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안전과 생존을 보장한 인류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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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안전과 생존을 보장한 인류의 동반자
  • 지영일
  • 승인 2021.08.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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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지영일 /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1950년대 한국전쟁의 화마로 초토화된 국토에 먹고 살 길은 더욱 막막한 처지가 ‘남한’의 형편이었다. 국제 원조기구는 처참하게 황량해진 국토를 다시 푸르게 할 목적에 식목 비용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정부는 그 돈을 석탄과 시멘트를 구입하기 위해 지출했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부정부패, 비리 때문이었을까?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 원조기구 관계자에서 내놓은 정부의 설명은 이러했다.

“나무를 당장 심을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나무를 키울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 대부분이 아궁이에서 나무를 태워 난방과 취사를 하는 우리의 주택 구조상 산에 심은 나무가 남아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연료를 나무에서 석탄으로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주택의 구조도 바꾸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그 관계자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의 모험’의 저자 맥스 애덤스는 자신의 책에서 원시 인류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사냥과 농사를 위해 숲을 마구잡이로 파괴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상상을 반박한다. 오히려 숲의 위대함과 나무의 효용성을 경험한 인류는 적절히 이용하며 공존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전쟁의 시기인) 철기시대에는 부가 축적되고 농업이 발달했으며 나무와 목재를 돌보고 다루는 기술이 무르익었다.”고 말한다. 숲에서 각종 자원을 취하고 식량도 공급을 받으며 자신들의 지속적인 안전과 생존에 숲과 나무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확실히 인식했던 것이다.

두 이야기의 공통 소재는 숲이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어는 ‘전환’과 ‘공존’이다. 한국전쟁 이후의 산림녹화는 오늘날 같으면 에너지전환과 궤를 함께 했다. 헐벗은 산에 부지런히 나무를 심는 방법이 ‘돌직구’라면 그것은 뻔히 빗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푸른 숲은 생활방식을 바꿈으로써 에너지전환을 이뤄내야만 가능한 미래였다. 그렇게 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산림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

맥스 애덤스에게 있어 원시인류의 지혜와 선택은 탁월해 보였다. 숲을 관리하면서 이용하는 능력 역시 뛰어났다. 역설적으로 고도문명과 첨단을 자랑하는 현대인이 그런 면에서는 오만 혹은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것으로 생각되었으리라.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숲과 만들어온 집단적 기억을 모른 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숲이 갖는 영험을 폄훼하며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이용수단으로 대상화했다. 저자는 책에서 이를 숲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동반자 관계를 외면한 처사라고 깊이 탄식한다.

우리 현대인은 새로운 모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류문명발달사, 전쟁사에도 없던. 그런 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최적의 생존환경을 만들거나 찾아야 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험악한 짐승들이 출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러들인 그것들은 곧 우리를 넘어서며 통제도, 예측도 불가능한 지경으로 거칠어질 것이다. 안전한 상태로 되돌리려면 전환과 공존이라는 키를 단단히 움켜쥐고 ‘’지구호‘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깔고 앉았던 것들을 바로 일으켜 세우고 마주해야 한다. 나무와 숲, 그리고 생태계다. 이들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잘 보살핀다면 매우 사랑스런 동반자이자 생존에 유용한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한 케이블TV의 인기 교양프로그램이 그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도시와 군중을 떠나 숲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들을 따라가 보는 내용이다. 중년 남성의 로망을 대변한다는 그 방송은 주인공의 사연과 함께 주변 자연환경을 비춰주고 적응해 살아가는 방법까지 선보인다. 필자는 관심이 없어 그 방송을 거의 보지는 않지만 의외의 효과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예상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숲이 갖는 생태적 중요성과 더불어 경제적·의료적 혜택을 은근히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즉, 현대적 삶에 깊은 회의와 피로감에 젖은 주인공들은 몸도 마음도 너무 아팠다. 치유와 회복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숲에서의 삶이지만 그곳을 훼손하거나 고유한 균형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의 생활방식을 유지한다. 그들의 일상을 통해 숲이 주는 사회적, 경제적 혜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주인공이 생생히 증명하는 치유와 건강은 의료와 복지 측면에서도 효과 만점이다. 목가적인 그들의 삶이 낭만적 감상 수준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우리가 간과해온 숲의, 자연생태계의 본질적 가치와 혜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왜 아니겠는가! 집 주변, 숲과 개울에서 갖가지 먹거리와 약재를 얻고 안전한 피난처를 소유하며 놀이터까지 향유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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