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하여 재능을 꽃피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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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력하여 재능을 꽃피우자
  • 채은영
  • 승인 2020.03.27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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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 속 인천]
(6)최성균 작가와 용현동 재개발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은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 속 인천의 장소, 사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 동네 이야기로 낯선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재능없는 빛, 2015, 전시전경, 인천아트플랫폼 (출처. 작가 제공)
재능없는 빛, 2015, 전시전경, 인천아트플랫폼 (출처. 작가 제공)

전시장을 들어가려니 익숙한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어두운 블랙큐브라 순간 들어가야 하나 돌아 나갈지 고민한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면, 중앙에 가부좌를 튼 인물상이 있고,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모빌이나 크리스털 썬캐쳐처럼 걸려있다. 자세히 보면 인물상이나 모빌 물체는 반짝이는 유리나 거울 조각들이 빽빽하게 박혀있고 난반사한 빛들이 전시장 천정과 벽 그리고 바닥에 가득하다.

마치 SF영화에서 시공간이나 우주 공간이 말안장처럼 구부러진 순간 속에 들어선 듯 신기하다. 처음 낯설음과 달리, 조명과 거울 조각 모자이크는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이 나 눈이 부실 정도다. 하지만, 거울 모자이크 조각이 붙여진 사물들이 재개발공간에서 버려진 물건들이고 모자이크 작업에 해고의 기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웃픈 복잡한 감정이 생긴다.

살아난 구조 No.2, 버려진 콘트리트 조각과 거울 유리 조각, 2014 (출처. 작가 제공)
살아난 구조 No.2, 버려진 콘트리트 조각과 거울 유리 조각, 2014 (출처. 작가 제공)

최성균 작가는 전시 디자인을 공부한 후, 2014년 안양 스톤앤워터 레지던시를 시작으로 지역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기존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 속 프로젝트로 재구성한다. 윤주희 작가와 컨템포로컬이란 그룹으로 지역(local)을 주변 시공간이 아닌, 동시대적(contemporary) 장으로 보고 강원도 양양 동호해변, 안양 파빌리온, 시흥에코센터, 월곶예술공판장 등에서 작업과 프로젝트를 했다.

2017년에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범일운수종점 Tiger1이란 신생공간을 만들었고, 근처 관악산 산행을 하며 도시 속 생태와 자연이 자본화되는 맥락의 숲세권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이처럼 한 명의 개인 작가로 활동하기 보단,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실천적인 과정의 매니저가 되기도 하고, 조력자가 되기도 하고 책임자가 되기도 하는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졌다.

용현동 재개발 현장, 2014 (출처. 작가 제공)
용현동 재개발 현장, 2014 (출처. 작가 제공)

이런 작가의 첫 개인전 < 재능없는 빛 >의 배경은 의아스럽다. 졸업 후 예술가로서 생활과 작업을 위한 부업으로 건축 현장에서 타일 용역을 시작했던 작가는 점차 예술가에 비해 나쁘지 않은 수입에 익숙해간다. 실제 타일 기술자로 송도국제도시 중앙공원 야외 무대와 해돋이공원 고래 조형물 타일 작업에 참여하는데, 당시 작가에게 송도는 여러 공사 현장 중 한 공간일 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부캐가 본캐가 되려는 찰나, 관리자에게 타일 작업에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고를 당한다. 스스로에게 기술 장인으로서 재능이 없다는 것에 방황하던 작가는 인천에서 재개발 지역이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별다른 계획없이 제2경인고속도로 끝까지 달려 근처 동네를 배회했고 그 곳이 미추홀구 용현동이었다.

왼쪽     목적을 상실한 은행나무, 버려진 나무 조각과 유리 거울 조각, 2014 오른쪽  목적을 상실한 선풍기, 버려진 선풍기와 유리 거울 조각, 2014            (출처. 작가 제공)
왼쪽 목적을 상실한 은행나무, 버려진 나무 조각과 유리 거울 조각, 2014 오른쪽 목적을 상실한 선풍기, 버려진 선풍기와 유리 거울 조각, 2014 (출처. 작가 제공)

요즘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낯선 동네를 배회했던 작가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용현동 중에서도 토지금고라 불리던 용현5동 쪽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마 때 용이 승천한다는 전설을 가진 바다와 원숭이 모양을 한 조그만 낙섬이 있었던 동네는 1907년 주안의 천일염전을 시작으로 남동염전과 소래염전 이후 개량 염전 개발을 위한 1929년 염전 조성으로 육지가 된다. 1966년 염전이 문을 닫고 토지는 여러 차례 매각되다 1976년 지금의 토지주택공사 LH의 전신인 토지금고가 구입한다.

원도심 주택재개발 정비 구역 중 재개발로 사람들이 떠난 빈 집들에 버려진 것들을 3일 동안 모아 작업실로 나른다. 이전부터 무신상, 나무, 신발, 선풍기 등 구체적인 물건들에 유리나 거울 조각을 붙였던 작가는 용현동 재개발 현장에서 주택과 건물들을 일부 부수는 과정에서 생겨난 콘트리트 덩어리들과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창문이나 거울들을 깨트려 놓은 거울과 유리 조각에 주목한다.

눈부신 위장술, 여의도 한강 설치 장면, 2018 (출처. 작가 제공)
눈부신 위장술, 여의도 한강 설치 장면, 2018 (출처. 작가 제공)

작가는 형태가 분명한 오브제보다, 무엇인지 모를 콘크리트 덩어리 위에 거울과 유리 조각을 정교하고 꼼꼼하게 붙이는 완성도로 스스로 기술 장인으로서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에 의해 다시 살아난 거울-콘트리트 구조는 마치 럭셔리 브랜드의 악세사리 세공의 일부처럼 반짝인다. 일상에 쓰임을 다하거나 중요함을 잃어버린 사물이나 상황에 작가는 유리와 거울 조각을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하듯 묵묵히 붙인다.

새로운 의미를 받은 사물과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이고 화려한 빛의 리듬과 함께 인간과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쓸모와 재능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공간의 재능을 개발하고 미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의 몸과 영혼을 갈아 넣은 일상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박이소의 드로잉 < 열심히 노력하며 재능을 꽃피우자>를 생각하며 간결하지만 강력한 방법으로 시각 예술의 상상을 보여주는 작가의 위장된 재능이 피어날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한다.

채은영(큐레이터, 임시공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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