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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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전영우
  • 승인 2020.03.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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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의 미디어 읽기]
(20)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1982년 인천 무대 박민규 소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무대는 1982년 인천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갓 중학생이 되었고, 때마침 그해 출범한 프로야구의 인천 연고 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한 청춘의 성장기를 빌어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통찰과 비판을 담고 있다.

첫 장부터 소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1982년의 옛 기억을 들춰내 되살린다. 그 해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고, 중고생 두발 자유화와 교복자유화가 시행되었다. 총기 난사 사건의 우순경, 이철희 장영자 부부, 그리고 김득구와 레이 '붐붐' 맨시니 등, 잊혔던 이름들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든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를 기억할 것이고, 당시 한국의 소년 치고 프로야구에 열광하지 않은 아이는 없었을 터이니 동시대를 살았던 청춘에게 1982년은 특별한 해일 수밖에 없다. 

1982년 주인공은 중학생이 되는데,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아이에서 소년으로 성장했다는 의미이고 곧 이제 시작될 치열한 경쟁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에 나타난 것처럼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개발이 아니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뺑뺑이였지만 전통의 명문 중학교에 배정된 주인공은 아버지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학벌에 따른 계급사회의 의미를 체득하게 된다. 아버지는 굳이 "엘리트" 교복을 맞춰주고 자신의 모자란 학벌 때문에 도다리회가 아닌 아나고회를 사줄 수밖에 없음을 내비치며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뺑뺑이로 우연히 배정된 학교가 전통의 일류 중학교였다는 사실 때문에 일찌감치 학벌의 중요성을 주인공은 깨닫게 된 셈이다. 

주인공과 절친 조성훈은 인천 연고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결성하지만, 패배의 신기록을 세운 삼미는 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주인공은 프로세계의 냉혹함을 체험하게 된다. '부평은 거의 서울에 가까우니까'라는 변명을 남긴 부평 친구는 서울 연고팀 MBC 청룡 팬으로 변절을 한다.

그렇게 한두 명씩 친구들은 모두 변절하고 주인공과 조성훈은 소외된 마이너의 비애를 처절하게 맛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프로를 찬양하는 복음들로 넘쳐흐른다. 1985년 6월 21일, 삼미 슈퍼스타즈는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이 경기를 끝으로 주인공은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기로 작정한다.

지금껏 평범한 삶으로 인정받았던 삶은, 바뀐 프로의 세계에서는 최하위 꼴찌의 삶이 되었고, 열심히 노력한 삶은 프로의 세계에서는 중간밖에 되지 못한다. 죽어라 노력한 삶만이 인정받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 곧 신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냉정한 경쟁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1988년 주인공은 드디어 일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다시 서울과 지방으로 출신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것을 경험하고, 출생이 삼미 슈퍼스타즈와 같은 마이너인 그는 내내 소외감을 느끼다가 홍대 앞으로 하숙을 옮기고 그곳에서 비로소 위안과 소속감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는 3명의 애인과 7명의 섹스 파트너를 가진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순수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방관해야만 한다. 그와 마지막 순수를 불태운 그녀는 결혼으로 자본주의에 투항하고, 주인공의 군입대와 더불어 순수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체제에 편입된 주인공은 대기업 엘리트 사원으로서, 자본주의 체제의 부속품으로서, 자신은 프로라는 세뇌에 길들여진 강박관념을 갖고 정신없이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데드볼을 맞았다는 것을, 주인공은 IMF시대를 맞아 정리 해고당하면서 깨닫게 된다. 일류대라는 갑옷과 노력이라는 무기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세계 곧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그는 실직을 하고, 이혼을 하고, 자신이 고작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다. 착취는 당당한 모습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프라이드를 키워주고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 주며 요란한 박수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주인공은 깨닫게 된다.

소설이 발표된 2003년은 IMF 구제금융으로 촉발된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신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된 시점이다.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고도성장을 통한 경제기적을 이루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경제위기를 겪게 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전통적 가치가 급격하게 해체되던 시점이다.

순수의 시대가 끝나고 무한경쟁 시대 초입의 최전선에서 격렬한 변화를 몸으로 겪어야 했던 주인공을 통해 산업사회, 곧 신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치열한 경쟁사회의 모순점과 그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비루한 삶에 대한 자학적인 보고서가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불행히도 소설이 지적하고자 했던 경쟁사회의 비루한 삶의 양식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그 부작용도 여전하니,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는 우리네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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