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그마데 인천! - 아카족 커피농부와의 공정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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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그마데 인천! - 아카족 커피농부와의 공정무역
  • 김정렬
  • 승인 2022.10.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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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 칼럼] 김정렬 / 인천공정무역협의회 상임이사

2014년 10월 14일, 우리 일행은 태국의 북쪽 라오스와 미얀마 접경지역인 해발 1,500m 산꼭대기 마을로 차를 몰았다. 태국의 최북단 국경도시 치앙라이 시내를 벗어나 비포장 오르막 산길로 2시간여 남짓, 놀이기구처럼 요동치던 승합차가 잠잠해지자 하늘아래 첫 동네, 아카족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광역시―요크커피협동조합 공정무역 협약식」 현수막이 내걸린 전통가옥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밀림과 하늘로 우뚝우뚝 솟아 오른 산봉우리를 마주하며 국제도시 인천광역시와 소수민족인 아카족 커피농부들과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다.

아카족은 태국에서도 오지로 알려진 고산지대, 그것도 미얀마, 라오스와의 국경지역에 모여 산다. 아직도 부족개념이 강한 이들의 삶은 마약과 관련한 「골든트라이앵글」의 아픈 과거사와 얽혀있기도 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UN과 태국 황실은 이 일대 마약퇴치를 위해 주변의 고산지대에 커피나무 심기를 장려해 아카족 마을을 포함한 치앙라이 북쪽 고산지대 일부가 커피 생산지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거대 카르텔이 형성된 커피시장에서의 소수민족 커피는 소외당하기 일쑤였고 정상거래는 요원했기에 가난은 일상일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던 아카족 커피농부들과 한국인 선교사의 만남은 운명과 같았다.

약 15년 전 치앙라이를 방문한 이영기 선교사는 이들의 커피농사 실태를 듣고는 아예 터를 잡고 눌러앉아 생두 품질개선과 함께 소량이지만 한국과 일본, 유럽 등지로의 수출에 나서는 등 판로 개척에 전념했다.

그리고 2013년, 아카족 커피 농부들은 마침내 인천과 만나 「인천광역시 공정무역운영위원회」의 현지 실사를 거쳐 인천의 해외공정무역 생산지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공정무역 협약체결에 이른다. 지금 떠올려 봐도 치앙라이 시청과 인천시 관계자, 인천공정무역운영위원회, 인천공정무역협의회, 마을주민 등 150여명이 함께 한 그날 협약식은 아카족 커피 농부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새로운 기회의 날이 아니었나 싶다.

요크커피협동조합은 이날 이후 2022년 현재까지 국제시세 이상의 생두 가격에 공동체발전기금을 포함한 단가로 매년 7~8톤의 생두를 인천에 수출해오고 있다. 이렇듯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확보되자 마을카페 개업, 학교 급식비 지원, 생두 탈곡시설 확보 등 자립기반 구축이라는 공정무역 목표에 한발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2016년 공정무역을 통한 요크커피협동조합의 변화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었다. 당시 이영기 선교사는 인터뷰에서 "물론 인천과의 거래대금만으로 조합원 모두 잘살게 되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매년 고정수입원이 확보되자 커피나무를 더 심거나 아이들 상급학교 진학 비용을 저축하는 등 내년, 후년을 계획하는 조합원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이 아카족 커피농가에 어떤 변화를 주고 있는지를 한마디로 설명한 셈이다.

특히 2018년 방문시 몇몇 조합원이 은행대출을 받아 공동으로 만들었다는 생두탈곡시설을 방문했을 때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설도 시설이었지만 무엇보다 창업에 나선 조합원들의 눈빛을 통해 전해지는 믿음과 기대는 공정무역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물론 요크커피조합의 덩치도 커졌다. 협약체결당시 팡콘마을 15세대에 불과했던 조합원수가 파히ㆍ리체ㆍ롬니옌 마을로 확산돼 4개 마을 45세대로 크게 늘어났으며 인근 마을의 조합가입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니 이들의 내일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2019년 송도센트럴파크 UN광장에서 열렸던 「2019 인천공정무역 페스티벌」에 귀한 손님들이 참석했었다. 요크커피협동조합원 12명이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인천을 찾아온 것. 그들은 전통복장 차림으로 무대 위에 올라 「그라그마데, 인천」이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카족 언어로 「감사합니다, 인천」이라고 인사한 것이다.

2년에 한 번씩 생산지를 방문해온 인천공정무역협의회는 코로나로 인해 벌써 3년이나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으앙너가냐(사랑합니다)』하면 『그라그마데(감사합니다)』라며 손을 마주잡던 사람들. 2021년 코로나 환자가 급증해 산꼭대기 마을에 고립된 채 격리돼 있다며 마스크 부족을 호소했던 아카족 커피농부들.

아직은 기약이 없지만 하루빨리 만나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위로해주고 우리 모두 잘 견뎌냈으니 이제는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며 손을 마주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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