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仁川)은 인천(人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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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仁川)은 인천(人天)이다
  • 금희
  • 승인 2021.09.01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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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기고 - 존폐 기로에 선 인천도시산업선교회]
(8) 금희 / 시인
 인천in은 동구 화수동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문제에 대한 릴레이 기고를 전개합니다. 1960~80년대 인천지역 노동운동·주민운동·민주화운동의 요람으로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의미와 더불어 인천의 민주화, 산업유산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풀벌레 소리 붐빈다. 한 마리의 풀벌레 소리로 가을이 오는 법은 없다. 저 떼창이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하지 않던가? 무더운 여름을 버틴 풋열매들을 향해 힘껏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무릇 생명을 향한 위로악단이다.

도시 유목민으로 살다가 정착한 곳이 인천이다. 부끄럽게도 인천에 ‘도시산업선교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위로가 되었다. 교회 종탑은 늘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종소리는 민들레처럼 구석진 골목까지 내려온다는 것을 상기했다.

조지 오글(Georgy E. Ogle, 한국명 : 오명걸) 목사님은 급격한 산업화와 맞물려 도시로의 이농현상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인천에 산업선교회를 열었다고 한다.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작은 예수로 사는 것을 바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배우고 나누던 곳이 지금의 인천도시산업선교회(미문의 일꾼교회)인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나의 어머니는 농부였다. 새벽에 나가 늦은 저녁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부재를 어머니는 농사를 짓고 우리는 도시로 유학을 왔다. 내 어머니 아버지는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살았다. 당신들 앞에 닥친 삶을 온몸으로 밀며 살아오신 것이다.

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중국의 만리장성 등만 세계문화유산이 되는가? 파라오와 진시황의 업적은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과 노동을 딛고 서있는가? 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피와 땀으로 일군 터전은 역사의 현장이 되지 못하는가? 왜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노동은 당연한 희생으로만 잊혀져야 하는가?

첨단기술의 발전과 제4의 물결을 논하며 노동의 종말의 고하는 시대에 나는 다시 *민들레공부방의 필요를 느낀다. 코로나 19로 등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들의 학습 격차는 생각보다 컸다. 인터넷과 줌으로 공부했다는 아이들도 그 이전의 학습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생활리듬이 깨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교 등교를 하는 날에도 힘겨워 하는 아이들이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비대면수업의 한계는 생각보다 크다.

의료 시스템이 구축되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인원이 필요하듯이 첨단기술이 전면적인 노동을 대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첨단기술이 발달할수록 노동의 가치는 더 귀하고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생각이다.

노동을 노동으로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노동을 삶으로 통째로 치환해 살아서 노동의 댓가라고는 집 한 채와 도시유학을 보낸 자식들이 다였던 우리 부모님들. 그 처절한 빛을 쪼이며 살았던 우리들이다. 우리가 우리 부모의 열매다.

여기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그야말로 피와 땀으로 일군 터전에서 혼자 울다가 쓰러지지 않도록 함께 했던 사람들. 인천은 다행히도 아직 그 삶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어질다는 뜻은 밀물과 썰물이 들어 뻘이 펼쳐지면 그곳에 갯지렁이와 게와 저어새들이 살고 바위에 굴과 따개비들이 살아가듯이 함께 사는 곳을 허락한다는 말이 아니겠나!

어쩌면 인천(仁川)은 인천(人天)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동네가 아니겠나!

도시재개발로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있는 동네는 천지삐깔이다. 인천에만 아직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가 지킬 차례다.

 

 

*민들레 공부방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와 아이들을 위해 열었던 최초의 공부방이었다고 한다.

금희: 시인, 새얼문학 및 인천작가회의 회원, 시집 <미안하다 산세베리아>가 있음.

 

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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