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거북등을 하고 전화하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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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거북등을 하고 전화하는 청년
  • 이세기
  • 승인 2022.08.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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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북창서굴]
(13) 마늘 한 접
고추 말리기

마늘 한 접

이웃집 아주머니가 마늘 한 접을 들고 왔다.

삼십 대 초반이 된 아들 ㅂ군이 일자리 사주를 보았더니 대운의 흐름이 막혀 극 하는 오행이 들어오게 돼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주엔 형충(刑沖, 형벌을 받고 때려 맞는 나쁜 오행)도 끼어 있다며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운세에 액운이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이 말을 듣고 몇 년째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자식 걱정으로 한숨이 깊었다. 혼령이 지났는데도 출가는커녕 제 밥벌이도 못 하는 자식 탓에 마음고생이 컸다. 아들에게 당장은 취업 길이 막혀 있으니 경험도 쌓을 겸 아버지가 하는 타일 붙이는 일이라도 도와주라고 했지만, 그 일은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이라며 막무가내로 거절했다.

다 큰 자식 눈치를 보느라 매사 바늘방석이라고 하소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들은 슬리퍼에 모자를 쓰고 매일 골목 입구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앉은 자리에는 납작하게 짓눌린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지만, 한 번도 치우지 않았다. 거기에 밤낮없이 전화통을 붙잡고 살았다. 그런 ㅂ군을 볼 때마다 골목 입구에 항상 뿌려져 있는 일수 명함이나 줍지, 하며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했다. 무슨 비밀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전화를 거는 장소만 다를 뿐 자정이 넘도록 전화통을 붙잡고 살았다. 필시 애인이려니 했다.

애인이라도 있으면 좋게?

아주머니가 마늘 단을 뜯던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얼른 장가라도 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ㅂ군의 실업이 해결 기미가 없자 보다 못해 무슨 묘책이나 방법이라도 있을까 해서 집에서 가까운 동네 보살집에 찾아갔던 모양이었다. 다행인 것은 아들이 30~40대에 대운이 들어온다는 보살의 점괘였다. 흉하면 길하기도 하니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보살은 지금까지 일이 안 풀린 것은 그게 다 조상 덕을 보지 못해서 그러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참회하는 공양을 가까운 절이라도 가서 지장보살님께 드려보라는 처방을 내렸다.

백중(百中)을 맞아 자주 다녔던 약사사(藥師寺)에 가서 어둡고 춥고 배고픈 곳에서 벗어나 밝고 따뜻한 곳으로 가도록 정성껏 제를 지내 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불공을 드렸다.

요 며칠 전이었지만, ㅂ군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아들이 취업했다며 드디어 날개를 달 모양이라며 기뻐했다. 창고 상하차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이지만 그나마 직장을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

하지만 그 일도 얼마 못 갔다. 아들이 상하차 일을 하다 그만 다리 골절을 입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 복장 터질 노릇이라며 자식새끼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며 혀를 내찼었다.

ㅂ군은 다리에 깁스하고, 허리에 복대를 두른 채 다시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한번은 담벼락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길래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나 엿듣고자 했었다. 하지만 한곳에 지긋하게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쫓기듯 이쪽저쪽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밤낮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사는 곡절이 궁금했다. 전화를 거는 낌새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뭔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리라, 생각이 들끓었다.

마당에 앉아 아내와 이야기하며 얼추 마늘 한 접을 다 깔 무렵이었다.

올해는 알배기 황석어젓이 구수하게 익어 가져다줄 터이니 맛이나 보라는 아주머니의 솔깃한 귀동냥을 곁에서 듣던 중 넌지시 아드님이 보이지 않네요? 하고 물어보았다.

어디서 전화하겠지? 하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심중에 억누르고 있었던 숨이 견디다 못해 부력으로 떠오르듯 마침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무슨 통화를 항상 그렇게 해요?

제 친구들이지 뭐, 요즘 집에서 노는 아이들이 많은가 봐, 하고는 수북이 쌓인 마늘 껍질 속을 뒤적이면서 다들 같은 처지에 전화로 통화하면서 위안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두둔했다.

글쎄, 일전에는 평생 자신을 키워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고!

저녁 8시면 매일 어김없이 골목에서 거북등을 하고 쭈그려 앉아 전화하는 청년과 그것을 엿듣기 위해 궁금해하는 사내를 생각했다. 무슨 대단한 반전과 절정을 상상했던 나는 그만 머리를 끄덕였다.

마침 이웃집 대문 쪽에서 발기척이 났다.

빨갛게 익은 고추 널어놓은 골목을 반소매를 입은 어깨가 축 처진 구부정한 그림자가 슬며시 타들어 가는 오후의 햇빛과 함께 빠져나갔다. 바짝 짓눌린 걸음이었다.

폭염의 밑바닥에서 첫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일제히 일어섰다.

골목 안
골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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