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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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엄마처럼
  • 강태경
  • 승인 2021.06.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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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강태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반

우리 동네 어느 집 대문 앞에는 많이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늘 나와서 앉아 계신다. 광고 전단지를 가가호호 우편함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할머니한테 한 장 주고 간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인사한다. 조금 있다가 또 다른 사람이 주고 간다. 광고지 서너 장을 받으신 할머니는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신다.

“아이고 고맙구료.” 아마 그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신 것 같다.

몇 년 전 혼자가 된 띠동갑 언니가 걱정된다.

부산에 사는 언니는 근력도 쇠잔해지고 관절염으로 걸음도 시원찮다. 다행히 정신은 아주 초롱초롱하다, 정신만이라도 온전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혼자 살고 있으니 모든 게 경계대상이다. 아무 전화나 받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언니는 나를 의지하고 산다. 이도 시원찮고 소화력도 많이 떨어져 있다. 이런 언니한테 나는 자주 꽃게장을 소화제 삼아 먹으라고 냉동시켜 택배로 부친다. 이것저것 부드럽고 소화 잘 될 것 같은 음식이 있으면 언니 생각이 난다. 김치, 고춧가루, 참기름, 다시마부각, 생선을 장만해서 보낸다. 언니는 조금만 매워도 못 먹고 조금만 질겨도 못 먹어 참 걱정이다. 시래기도 푹 삶아서 껍질 벗기고 혹시나 질긴 것 있으면 잘라내고 조그맣게 감아 냉동하여 보낸다. 김장김치도 겉잎 떼어내고 썰어서 보낸다. 언니는 음식을 보낼 때마다 “이거 네가 핸기가?” 하곤 묻는다.

나는 언니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어릴 때 엄마한테 받은 따뜻한 기억은 별로 없다. 우리 엄마는 무섭기만 했던 것 같다. 자식처럼 나를 챙겨 주고 보살펴 주던 언니를 이제는 ‘내가 엄마처럼 보살펴 주리라!’

내가 언니를 잘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 시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그 아픔을 다시 겪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 본다. IMF 시절은 나의 몸이 건강치 못했고 가세도 기우는 시기였다. 이 때 시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했던 것이 나이가 들수록 후회가 된다. 시숙이 있었으나 시동생 집으로 가시게 된 시부모님은 두 분 다 거기서 오래 사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부산 갈 때마다 나는 항상 언니 집에서 자고 언니하고 공중목욕탕을 다녀온다. 걸음을 맞출 수 없는 언니보다 먼저 목욕탕에 들어서며 “두 사람이요. 좀 있다가 할매 한사람 올 겁니다.” 하고는 탕에 들어가서 낮은 의자에 앉지 못하는 언니를 위해 여러 개 포갠 높은 의자 만들어 놓는다. 언니가 쓰던 수건 걷어와 빨고 하다 보면 허리를 구부리고 언니가 들어온다.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다고 떼밀이 하기도 미안스러워 언니는 늘 망설인다. 헐렁한 속옷을 뒤집어 입은 언니에게 “왜 속옷을 뒤집어 입어?” 하며 물으면 “바느질한 게 배겨”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저렇게도 사소한 것에도 저항력이 떨어지나 보다! 그것을 이제야 느끼다니 내가 너무 무심하다’고 생각했다. 앞서가신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도 생각났다.

내가 집을 나설 때 언니는 “고맙다. 우리 동생 한번 안아보자.” 하며 팔을 한껏 벌린다. “언니 이제 들어가!” 그러면 “알았다. 단디해라!” “응 알았어.” 나는 말하지만 뭘 단디해야 되는지는 모른다. 그냥 모든 일에 조심하라는 뜻으로 듣는다. 언니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가 돌아보면 그 자리에 손을 흔들고 있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서 있다.

자신에게는 돈을 아끼면서 나에게는 아낌없이 주었던 언니. 내가 어릴 때 언니는 제약회사를 다닌 것 같다. 언니 옆에 자면 약 냄새가 폴폴 났다. 옛날에 다 그래듯이 큰 회사는 아닌 것 같고 하여튼 약 만드는 곳은 틀림없었다.

언니는 나한테 설이면 회사 다니면서 번 돈으로 색동저고리 빨간 치마 설빔을 해주었고 추석이면 골덴 상하의 한 벌씩을 사주곤 했다. 자신보다 가족을 더 먼저 생각했던 착하고 곱던 언니는 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려 모든 신체 기능이 부실하다.

네 명의 며느리 들 중 나를 좋아하신 시부모님을 잘 모시겠다는 마음 속 다짐을 나는 지키지 못했다. 언니를 잘 보살펴 주겠다는 다짐을 잘 지킬 수 있을 것인지 또 다시 후회하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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