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샛별이'와 현실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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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샛별이'와 현실의 여자들
  • 박교연
  • 승인 2020.07.01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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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6월 19일부터 방영 시작한 SBS TV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의 모든 면면이 여성혐오적이다. 청소년이 뛰어난 외모를 무기로 삼아 성인 남성을 꾀어내는 설정은 여성혐오적일 뿐 아니라, 편의점에서 일하는 모든 여자에게 실존하는 위협이다.

일례로 2008년 KT 통신사 광고에서 공대 아름이를 등장시킨 뒤부터 공대에 다니는 모든 여자는 아름이가 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다. 광고는 여학생이 혼자 공과대학에 입학해 남학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모습이 유쾌하다고 생각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공대에 입한 학생들은 여자가 적은 상황을 이용하여 과제나 팀플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편견에 싸워야 했고, 어떤 성취를 해도 항상 여자라는 편견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이런 편향된 생각은 취업 불이익까지 이어졌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여성과학기술인력 활용 실태조사 보고서(2015)’에 따르면 2015년 자연계열 대학졸업자의 남녀 성비는 5대 5, 공학계열 졸업자의 성비는 8대 2였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고용된 비율은 각각 7대 3, 9대 1이었다. 단순히 배출되는 숫자 비율로 설명할 수 없는, 채용상 성차별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 엔지니어는 “채용면접 때 면접관이 옆자리 남자 지원자에게는 업무지식만 묻고, 내게는 사귀는 사람이 있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등을 캐물었다”고 말했다.

올해 4월에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39세 남자 점주가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을 지속해서 성추행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주로 10대~20대의 어린 여성이 그 대상이었고, 피의자는 단순한 성추행뿐만 아니라 유사강간에 가까운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현재 드러난 피해자 수는 14명이나 되고 그중 절반이 미성년자였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편의점 샛별이는 위험한 남성의 판타지를 강화하고 있다.

카메라는 노래방에서 뛰어노는 고등학생을 아래위로 훑으면서 촬영하고, 어린 배우들은 가슴을 내밀며 성적인 동작을 취한다. 오피스텔 성착취 장면은 성착취 여성을 눈요깃거리로 적나라하게 노출할 뿐 아니라, 성에 무지한 30대 남자 주인공을 그와 대조시키며 순진한 남성성을 강화한다. 현실과는 정반대인 성에 적극적인 여고생과 순결한 30대 남자는 성인 웹툰에서나 가능한 남성 판타지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미디어의 메시지는 현실의 성차별을 강화하고 남성 판타지를 확증한다.

2018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극본상을 받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완성도와는 별개로 대중에게 유해한 메시지를 던졌다. “당신의 주변에 있는 아저씨에 대해 선입견을 품지 마라”, “그들은 따뜻한 사람이자 불쌍한 사람이다”, “그들은 어쩌면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등 매회 어린 시청자에게 40대 아저씨는 위험하지 않다는 걸 주지시키고, 그들의 처지에서 상황을 이해하라고 말한다.

<나의 아저씨>의 기획의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로를 그리는 거라 하지만, 그 위로의 모양새는 결국 40대 남성들 곁에 젊은 여성을 붙여주는 식이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 40대 남성이 왜 굳이 위태로운 삶을 사는 젊은 여성에게 위로를 받아야 할까? 또래도 아니고 일상을 공유하지도 않는 20대 어린 여성이 어떻게 아저씨의 고단함을 치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명백하게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설정에도, 드라마 업계는 지속해서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의 '나이차 로맨스'를 방영하고 있다. 2016년 방영되어 열풍을 일으켰던 <도깨비>, 2018년 <나의 아저씨> 뒤에 방영했던 <미스터 선샤인>이 그 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아주 대놓고 아저씨에게 미성년자를 붙여주며 나이차 로맨스가 그저 아름다운 일인 양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화면 밖에 나와보면 현실의 여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건 나이차 로맨스가 아닌 성범죄다. 경찰청이 발표한 2017 범죄통계를 보면, 살인·강도·절도·폭력·사기 등 강력범죄가 감소하는 와중에 성범죄 발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14년 2만 1천55건, 2015년 2만 1천286건, 2016년 2만 2천200건, 2018년 2만 4천110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20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여성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모든 여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편의점 샛별이는 극 중에서 나름의 사랑을 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든 매체는 인지하고 책임감 있게 영상을 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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