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산 너머 물 길어 나르던 남숙과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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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 너머 물 길어 나르던 남숙과 인구
  • 권근영
  • 승인 2020.02.1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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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4) 공동수도, 그리고 개별수도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송림동 집 마당에서 남숙

남숙은 아침마다 송림동 수도국산 너머에 있는 공동수도에 갔다. 함석으로 만든 물초롱(물통) 두 개를 줄 끄트머리에 대놓고 집으로 내려왔다. 물긷는데 줄이 길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물초롱으로 자리를 맡아놓는 거다. 그러면 여자들이 물초롱을 집어다가 앞으로 옮겨주고, 또 앞으로 옮겨주고, 그렇게 서로들 순서를 지켜가며 물을 길었다.

 

송림동 집에는 도라무깡(드럼통)이 마당에 하나, 부엌에 하나 있었다. 거기에 항상 물을 채워 놓고 사용했다. 남숙은 지게에 물초롱 두 개를 지고 와, 마당에 있는 도라무깡에 들이부었다. 그 물로 아이 기저귀를 빨았다. 똥물이 들어 얼룩진 기저귀는 폭 삶아서 앞마당에 하얗게 널어놓았다. 경동 엄마가 아침부터 잠도 없이 물 길어오고, 기저귀까지 빨았냐고 물으면, 남숙은 얼른 해 날 때 기저귀 말려 놓아야 식구들 빨래도 한다고 대꾸했다.

 

남숙은 종종 물초롱을 깨뜨렸다. 특히 겨울에는 반질반질한 비탈길에 한 발자국만 잘 못 놓으면 미끄러져 훌러덩 나가떨어졌다. 그러면 물초롱은 물초롱대로 내리굴러서 찌그러지고 물은 물대로 나동그라졌다. 그런 남숙의 곁에서 일을 거든 건 첫째 아들 인구였다. 인구는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엄마를 위해 물지게에 물을 반통씩 담아 어깨에 메고 수도국산 언덕을 오르내렸다.

 

남숙을 도와 집안일을 곧잘 하면서도 결석 한 번 하지 않던 인구가, 한 번은 송림학교를 가다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침 먹은 게 체했는지 배가 아파서 돌아온 거다. 약을 먹이고 학교에 가지 말라고 일렀는데, 어느새 인구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달아났다. 남숙은 인구를 쫓아갔다. 인구의 담임 선생을 찾아가 애가 아침부터 아팠다고, 쉬라고 했는데도 빠지면 안 된다면서 왔다고, 늦었다고 벌주지 말아 달라고 했다. 담임 선생은 알았다고 걱정하지 말라 했다. 돌아서며 남숙은 창문 너머로 교실 맨 앞 책상에 앉아 있는 인구를 들여다보았다.

 

교실은 콩나물시루마냥 아이들로 빼곡했다. 송림국민학교 1학년과 2학년은 학생이 너무 많고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했다. 고학년부터는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가서 오후까지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한 반에 65명씩 15개 반이니까 한 학년에 900명이 넘었다.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나누던 시절, 책상 배치와 분단도 수우미양가로 나눴다. 복도 쪽부터 가 분단, 미 분단, 가운데가 수 분단, 우 분단, 창문 쪽이 양 분단이었다. 그렇게 성적대로 분단을 나눠서 키 순서로 학생을 앉혔다. 인구는 키가 작아서 우 분단 맨 앞자리에 앉았다.

 

복도에서 창문 너머로 인구를 바라보며 남숙은 가슴이 쓰렸다. 인구가 키가 작아 교실 맨 앞자리에 앉은 것도,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어 부모 속 한 번 썩이지 않은 것도, 동생들 돌보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그러다 남숙은 수도국산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집마다 수도를 놓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에서는 신청자를 받았다. 돈이 많이 들었지만, 가정집마다 수도를 놓으면 공공수도에 물을 길으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오며 물지게의 물을 흘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인구가 물지게가 아닌 책가방만 메고 뛰어다닐 수 있었다. 남숙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나서서 수도 공사를 서둘렀다.

 

동네에 개별 수도가 놓이자 사람들 사이가 한바탕 술렁였다. 바로 윗집 창구네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냥 공동수도에서 길어다가 먹으면 된다며 수도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는 물을 쓰고 점점 공동수도에 가는 발길이 뜸해지자, 창구 아버지는 심술이 나기 시작했다. 급할 때는 이웃인 남숙네 가서 수도를 썼는데, 수도 값을 주기도 애매하고 받기도 미안한 상황들이 계속됐다. 결국 창구네는 빚을 져서라도 수도를 놓기로 했다.

 

창구네를 시작으로 2차로 가정집에 수도를 놓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미 공사가 끝난 뒤라 2차로 수도를 놓으려면, 근처 이웃집에서 수도를 따야 했다. 기술자들은 남숙네 수도를 따서 창구네 가정집 수도를 만들어주었다. 창구 아버지는 남숙을 찾아가 고맙다며 돈을 건넸다. 남숙은 돈을 거절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자신이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물이 줄지도 않았고, 사용하는 데 하자가 없었다. 한동네 아래윗집으로 살면서 당연한 거라고 남숙은 말했다.

 

개별 수도를 따서 이웃집에 수도를 놓아주는 공사가 간간이 있을 때마다 크고 작은 소란이 생겼다. 물이 줄었다고, 약해졌다고, 수도 요금이 맞냐고. 그럴 때마다 동회장(동장)이 나서곤 했다. 한 번은 한겨울에 수도가 다 얼어서 집마다 물이 안 나왔는데, 남숙네만 물이 나왔다. 기술자가 와서 살펴보더니, 수도 파이프를 개울물 옆에다 묻어서 괜찮은 거라고 말했다. 남숙네 집 대문 앞에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악취도 심하고, 쥐도 돌아다니는 더러운 하수도 개천이었는데, 그 옆에다가 수도 파이프를 심어 놓았다고 했다. 개울물이 항상 흐르기 때문에 수도가 얼지 않았던 거다.

 

집마다 파이프를 녹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사는 동네의 겨울은 소란스럽다. 수도국산 달동네 사람들의 가난해진 마음이 얼었다 녹았다 한다.

 

인구. 당시 이런 사진이 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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