 좋은 점은 큰 장점이다.

안 되는 이유를 찾자면 천 가지를 댈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가능한 이유를 찾자면 단 한 가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바로 ‘내가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인천교육청과 인천시, 강화군이 도와주지 않아서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부실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올바른 꿈을 꾸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바로 내 곁에 있는 장애인과 어르신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 꿈을 내가 제대로 꿈꾸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일이다.

이런 꿈은 강화뿐만 아니라, 인천에서도 도심 변두리 산림이나 농업지역에서 충분히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광구 대표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95호 동시 발행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로부터 원고료를 지원을 받은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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