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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자호
  • 승인 2022.02.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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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송자호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휴대폰, 노트북, 컴퓨터, 텔레비전, 노래집. 기타, 리코더, 칼림바, 오선지, 스케치북, 색연필, 수채화 물감. 크레용, 드로잉 펜, 4B연필. 찰흙, 색종이. 손바닥 크기의 메모지, 소설책, 수필집, 시집, 그림책, 신문, 아령, 담밸, 곤봉, 장봉, 실내 자전거, 고무줄, 완력기, 라켓, 아이스 스케이트, 인라인 스케이트, 수영, 마스크, 모자……. 내 곁 사람과 장난감들이다.

요즈음 가득이나 어려운 시절임에 불구하고 내 친구들이 급속히 늘었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코로나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표어 중 하나다.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운 것에는 소홀히 하기마련이다. 그러기에 누군가 이와 같은 표어를 만들었으리라 짐작 된다. 나는 지금 표어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옛 말에 수긍이라도 하려는 듯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대화가 자연스레 멀어졌다.

며칠 전에 직장 동료였던 K가 전화를 했다. 내가 정년퇴직한 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잊지 않고 안부를 물었다. 그도 2년 전에 퇴직했다. 사는 층수는 다르지만 같은 아파트, 같은 직장이고 세상을 이야기하는 방향도 같아 형님, 동생처럼 지냈다.

그가 퇴직한 다음날 나는 만남을 청했다. 흠 없이 직장생활을 잘 끝냈기에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밥 한 번 먹어야지.”

“형님, 미안하지만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어 바쁘니 조금만 뒤로 미루면 좋겠습니다.”

“그럼 한가할 때 연락해.”

그 후로 연락이 두절되었다. 며칠 동안 이제나 저제나 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먼저 전화를 한다고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가 먼저 안부를 물으면 재촉이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게다. 점차 머릿속에서 기억이 흐려질 즈음 코로나가 나라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나는 순진한 아이처럼 정부의 지시를 따랐다. 사람과의 거리두기와 자기 방역 지침을 잘 지켰다. 마스크 구입이 어려운 시기라 선뜻 외출이 쉽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을 달래보려고 바깥출입을 할 경우,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과하게 말하면 똥을 피하는 심정이라고 말해도 될 성싶다.

공원으로 들어섰다. 둘레길을 피해 나무와 나무 사이, 또는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언덕의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내 길은 길이 아닌 길이다. 내가 즐겨 찾던 도서관이 폐쇄됐다. 아파트의 다중 시설도 닫혔다. 한마디로 출입불가를 알리는 곳이 늘어났다.

곧 물러나겠지 기대했던 코로나는 해가 바뀌어도 기세를 높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홍역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행동반경이 줄어들다 보니 시간을 보낼 마땅한 일이 없다. 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성격상 내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으로는 책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도서관이 폐쇄와 개방을 반복했다. 기회를 틈타 책을 한 아름 빌렸다. 집에 있는 책을 다시 읽는 시간도 늘었다. 하지만 책으로만 내 마음을 달랠 수는 없는 일이다.

깔끔 떠는 내 방에는 하나 둘 친구들이 찾아왔다. 곁사람이, 휴대폰과 컴퓨터 속의 비대면 강좌가, 기타가, 스케치 북이, 아령이………. 글 속 첫머리의 물건들이 하나 둘,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나는 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함께 놀아주어야 했다. 방안 가득 늘어놓은 물건을 하루에도 몇 번씩 어루만진다.

갑자기 K와 긴 시간 주고 받은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직장에서는 서로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살았는데 퇴직 후의 삶은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내가 퇴직 후 집에서 안주하는 생활이었다면 그는 전국을 누비는 삶을 살았다. 제주도에서 일정 기간 살아보기, 충주에서, 진주에서, 남해에서, 다시 학교에서 봉사활동하기…….

그는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다. 퇴직 후에는 훌쩍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었는데 마음만 잠시 떠났을 뿐 몸은 떠나지 못했다. 이후에는 코로나 사정이 엄혹했기에 아내는 나의 이런 바램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근접한 이유는 바로 내 망설임이 원인이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이제 바쁜 시기는 지난 거지.’

그와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도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설 명절이 지나고 만나자 할 생각이었는데 망설이다 끝내 건강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차 한 잔 하지, 아니 밥 한 번 먹어야지.’

그의 이야기 속에 2월 한 달은 한가한 시간이 있는 듯하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 다가온다. 새해 인사는 보름 전이라고 했나? 휴대폰에 눈이 간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했다. 손가락이 마음보다 앞선다. 변화를 갈망하는 나는 아직도 여행에 대한 보상의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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