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는 사회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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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향한 경주를 멈추는 사회적 전환
  • 김은복
  • 승인 2022.08.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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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노동법률상담소

지난 7월20일 부평구 한 상가건물에서 70대 노동자가 추락하여 숨을 거뒀다. 3층 건물의 방수공사였고 고소작업대(소위, 스카이차) 위에서 코킹작업(실리콘 등을 이용해 틈을 메우는 작업) 중 지반침하가 발생했으며 스카이차가 휘청거리는 와중에 노동자가 12m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약 100만원대에서 하루 정도 걸리는 공사였다고 한다.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정들을 살펴보면, ①고소작업대(스카이차)를 사용하는 작업은, 작업시작 전에 관리감독자가 작업면의 기울기 등을 점검하고 즉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②스카이차 등 차량계하역운반기계는 작업 전에 추락 등의 위험 예방을 위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대로 작업해야 한다. ③사업주는 스카이차 같은 기계 운전을 시작할 때 작업자 배치, 교육, 작업방법, 방호장치 등 필요한 사항을 확인하고, 신호방법과 신호수를 정하여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④사업주는 차량계하역운반기계 작업 시, 기계가 넘어지는 등 위험 예방을 위해 유도자를 배치하고 지반의 부동침하와 방지 및 갓길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⑤사업주는 스카이차를 이용하는 작업 시, 작업자가 안전모, 안전대를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장에는 관리감독자가 없었다. 아마도 방수공사 업체 사업주는 5인 미만의 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이라 관리감독자 선임의무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현실의 법제도는 노동자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안전상황을 점검할 관리자 배치 의무를 두지 않았다. (나아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안전보건교육도 의무사항이 아니고,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도 적용받지 않는다.) 하지만 관리감독자 선임의무가 없더라도 사업주는 사전에 지반침하 방지조치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가 안전대 등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작업에 투입하지 말아야 할 의무도 있다.

‘뭐 이리 복잡하고 어려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 반감을 갖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자기가 보호구 안 찬 걸 어쩌라고?’ 말이다. 그러나 안전 점검 등을 할 현장 관리자를 배치하지 않을 거라면 사장이라도 직접 나와서, 지반침하 가능성을 확인했어야 하고 작업자가 안전대 착용하지 않으면 작업을 안 시켰어야 했다. 이런 조치들을 하지 않고서, 위험할 순 있지만 바쁜데 알아서 안전하게 조심해서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제아무리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하지 않겠다는 미필적 고의와 다름 아니다.

한편 이런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루짜리 100만원 공사에 저걸 다 어떻게 지켜?’ 라고 말이다. 이 대목에선 필자도 말문이 막힌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입장을 바꿔 다시 생각해본다. 업체에 방수공사를 맡긴(발주한) 건물주는 소비자였다. 최대한 싸게 그리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을 누리고 싶은 소비자 말이다. 그 니즈(Needs.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한 공급자(업체)는 현장에서 안전에 투자하지 않았다. 싸고 빠르게라는 니즈(Needs)의 함정에서 노동자의 목숨은 운에 맡겨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니, 나도 공범인 것 같다. 필자 또한 싸게 구매하고 빠르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이다.

한편 발주자는 모두 (힘없는?) 소비자인가? 그렇지 않다. 발주자는 소비자의 특성도 있지만 많은 경우 건설사업에서 발주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로서 위험을 감수한 노동의 성과물, 즉 수익을 최종적으로 누린다. 그러기에 건설사업에서 발주자의 책임이 강화되는 추세이고 올해 8월부터는 1억~120억 사이 공사에서 산재예방 지도계약 의무 주체가 원청(시공업체)에서 발주자로 전환되기도 한다.

다만 법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영세한 현장일수록 싸고 빠르게라는 소비자(발주자)의 니즈(Needs)와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시공업체의 미필적 고의 사이에 악순환 관계를 제어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는 점, 결국 작은 사업장, 영세한 현장에서도 안전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응당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데 그에 따른 비용 상승을 우리 모두가 마땅히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3년 전 국제노동기구 ILO의 국제노동기준국장은 대한민국의 ILO 핵심 협약 비준을 권고하기 위해 동영상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거기에서 그는 ‘노동권 분야에서 공정하고 평평한 운동장이 사회적 덤핑과 바닥을 향한 경주를 피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에 우리는 사회적 덤핑과 바닥을 향한 경주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노동자이기도 하고 자영업자 또는 사업자이기도 한 우리는 언제나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자의 니즈(Needs)는 사업자의 경영과 투자에 관한 의사결정에 한 몫을 한다. 그러니 소비자인 우리는, 평평하지 않고 기울어져 있는 세상에 대해 각자 조금씩의 책임을 갖는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구의 목숨 값도 차별당하지 않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 더 가진 이들이 걸맞은 책임을 지게 하는 것(위 노동기준국장은 이것을 ‘노동권과 인권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이 처벌받지 않는 풍토 속에서 번창할 수 없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투쟁하는 것, 아울러 바닥을 향한 경주를 중단하도록 비용 상승을 감수하는 개개인의 의지와 실천 모두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을 보다 평평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라는 것을, 이 불행한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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