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소년들' - 이설야 시인 2번째 시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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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들' - 이설야 시인 2번째 시집 출간
  • 인천in
  • 승인 2021.10.2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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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 소녀, 소년들의 가슴아픈 이야기들 전해

 

이설야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굴 소년들’을 출간했다. 지난 2016년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출간 후 5년만이다.

지난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설야 시인은 70~80년대 리얼리즘의 정서로 민중적 삶과 애환, 수난의 에피소드들을 써왔다. 제1회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는 인천의 후미지고 축축한 골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작가에게 인천은 언제나 벗어나고픈, 견디기 힘든 애증의 장소였다.

이번 시집에서도 시대와 장소를 넘어, 세계 곳곳의 어두운 골목에 사는 소녀, 소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시인의 속에서 자꾸만 흘러넘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쓰는 수 밖에.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에 의해 부평 조병창, 함봉산 지하토굴에서 착취당했던 ‘굴 소년들’이 등장한다. 소년들은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굴을 팠다.

식량이나 물보다도 천막이 당장 절박한 먼 나라 ‘난민 소녀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을 피할 그늘조차 절박하지만, 어린 산모와 아이가 안전하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 가림막- 천막이 필요하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파업이 자주 일어났던 동구 금곡동 한국 최초의 성냥공장 ‘조선인촌 주식회사 소년 직공 김오진’이 인(燐)을 삼켜버렸는데, 영혼마저 녹아내렸다.

오포를 쏘던 ‘화평동 조막손이’ 가토(加藤)라는 사내는 오발탄으로 손가락이 여덟 개나 타버렸는데, 보상금으로 전당포를 차려 고리대금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인들의 장롱 속에서 집문서를 빼앗으니... 

시인은 ‘굴 소년들’에 모두 25편의 절절한 시들을1,2부로 나누어 담았다.

송종원 문학평론가는 "시인이 일궈놓은 마음의 밭을 들여다보면 이설야는 세상에 퍼져 있는 고통을 돌보는 일이 자신을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내가 이 세계에 어떻게 좀더 올바르게 존재할 것인가를 살피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굴 소년들」

 

한낮의 어둠

하늘 끝자락을 말아 올리던 매캐한 연기

어둠과 어둠이 역사 앞에 내렸지

검은 기차에 실려 강제로 끌려온 어린 소년들

깊은 산속 붉은 물이 흘러내리는 동굴

 

그들은 동굴 벽에 구멍을 내고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지

굴을 파던 소년들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왔지

폭발음이 들리고 구름 연기가 피어올랐지

동굴 입구까지 돌 먼지가 뿌옇게 밀려 나오면

소년들 다시 들어가 가슴에 돌덩이들을 안고 나왔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소년들 굴을 팠어

손톱이 빠지면 피가 멈추지 않았지

 

동굴은 너무 어두워

돌덩이들이 떨어지면 팔다리가 부러지곤 했지

해와 달을 데리고 굴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거운 돌들이 사라질까

 

매일매일 정 두드리는 소리에 뼈가 으스러지는 것 같았지

종유석이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부평 지하호

함께 끌려온 다른 소년들은 조병창과

미쓰비시 제강으로 흩어졌어

그들은 무기들을 실어와 지하호마다 숨기곤 했지

 

죽은 소년들 구름처럼 떠돌다

동굴을 발견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는 했어

붉은 물발자국이 고이고 고인

녹슨 열쇠가 녹아내리는

깊고 깊은 구덩이들

어두운 굴속에 갇힌 오래된 시간의 뼈마디들

 

소년들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굴을 팠어

굳은 제 심장을 팠어

 

죽어도 죽지 않는 소년들

죽어서도 계속 굴만 파는

 

굴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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