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새와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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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와 백로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06.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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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강화 들녘의 진객 백로 그리고 저어새

강화 들녘에 하얀 진객 저어새와 백로가 찾아왔다

세계적으로 희귀종인 저어새. 천연기념물 20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저어새는 전 세계 6000여 마리가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가 사는 강화도 마니산 밑 동네(강화군 화도면)는 저어새가 서식하는 강화 개펄과 매우 가깝다.

6월 중순, 모내기가 끝난 들녘은 차츰 녹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이 들어와 개펄이 잠길 때면 저어새는 무논으로 이동해 논바닥에서 먹이 사냥을 하기도 한다. 개구리와 미꾸라지는 저어새의 맛있는 먹잇감이다.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 강화 들녘에서 심심찮게 목격한다.

자전거를 타고 들에 나가면 심심찮게 저어새를 목격한다. 개체 수가 많이 늘었다는 증거일까? 멸종 위기 1급으로 분류된 저어새를 마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며칠 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인천 남동유수지는 저어새의 새로운 번식지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불청객 너구리의 습격으로 저어새 새끼 60여 마리가 집단 폐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마다 조금씩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어새 번식지에 대한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

자전거 길 저 멀리 녹색 들녘에 하얀 점 두 개가 찍혀있는 듯 보인다. 백로인가, 저어새인가? 살금살금 다가가 본다.

가만히 보아하니 두 개체의 행동이 확연히 다르다. 한 녀석은 키가 좀 크고 멀뚱히 서 있다. 두리번두리번하면서 논바닥을 콕콕 찍는다. 하는 행동이 백로이다. 그런데 다른 녀석은 수상쩍다. 쉴 새 없이 벼포기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가끔 고개를 쳐들고 드러내는 긴 부리가 까만 주걱 모양을 닮았다. 저어새가 분명하다.

들녘에서 만난 백로와 저어새. 둘의 사이에서 경계심이 별로 없다.
들녘에서 만난 백로와 저어새. 둘의 사이에서 경계심이 별로 없다.

백로와 저어새의 노는 모습이 이렇게 다를 수가! 서로가 영역 다툼은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백로는 저어새가 휘저어서 나타나는 먹잇감을 훔쳐먹지 않나 싶다.

저어새는 논바닥을 저으면서 부리에 닿는 촉감으로 먹이 사냥을 한다. 먹이를 찾기 위해 좌우로 저어대는 머리가 쉴 틈이 없다. 백로는 저어새가 휘저어 떠오른 먹잇감을 기다렸다 낚아채는 것 같다.

저어새와 백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각자 자기들만의 생존방식으로 살아간다. 백로는 차려진 밥상을 기다리며 먹이를 찾는 것 같고, 저어새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여 스스로 상을 차리는 생존방식인 것 같다. 저어새가 고개가 빠져라 애써 찾아낸 먹이를 백로가 가로채는 형국이지만, 죽자 살자 다투지 않는 모습을 보면 백로에 대한 저어새의 배려가 있는 듯싶다. 지나친 상상일지 모르지만...

녀석들이 자기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녀 벼가 자라는 데 피해는 주지 않을까? 벼가 깊숙이 뿌리를 내려 땅 맛을 본 뒤로는 뜬 모가 생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다행이다.

녀석들의 얼굴을 가까이 보기 위해 살금살금 다가서자 눈치 빠른 녀석들, 어느새 줄행랑을 친다.

저어새와백로의 활기찬 날갯짓에서 건강한 일상을 엿보았다. 내 마음도 훨훨 나는 기분이 든다.

자주 마을 가까이에 나타난 저어새 무리.

 

저어새 / 자작시

흰 무명 바지저고리에
노랑깃 달아
기품이 넘친다
 
긴 주걱부리 다 닳고
목이 꺾일지라도
저어라 저어라
 
내 자손 늘려 키우고
이웃 챙기는 일에
내 몸 하나
부서지는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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