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서가에도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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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서 가을로... 서가에도 변화를
  • 김보름
  • 승인 2021.08.2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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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69) 기대되는 가을 손님과의 이야기 - 김보름 / '연꽃빌라' 책방지기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 낙엽을 태우며 / 이효석

 

매일 쉬지 않고 커피 볶는 냄새를 맡는데, 가을이 찾아왔다 싶으면 꼭 이 문장이 생각납니다. 가을의 커피볶는 냄새는 다른가 봅니다. 얼마 전, 입추가 지났습니다. 아직 한낮은 여름이 분명한데,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가을의 바람이 불어요. 신기하게도 연꽃빌라를 찾는 사람들도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아직 공간 안에는 냉방을 하기 때문에 늘 냉기가 가득한데, 이런 냉기가 이제는 시원하기보다는 서늘하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며칠 전에는 청귤로 청을 만들었습니다. 귤을 청으로 담가 가을과 겨울에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몸에 비타민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설탕으로 담갔으니 많이 마시면 안 되겠지만요. 그래도 제철에 나는 과일을 설탕에 절여 저장해놓고, 조금씩 야금야금 꺼내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신다는 건 참 좋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다 같이 나눠 먹는 것도 좋고, 책을 읽으며 따뜻한 차를 후후 불어 마시면 이제야 계절을 제대로 보내는 기분입니다.

청으로 담기 전의 풋귤들
청으로 담기 전의 풋귤들

늦여름을 지나 초가을로 향하는 연꽃빌라의 서가에도 변화를 주었습니다. 진열된 책들을 꺼내고, 다시 서가에 재배치하는 일은 즐겁지만 고민이 많이 되는 일입니다. 책방을 믿고, 맡겨준 사람들의 책이 모두 다 잘 팔리기를 바라니까요. 그렇지만 책등이 보이는 책장과 앞표지가 보이는 구역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책들을 틈틈이 옮겨 주는 게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의 일입니다. 이렇게 늘 같아 보이는 서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습이 조금씩 바뀌어있습니다.

 

새로운 자리로 옮겨질 책들

 

한자리에서 4년 정도 머물다 보니, 손님들이 많이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동네를 떠나며 연꽃빌라에 들러 인사를 건네고 갑니다. 연꽃빌라에서 독립출판물을 처음 접했다며 오히려 감사 인사를 건네는 손님과 매일 저녁 혼자 방문해 책을 읽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가던 손님은 책 읽기 좋은 공간이었다며 응원의 말과 함께 여행지에서 사 온 소중한 컵을 선물로 주시기도 했고, 어떤 손님은 다른 책방 주인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합니다. 전에 살던 동네에 연꽃빌라라는 책방이 있었다며, 책방 주인의 건강을 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요.

갈산동에서 책이 좋아 연꽃빌라를 찾아주던 손님은 이사를 가서 다른 책방을 찾았고, 그 손님 덕분에 책방들이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책방이 손님과 책을 이어주는 역할이었다면 신기하게도 책방과 책방을 이어준 건 손님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며 연꽃빌라에도 따뜻한 마음들이 쌓입니다. 올해의 가을과 겨울에는 손님들과 어떤 이야기를 쌓아갈지 기대됩니다. 그리고 갈산동을 떠나 새로운 동네에 생활 공간을 옮긴 손님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요.

 

연꽃빌라에 남겨진 편지들
연꽃빌라에 남겨진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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