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상태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 민현기
  • 승인 2022.10.12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칼럼]
민현기 / 민주노총 인천본부 공항노동법률상담소

[사례 1]

화물운수업에 종사하던 노동자 A씨는 지난 6월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2013년 2월에 입사하여 9년 넘게 성실하게 근무하였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해고가 결정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용자가 제시한 해고사유는 이미 시말서 작성의 징계가 이루어져 이중 징계에 해당하는 명백한 부당해고였습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는 노동자 A씨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도 아닌 ‘각하’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사례 2]

약국에서 근무하던 약사 B씨는 입사 일주일 뒤 약국장으로부터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약사를 구했다고만 말할 뿐 왜 나가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약사 B씨는 부당해고 구제신청도 불가능하고, 해고예고수당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위 두 사례의 공통점은 해고가 발생하였음에도 노동자에게는 다툴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및 제28조 내지 제33조의 규정이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하였고, 행정상의 어려움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 수는 사용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증감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노동자는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 수를 결정할 수 없는 권한이 없어 노동자 보호 목적의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는 온전히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사례 1이 대표적입니다. 노동자 A씨는 올해 초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하였지만, 일하는 장소, 근무시간, 업무 내용 등 모든 근로조건은 작년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같이 일하던 동료의 소속이 조금씩 달라져 4~5개의 서로 다른 업체 소속의 노동자가 함께 근무한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소속 업체가 다름에도 20명 정도의 노동자는 근로조건이 모두 같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배차표로 관리되었습니다. 화물운수업에서 핵심적 인사관리라 할 수 있는 배차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피하기 위한 사용자의 사업장 쪼개기가 근로기준법의 적용까지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노동자 A씨에 대한 해고가 작년에 발생하였다면 적어도 ‘각하’라는 결과는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노동자 A씨는 해고의 부당성 여부도 판단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문제인 점은 ‘각하’ 판정이 사용자에게는 무제한적으로 해고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사례 1의 사용자는 노동자 A씨 외 다른 노동자 2명에게도 폐업을 이유로 해고를 통보한 상황입니다.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새로이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의 소속이 변경되었고, 그로 인해 더 이상 해고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례 2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사 B씨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오로지 해당 약국의 상시 근로자 수가 5명을 넘지 못해서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근로기준법 제1조는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하는 것’을 법의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근로자는 모든 노동자를 의미하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근로자의 정의가 달라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이 보장되고, 향상될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