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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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취향
  • 장현정
  • 승인 2020.03.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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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취향존중을 위하여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가디건 하나만 사주라. 아빠는 가디건이 많은데 나는 하나도 없어.”

그래서 가디건을 하나 사주려고 여기저기 찾아봐도 남자아이 가디건은 참으로 구하기 어려웠다. 외할머니가 쇼핑몰을 뒤져 하나를 겨우 구해왔다. 아이는 더운 여름날 가디건을 입고 유치원을 갔다.

 

얼마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넥타이 하나만 사줘. 친구 OO이가 하고왔는데 나도 하고 싶어.”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보니 꼬마들 넥타이가 생각보다 가격이 높았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깜빡 잊고 있었는데 아이가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왜 넥타이 안 사줘?”

 

그러더니 그날 갑자기 종이를 가위로 잘라 넥타이를 만들어 목에 메었다. 종이넥타이가 자꾸 끊어지자 아들이 속상해서 울고불고 하길래 안타까운 마음에 급히 부직포로 넥타이를 만들어 주었더니 신나하며 다음날 유치원에 하고 갔다.

 

결국 아빠가 넥타이를 두 개 주문해 주었다. 아이는 셔츠를 입고 가디건을 입고 꼭꼭 챙겨서 넥타이를 찬 뒤 외출했다. 답답하다며 넥타이를 풀었다가 어느새 다시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벗어두었던 넥타이를 하며 멋을 부리는 것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취향이 있었다. 친구가 노란색 공단으로 만들어진 알라딘 치마바지를 입고 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예뻐 보여 한참을 사달라고 졸라댔었다. 엄마는 내가 사달라는 바지 대신, 검정 바탕에 분홍 꽃무늬가 박힌 원피스를 사주셨는데 나는 처음부터 그 원피스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엄마의 칭찬 한 가득에 잠시 마음이 동한 나는, 옷장 속을 굴러다니던 그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하루 종일 무언가 내 모습이 멋지지 않은 것 같고 마음에 들지 않아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거울에 비춰보았고, 그날따라 목소리도 자꾸만 기어들어 갔다. 그 이후 다시 그 원피스를 입지 않았다.

 

고려국어사전에는 취향이 하고 싶은 마음이나 욕구 따위가 기우는 방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욕구는 나의 열망이고 바라는 것이고 소망이고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욕구에 따라 물건을 사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공부도 한다. 내 삶의 모든 선택과 행위가 욕구와 닿아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욕구를 존중받은 아이들이 자존감도 높다.

 

결국, 나를 나답게 하는 것, 그것이 취향이다. 그러니까 내 아들의 엉뚱한 취향도 존중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취향을 솔직하게 표현하더라도 무시나 비웃음을 경험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취향을 더욱 발전시켜 세상을 탐색할 수 있고 자기다움을 드러낼 수 있다. 자신의 취향과 선택 안에서 아이들은 더 많이 행복할 것이다.

 

그때 나의 취향을 꺾었던 일이 두고두고 아쉽고 미안했다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사랑하는 손주의 취향 존중을 위해 가디건을 사느라 아울렛을 세 시간이나 헤매셨다는 전설적인 후일담.

 

종이넥타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있는 돌돌이
종이 넥타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있는 돌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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