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나무의 품처럼, 인천기계공고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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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나무의 품처럼, 인천기계공고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1.09.2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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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람일기]
(64) 인천기계공고 일대 - 유광식 / 시각예술 작가

 

인천기계공고 정문 옆 상가, 2021ⓒ유광식
인천기계공고 정문 옆 상가, 2021ⓒ유광식

 

밤의 길이가 늘어나며 가을이 시작되는 추분이 지났다. 알싸한 새벽공기에 자칫 감기 걸릴까 팽개친 이불을 잡아당기는 손짓에서 환절기임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하루 코로나 확진이 드세다. 바이러스는 계절도 방학도 없는 건지. 섬으로까지의 확진 발생으로 코로나 마지노선에 대해 걱정을 더하게 된다. 세계로 보자면 화산이 폭발하고 얼음이 녹고 기름이 유출된다. 조금씩 혼탁해지는 초록별 위에서 삶의 경사는 가팔라지고 있다. 간혹 닭살이 오르곤 한다.

 

청명한 날씨에 퍼런 점퍼를 입고 노란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주머니, 2021ⓒ유광식
청명한 날씨에 퍼런 점퍼를 입고 노란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아주머니, 2021ⓒ유광식

 

주안 제일시장삼거리에서 용일사거리 사이의 구릉길, 인천기계공고 일대를 산책했다. 구 경인고속도로 도화IC와 종점 사이의 굴곡 지점으로, 여지없이 주택들이 빼곡하다. 용일사거리 아래로는 용현동과 맞닿아 있는 주안2동 서쪽 지역이다. 이 공간은 구 경인고속도로의 관통으로 인해 다소 단락된 구역을 형성한다. 이곳에는 1940년 개교한 인천기계공고가 있다. 80년의 역사를 먹어서인지 학교가 무척 크다. 최근 학교 아래 주유소였던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차려져 자동차 대신 사람들에게 커피를 주유하고 있다. 

 

재미난 이름의 빌라 주택, 2021ⓒ유광식
재미난 이름의 빌라 주택, 2021ⓒ유광식

 

길 건너 주안2, 4동 지역은 대단위 구역 개발 사업으로 우르르 쾅쾅 공사가 한창이다. 명절에는 조금 덜하지만 하얀 담벼락 뒤로 힘센 건설 중장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학교 주변 주택가를 돌고 돌아본다. 뜰이 있는 집들이 있는데 감나무 혹은 대추나무 한그루씩은 심어 놓았다. 모과나무가 눈에 띄기도 했다. 골목 밖으로 가지를 뻗어 감과 대추가 가을의 환영을 듬뿍 받는 것 같아 한결 포근했다. 나무가 주는 정서적 안정이 큰 듯하다.  

 

주안2동 미추5구역 재개발 현장, 2021ⓒ유광식
주안2동 미추5구역 재개발 현장, 2021ⓒ유광식
​주안2동 어느 주택 안 감나무, 2021ⓒ유광식​
​주안2동 어느 주택 안 감나무, 2021ⓒ유광식​

 

도로는 어김없이 좌우를 나눈다. 공간뿐만이 아니라 생활의 모습도 바꿀 것이다. 구 경인고속도로가 주는 구분은 상당했을 것이다. 차음벽을 해놓았지만 늘 자동차 소리와 뒤섞인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 감과 대추가 수봉산 경사면에서 새소리가 아닌 기계음 자장가로 성장하고 있음이 마냥 대견할 따름이다. 어려울수록 견디고 참아 이루어 놓는 인자는 가히 자랑스럽다. 

 

구 경인고속도로 차음벽과 인천기계공고 후면 사이 도로, 2021ⓒ유광식
구 경인고속도로 차음벽과 인천기계공고 후면 사이 도로, 2021ⓒ유광식

 

개발을 목전에 둔 건물에서, 길목에서, 하늘에서 ‘어둠’이라는 칩이 떨어져 나오는 것 같다. 분명 새롭게 바뀌어 이전 모습을 상상하지 못할 테지만, 예전을 상상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편의와 옛 모습을 상상해보는 수고로움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잎 나부끼는 플라타너스와 바보 같은 대화를 시도해 보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위태로움 앞에 예술가는 과연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20년 전 열정과 패기, 2021ⓒ김주혜
20년 전 열정과 패기, 2021ⓒ김주혜
간판들, 2021ⓒ김주혜
간판들, 2021ⓒ김주혜
어느 단독주택 차고, 2021ⓒ유광식
어느 단독주택 차고, 2021ⓒ유광식

 

동네에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가진 고양이의 출현과 반려견의 산책 나들이가 많다. 이 골목 저 골목 돌다가 같은 개와 주인을 만나기도 한다.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추석 명절 담소를 나누면서 널어놓은 홍고추의 건조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잠시 멈추어 선 마을은 마치 멀리 여행을 떠난 따스한 ‘침묵’으로 읽힌다.

 

주택가 골목(한쪽에 고추가 널어져 있다.), 2021ⓒ유광식
주택가 골목(한쪽에 고추가 널어져 있다.), 2021ⓒ유광식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골목 평상, 2021ⓒ유광식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골목 평상, 2021ⓒ유광식

 

오래된 주택가에 높은 건물을 지어 놓으면 문제 되는 것들이 있다. 이웃 건물과의 간격이 일단 가깝다. 조망권,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커진다. 가구 수와 비례하는 자동차의 주차와 좁은 도로 운행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골목 바람이 더는 반갑지 않고 사나워진다. 자칫 역부로(일부러) 그렇게 조성해 만드는지 싶다. 기계 산업의 시대를 우리는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도 맞다. 인생은 테크닉보다는 오가닉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의 기억을 품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그 품에 그저 잠들었으면 한다. 

 

인천기계공고 아래 주택가 진입로 중 하나, 2021ⓒ유광식
인천기계공고 아래 주택가 진입로 중 하나, 2021ⓒ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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