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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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역사다
  • 이정배
  • 승인 2021.09.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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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 이정배 / 전 감신대 교수
-인천 도시산업 선교회 존치를 위한 과제와 전망:1차 학술 심포지엄을 보고

 

60년 역사를 지닌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위한 심포지엄(2021, 8 19, 목)이 열렸다. 두 분 역사학자(손승호, 이상록)와 한 분 문화재전문위원(황평우)의 발제와 이에 상응하는 세분(김상덕, 황병주, 이희환) 학자의 논찬이 있었다. 감리교본부와 중부연회가 주최한 자리였다. 좋은 내용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포지엄 내용이 널리 확산되지 못한 탓에 요약정리를 부탁받았다. 발제자들 모두는 인천산업선교회(이하 인천산선)에 대한 ‘기억’이 우리들 역사의 중핵인 것을 밝혀주었다. 그 ‘기억의 장소’인 인천산선이 중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았던 것이다.

기독교역사학자 손승호는 인천산선를 한국의 ‘노동권’과 ‘여성권리’를 말함에 있어 독보적 위치에 있음을 강변했다. 이 땅의 인권 개념 확장을 위해 인천산선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다. 최초 산업전도가 생겼을 때는 노동자를 기독교인으로 만들려는 교세확장 차원에서였다. 여기서 노동자는 기독교인 고용주에 좌지우지되는 수동적 존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WCC 영향 하에서, 무엇보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 선교는 서민, 노동자를 대변했고 그들을 주체로 여겨야만 했다. 이를 위해 오글 목사는 산업사회, 노동현장에 무지한 목사들을 위해 ‘목회자 르포그램’을 만들고 노동현장에 선교할 생각 말고 오롯이 노동을 배울 목적으로 갈 것을 가르쳤다. 여기서 목사들은 노동자들 현실에 눈을 떴고 괴로워했으며 이들과 만남을 통해 자신들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노동자들이 목사들을 구원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느님 구원이란 인간화, 민주화, 공동체 주의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사상적(신앙적) 전회가 생겼던 까닭이다. 그럴수록 교회 내부적 시각과의 갈등이 심각해졌다. 인습화된 신앙양식과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신학과의 갈등은 당시 독재정권과의 싸움 이상으로 노동목회자들을 힘들게 했다. 본 사안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이슈를 달리하여 지속되고 있으니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실감된다. 이런 상황에도 인천산선은 노동자 교육을 통해 인간 존엄을 가르쳤고 무엇보다 여성 노동자들 인권 향상에 앞장섰다. 남성중심 지배체제를 무너트리고 여성 스스로가 노동조합의 주체가 되었던 것이더. 익히 알듯이 동일방직 사건이 이런 상황을 잘 방증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편에서 남녀 노동자 모두를 하늘 자녀로 의식화시킨 최초의 공간이 바로 인천 화수동에 위치한 인천산선이었다. 기독교적 인권 개념을 산업화 현장에서 노동권으로 구체화시켰고 상층부를 목표로 했던 기성교회와 달리 빈민, 노동계급을 섬겼던 이곳은 유무형의 역사적 가치의 보고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일반 역사학자의 시각은 어떠했을까? 국사편찬위원회 소속된 이상록 박사는 좀 더 넒은 시각을 담았지만 역시 인천산선을 추모와 교육을 가능케 하는 ‘기억의 장소’로 여겼다. 지금껏 민주화 운동이 지식인, 대학생 중심의 엘리트 기억을 통해 전수되었다면 인천산선은 민주화의 또 다른 흐름을 알려준 위대한 유산이자 추모의 공간이라 했다. 인천산선이 차별, 배제된 자들을 주체화시켜 사회, 경제정의를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리스도는 교회 뿐 아니라 공장에도 계신다’는 오글 목사의 말에 주목했다. 오글 목사는 이런 확신에 따라 한국인 목회자들이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로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노동자들을 수난의 종 예수의 삶과 일치시켜 이해한 결과였다. 말했듯이 노동현장은 목회자들에게 배움의 장이지 선교의 공간이 아니라 한 것이다.

