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햇빛, 태풍 그리고 무너진 담
상태바
하늘, 햇빛, 태풍 그리고 무너진 담
  • 이진우
  • 승인 2020.03.02 08: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진우의 동네 걸음]
(3) 양광미풍과 호우 그 후
인천in이 2020년 기획으로 '이진우의 동네걸음'을 연재합니다. 화가 이진우는 열우물마을에서 동네화가로 20여년 살며 벽화 등 그림으로 동네를 그려 공공미술가이자 '거리의 미술가'로 불려왔습니다. 지금은 개발에 들어간 열우물을 떠나 산곡동으로 화실을 옮겼습니다. 산곡동 화실도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오래된 동네입니다.

 

비탈진 곳에 집들이 다닥다닥 자리잡은 마을에서는 쉽게 하늘이 보였다. 
직장이 연수동의 아파트 단지였기에 높게 솟은 아파트 사이로 하늘을 볼 것만 같은데 
하늘로 솟은 아파트에서는 하늘이 실감나지 않는 반면 단층이거나 2층이 주로 있는 열우물마을에서는 그냥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보이고 하늘과 함께 사는 마을의 계단은 네가지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계단길이요 둘째는 하수도, 셋째는 상수도, 넷째로는 하천이었다. 
계단길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 아래는 하수도와 상수도가 흐르고 있었고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리면 계단길로 폭포수처럼 빗물이 콸콸콸 흘렀다. 
그렇게 많은 빗물이 흐르는 계단에서는 마치 미꾸라지나 장어가 어디 틈새에서 나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갈 것만 같았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마을의 집들은 지붕이 날아갈까 걱정을 하고 작은 옥상에 놓여진 화분들을 걱정하였다. 
스치로폴 상자에 심어진 고추는 대만 부러지고 키 좀 큰 화분들은 아래는 좁고 위에는 넓어 바람을 탈만하였지만 이상하게도 태풍을 잘도 견디었다. 
대추나무 잎사귀 잔뜩 떨어져 구석진 곳에 몰려있는것 빼고는 비닐봉지나 가벼운 쓰레기들이 구석진 곳에 몰려 있는 것을 빼고는 마을은 그런대로 태풍을 견디다가 드디어 빈집들은 탈을 내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어딘지 헐거워지고 관심이 스치치 않는 빈집은 유리창이 부서지고 
그곳에는 태풍이 머물러 요란을 떨며  문을 열어놓고 지붕에 틈을 내고 빈방 벽에는 곰팡이를 잔뜩 묻혀 놓았다. 
사람이 사는 집과 빈집이 나란히 있으면 기침소리가 빈집에서도 울리는듯 했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서로들 나와 안녕을 확인하고 안도하면서 골목의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이야기를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하였다. 

 

陽光微風 / 29*21cm  pen,watercolor on paper,  2010
陽光微風 / 29*21cm pen,watercolor on paper, 2010

 

꿈꾸듯이 화창한 날, 
여러사람들과 스케치모임을 이곳 열우물 마을에서 하게 되었다.
무지개벽화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상정초로 넘어가는 길에 이 빈집이 있다.
스케치를 하려는데 햇빛에 나뭇잎 그림자들이 지붕위에서 나울나울~거렸다. 

따뜻한 햇살아래 살랑거리는 바람. (2010.5.9)

 

바람잔뜩 / 180*90cm / 솔벤천 위에 아크릴, 2011
바람잔뜩 / 180*90cm / 솔벤천 위에 아크릴, 2011

 

얼마전에 엄청 바람불고 구름가득하게 

곧 비올 것 같은 날씨이면서 비는 오지 않았던 
그렇지만 정말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구름을 그리는 게 핵심이었다.
뭐 더 핵심이라면 역시 하늘이 어쩌든 
당당하게 서 있는 우리동네겠지만 말이다. (2011.7.10)

 

허문집의 포장 / 109*78(cm) watercolor on paper, 2015
허문집의 포장 / 109*78(cm) watercolor on paper, 2015

 

몇해전 볼라벤이 지나가면서 어떤 집은 지붕이 부서지고 블록담도 무너졌다.
다시 태풍이, 큰비가 온다니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구청에 전화를 해서 무너지기 전에 미리 빈 집을 허물고 포장을 덮어 놓았다. 
집을 허문다기에 빈터가 생기면 텃밭이 될려나 기대하였다가 허물고 그자리에 포장만 덮어놓은 것을 보고 실망했었다. 

 

2020.3.2 이진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차연희 2020-09-29 12:50:19
한 편의 시 같아서 옮겨놓습니다.

곧 비올 것 같은 날씨이면서 비는 오지 않았던
그렇지만 정말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구름을 그리는 게 핵심이었다.
뭐 더 핵심이라면 역시 하늘이 어쩌든 당당하게 서 있는 우리동네겠지만....

김성자 2020-03-03 21:32:10
글을 읽으며 그게 어떤 모습인지 그냥 영화를 보듯 떠올라지는 건 알기 때문이겠죠 ㅎㅎㅎ 가슴이 먹먹하고 쨘해 오네요 그 시절의 향기를 맡는 듯한 느낌이에요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