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1호 헌책방 '집현전', 제2기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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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1호 헌책방 '집현전', 제2기를 열다
  • 서예림 기자
  • 승인 2021.03.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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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인수한 이상봉 대표, 전통책방·전시관·카페 조성에 '온 힘'
이상봉 '집현전' 대표

인천시 동구 금곡동 13-24,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자리잡은 70년 역사의 헌책방 집현전’.

인천 최초의 헌책방이다.

1951년 고(故) 오태운 어르신 부부가 배다리에서 가마니 떼기를 깔고 시작한 것이 '집현전'의 시초다. 그후 창영학교 앞에서 첫번째 가게를 열고 몇번을 이사하여 지금의 배다리 입구 건물을 1992년 어르신 부부가 구입하면서 간판을 걸었다.

지금의 집현전주인은 사진작가 이상봉(66) 대표다.

그가 집현전을 넘겨받은 건 2018년이었다. 2018년 할머니의 건강악화로 집현전 운영이 힘들어지자 어르신 부부는 이 대표를 콕 찍어 집현전을 물려줬다. 동구를 사랑하고 지역의 흔적을 지켜줄 적임자라고 생각해서다.

집현전은 20185월 이상봉 대표가 인수한 후 지난해까지 닫혀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재기의 열망과 땀방울로 넘치고 있었다.

전통책방의 명맥을 이으며 현대의 분위기를 가미해보려고 해요. 이달까지 왠만한 작업들은 끝내려고요. 매일 매일이 정신없습니다. 나무 손질하면서 톱밥이 튀어 안경에 기스까지 났어요."

이 대표는 집현전을 전통~현대를 아우를 책방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직접 전통책방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9개월 간 목공일도 배웠다. 집현전 간판 밑에 ‘Art & Book Space’를 넣고 어르신이 만들어 온 전통책방에 책과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다.

간판도 없이 미비한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1층에 책장도 나무로 짜서 보강했고 책도 더 들여 놓았다. 특히 시집은 700권이나 들여 놓는 등 원래 있던 것까지 합치면 1000권이 넘는다.

이 대표는 직접 나무를 깎고 인테리어 설계를 하며 책방 리모델링에 올인하고 있다책방 주인인지 목수인지, 책 장사는 안 하는거냐는 농담에 그는 넌지시 웃음을 짓는다.

그는 지난 116일 임시로 책방 문을 열고 1층 영업은 시작했지만, 준비를 모두 마치고 정식 개관일은 4월 중순으로 잡고 있다.

 

집현전 간판
집현전 1층 내부

 

'집현전’을 일궈낸 오태운 어르신 부부에게 바통을 넘겨받고 그들의 흔적에 이 대표의 색깔을 더한지 3년째. 그가 3년간 집현전의 명맥을 이으며 느낀 이야기를 풀어냈을 때 그의 뿌듯함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복에는 화가 있고 명과 암은 늘 함께라고, 시련도 많았던 집현전이다.

“참 고민이 많아요. 오 사장 부부의 손때가 이곳저곳 묻어있는데 어디까지 남기고, 어떻게 꾸밀지 지금까지도 생각중이에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초대 사장님께 여쭙고 싶은 게 많은데,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상의드릴 수가 없네요.”

이 대표의 본업은 사진작가이다. 그 전엔 특수교육과를 전공해 인천혜광학교에서 수학과 컴퓨터를 가르쳤다. 퇴직 중에 '사진공간 배다리'를 설립하고 운영해왔으나 최근 이도 접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현전에 쏟고 있다.

배다리의 기억을 사랑하는 그는 빨리 기획할 수 있는 ‘현대화’만 담은 서점보단 천천히, 그리고 멀리 보며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전통 책방을 꾸미는데 아이디어를 내고 힘을 모은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잠시라도 머물다 갈 수 있는 아담한 문화공간으로 만드려는 겁니다. 책만 사고 휙 가는 게 아니라요. 1층은 그대로 전통 책방으로, 방이었던 2층은 카페(가칭 ‘21분’)와 작가들의 작업공간으로, 3층 다락방은 전시관으로 꾸미려 해요. ‘인천시 문화오아시스 조성 지원사업’도 신청했어요. 기획안은 <집현전 자리잡기> 입니다.”

오아시스 지원사업은 1차 서류심사에 통과해, 시 담당자의 실사 방문과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

컨셉은 ‘잠시라도 머물러갔으면’이다. 책과 전시도 보고 생각도 하면서 머무는 공간이 배다리에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대표는 특히 3층 전시공간은 우리 주위에 흔하지만 소중한 것을 찾아 보여주는 작은 전시와 특강, 교육도 하는 공간으로 꾸미고 있고 전문 예술인과 시각장애인들이 함께하는 사진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도 보람있는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집현전 2층 내부(게스트하우스, 작가들의 휴식공간)
전시관(예정)이 될 3층 내부. 주로 책꽂이, 가벽 만들기 등 목공작업을 한다.

 

이 대표는 책방의 역사도 들려줬다.

“처음부터 건물에 입점한 책방이 아니었대요. 1951년 어르신 부부가 배다리에서 가마니 떼기를 깔고 헌책을 모아 판 게 집현전의 시초에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지금 건물을 어르신 부부가 구입하면서 정식으로 ‘집현전’ 간판을 걸고 책방을 시작했어요.”

오랜 단골들은 책방에 들러 출판이 정지됐거나 대형 서점에서 구하지 못한 책들을 보물찾기 처럼 찾아내기도 했다. 

 

생전의 오태운 어르신 부부
생전의 오태운 어르신 부부(사진=강영희)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판매도 하고 있어요. 희귀한 책들이 많은데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해 썩히는 게 아깝잖아요. 헌책방 거리 사장님들과도 온라인 판매에 대해 논의중이에요. 또 ‘헌책’은 ‘낡은 책’이라며 꺼리는 사람들에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요즘은 ‘집현전 선물꾸러미’도 만들고 있어요. 유명한 작가의 책이나 표지가 독특한 책 한권과 나머지 한권은 보조용으로요. 집사람과 함께 정성껏 포장하고 있어요. '내가 받았을 때 기분좋을까?' 생각하면서요”

그는 어르신 부부의 흔적을 이으며 이 대표만의 책방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렇게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도 지칠 줄 모르는 그는 지금도 책방 꾸미기에 온몸을 바쳐가며 일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 새로운 도전이라 가슴이 뛰어 전혀 지치지 않는다고 한다.

“집현전을 물려주신 초대 사장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해요. 시작부터 끝까지 어르신 부부가 만든 집현전의 모든 것을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호와 전화번호, 간판에 사용한 글자, 건물에서 나온 잔해들, 쓸 수 있는 건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자 다 쓰려고 해요. 오랜 세월이 보이는 벽속에서 나온 썩은 나무와 만지면 부서지는 옛날 영자 신문 조각도 소중히 남겨 액자에 담아 전시할겁니다.”

 

벽 속에서 발견한 출판연도를 알 수 없는 영자신문. 너무 오래 돼 손대면 바스라진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50년이 족히 넘은 잔해들
배다리 옛 집현전 모습
2015년 배다리 집현전 모습(사진=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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