당시 산업선교란 산업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 노동자의 삶을 제도적으로 낫게 만드는 일이었던 바, 이를 성육신적 삶이라 일컬은 것이다. 이를 위해 인천산선은 노동법규, 세계 노동사를 가르쳤고 노동자들의 주체적 자각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했다. 결국 독재정권은 오글 목사를 ‘민청학련’사건과 ‘인혁’당 사건과 엮어 공산주의자를 후견한다는 죄목으로 추방시켰지만 국내외적으로 반유신 정권 세력을 결집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낳았다. 주지하듯 조화순과 연루된 1970년대의 동일방직 사건- 여성 노동자들의 나체 시위, 똥물세례-은 인천 지역 민주노총의 산파역할을 했다. 수많은 공장, 산업체에서 노조들이 결성되었고 여성 지도자들을 배출시킨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인천산선이 항시 앞장섰다. 해고된 노동자들 투쟁 지원, 대학 출신 노동자 현장 지원, 구속학생 지원 사업, 구속자 가족 지원활동 등 무수한 일을 해 낸 것이다. 이에 더해 민주노조 파괴, 노동법개악, 교회 내부 이간책에 대해서도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저자는 글 말미에서 인천산선활동이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이 때 더 빛을 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민주주의 실천의 터전으로서 ‘기억의 장소’가 될 것을 피력하였다. 하지만 화석화된 박물관과 같은 것이 아니라 저항과 운동의 공동체에 다시 참여하는(re-membering)하는 과정으로서 기억의 공간이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황평우 소장의 글은 인천산선의 문화적 유산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존시킬 방도를 모색한 것으로 본 심포지엄의 말미를 풍요롭게 했다. 인천산선은 문화유산의 기본 요건인 기록, 기억 그리고 기념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글쓴이는 인간 존재를 환경조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장소 화하는 존재로 나름 규정했다. 여기서 강조된 기억의 공간인 ‘장소’는 ‘인간의 의식과 물질이 결합’되는 곳, 혹은 ‘개인과 집단의 행위로 인해 형성된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공간을 적시한다. 그렇기에 문화재 보존차원에서 인천산선을 ‘원 자리’에 존치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문화재 전문가로서 저자는 인천시가 상술한 장소의 역사성을 살려서 문화재청과 협력하여 근대역사 공간과 재건축을 공존시킬 책무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인천 산선이 지난 60년간 지역사회의 낮은 곳에서 보편적 진리(민주화)를 실천한 것에 대한 평가와 인정인 셈이다. 좀 더 확장된 시각에서 저자는 인천의 정체성을 언급했다. 개항을 통해 근대에서 현대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펼쳐진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정체성이라 한 것이다. 하지만 어디 이뿐이겠는가? 기독교로 개항된 첫 번째 도시이자,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할 때 인천 모든 지역을 고층아파트 촌으로 건설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인천산선 건물을 보존할 경우 그 주변 아파트 층수를 다른 곳보다 다소 높게 하는 방식도 채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하튼 인천산선 및 그와 동류의 가치를 지닌 건물들을 유지 존속시킴으로 인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항차 인천의 미래를 위해 유익할 것이다.

이 전제 하에서 저자는 인천 도시계획을 문화재청과 재논의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환경 뿐 아니라 문화재는 도시의 미래를 보장하는 일종의 보험과 같기 때문이다. 환경과 문화재는 단순 보존 가치로만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재원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천산선 건을 시작으로 인천시 전체가 ‘장소’의 개념을 다시 소환하여 재구조 화 되기를 희망했다. 무엇보다 마을 자치회가 스스로 이점을 인식해야 옳다. 전문가 집단에게 내 맡길 과제가 아니란 것이다. 인천산선 경우 교회 주도로 투쟁- 김정택 목사에 이어 83일 째 단식-이 이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 주민들과의 교감이다. 지역가치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저자가 새삼 일깨워 주었다.

논찬자 이희환에 따르면 인천산선의 후신인 일꾼교회 내에 1960년 이후 20여 년 간의 활동기록들이 ‘민주화운동사료’로 지정, 보관되어 있다. 이들 과거 기록을 존중하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여 오늘을 달리 만들겠다는 의지를 키우기 위함이다. 후대 세상을 위한 과거를 만들 목적에서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영등포 산업선교의 현 위상 만큼이라도 인천시가 책임질 일이다.

세 발제자들의 의견을 약술해 보았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기억의 장소’로서 인천산선을 언표 했고 그것으로 문화재 가치가 충분함을 설명했다. 전문학자들이 썼지만 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담았다. 삶의 흔적, 역사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인간존재를 터무니없게 만드는 일이다.

2008년 영국 BBC방송은 대한민국을 OECD 국가 중에서 욕망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평가했는데 자연과 역사를 함부로 파 해치는 것을 단적 예로 들었다. 지금껏 빠른 성장을 자랑했던 것과 달리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한 이 땅은 과거와 공존하는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인천은 민주화뿐 아니라 근대화, 기독교화, 한국 전쟁 등 여러 키워드와 함께 살필 역사적 도시이다. 그 과정에서 생산된 유무형의 문화재에 대한 종합 정책이 필요하다. 이 일을 위해 인천 소재 교회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산업선교를 용공으로 몰았고 인습화된 교리로 노동자들을 품지 못했던 과거를 공식적으로 사죄할 필요가 있다.

인천 산선 60주년을 맞아 감리교단이 1차 심포지엄을 열었다면 이제 인천산선 및 인천시의 미래를 위해 제 교파 소속 교회들 모두는 함께 과거를 속죄하고 인천범시민대책위원회와 보조를 같이 해야만 할 것이다. 인천시 조례를 함께 바꿀 책임이 교회의 몫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인천시민들을 교회를 위한 존재로 여겼다면 이제는 교회가 인천을 위한 교회로 달리 탄생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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