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금곡동·창영동' 보고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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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금곡동·창영동' 보고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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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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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약적, 미시적인 관점의 지역사 수집, 사람들 이야기도 담아

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금곡동·창영동보고서(부제 배다리에서 쇠뿔고개까지)를 발간했다. 인천의 오래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금곡동과 창영동에 대한 일 년간의 도시생활사 조사를 마치고 발간했다.

 

동구는 2017년부터 매년 하나의 동을 선정하여 옛날 고문서와 신문, 사진자료를 수집하여 기초 조사를 진행한 후 동네를 찾아 주민들의 심층 조사를 통해 마을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2017년 송림동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송현동을, 지난해에는 금곡동과 창영동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금곡동과 창영동 조사에서는 과거 우각동에서 시작되면서 나타난 마을의 형성 및 발전과정, 지명, 배다리와 쇠뿔고개의 옛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또 개항과 경술국치, 3.1운동, 6.25전쟁,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큰 사건들에서 보이는 보다 집약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의 지역사를 수집했다. 나아가 이곳에 살았던 혹은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우선 이번 조사의 큰 성과는 1880년대부터 쇠뿔고개를 지칭하는 오래된 지명을 공문서와 지도, 신문 등에서 찾은 것이었다. 개항기의 공문서인 『인천항안』(규장각 소장)을 통해 쇠뿔고개 마을이 조성시기를 1896년경으로 한정하여 발견하였는데 동구의 조선인 마을의 형성 과정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개항 초기 조계지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그곳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옛 우각동(현재의 금곡동과 창영동), 송현동과 만석동 등지로 이주터를 찾은 과정이 『인천항안』의 인천부 관찰사였던 박세환의 보고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지금의 창영동은 개항기에 인천 조선인 근대교육의 중심지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인천 3.1운동의 시발지였다. 보고서에서도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근대 교육과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던 이 지역을 조망하였다. 또한 금곡동에 위치한 배다리시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50년대까지 인천의 유명한 시장이었다. 1910년대 매일신보에 나온 기사에서 배다리시장의 초기 위치는 쇠뿔고개 가는 길목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1930년대 송현동의 신작로를 따라 생겨난 야시장 등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배다리삼거리 부근으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이 시장을 구경했던 주민들은 없는 것이 없었던 시장으로 기억한다.

 

이 밖에도 금곡동과 창영동 사람들의 삶과 공간을 주거와 상업, 교육, 종교,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구분하여 문헌과 신문, 사진 등의 실물자료와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서술하였다.

 

구 관계자는 "'인천 동구 도시생활사 조사는 동구의 모든 지역을 5개의 권역으로 나눠 조사하고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 이라며 "이번 조사는 인천 동구에 마을이 형성된 과정을 개항기 공문서에서 찾을 수 있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올해 도시생활사 조사는 만석동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동구는 오는 2021년까지 인천 동구의 모든 지역을 조사한 후 보고서를 완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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