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묘사 사이의 일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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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묘사 사이의 일상 풍경
  • 채은영
  • 승인 2020.02.14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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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 속 인천]
(3) 노기훈 작가의 1호선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은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 속 인천의 장소, 사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 동네 이야기로 낯선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호선 도화-주안 커플, 2013 (출처. 아르코아트센터 아카이브)
1호선 도화-주안 커플, 2013 (출처. 아르코아트센터 아카이브)
1호선 백운-부평 미군부대, 2013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1호선 백운-부평 미군부대, 2013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한 사진 속에는 건물 입구 쪽 낙엽이 떨어진 길가 의자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약간 부자연스럽게 손을 모아 앉아있는 두 사람의 표정은 건조하고 어색하게 다물어 내려간 입꼬리가 똑같다. 일바지, 패딩점퍼, 모자 등 드레스 코드가 묘하게 어울린다. 다른 한 사진은 멀리 아파트 단지가 산등성이처럼 둘러싸여 있고 앞쪽엔 커다란 단지가 있다. 굴뚝이 솟아 있는 아래 낮고 낡은 건물들이 펼쳐져있고 오래된 공장같기도 하고 고요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작업 제목에 역(驛)정보를 알지 못하면 주안역인지 부평역인지 알기 어렵고 사진 또한 특별할 게 없이 평범하다.

사진을 공부한 노기훈 작가는 특정 공간의 장소성과 존재를 기존 다큐멘터리 방식과 조금 다르게 탐색한다. 미리 촬영 계획이나 동선 등을 짜는 것이 아니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초원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을 때 사용했을 법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그 공간들의 풍경 이미지가 작가에게 체화되는 순간을 느리게 기다린다. 자신이 자란 구미가 노동과 산업화의 도시로 재현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년배들의 삶의 궤적과 변해가는 도시 공간의 풍경들을 2009년부터 10년째 작업하고 있다.

 

1호선 전시 설치 장면, 2016  (출처. 네이버 헬로 아티스트)
1호선 전시 설치 장면, 2016 (출처. 네이버 헬로 아티스트)

 

구미 친구들이 공장에 취직하고 일찍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할 사이, 작가는 서울로 상경해 대학에서 사진 공부를 하고 예술가가 된다. 지방에서 서울과 인천을 동일시했던 작가는 2013년 인천아트플랫폼 입주해서 생전 처음 1호선을 탄다. 용산에서 출발해 인천을 향하는 지상철 안에서 작가는 빠르게 변하는 외부 풍경과 함께 계속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들어오면서 변해가는 공기, 분위기, 냄새 등은 기이한 그라데이션을 경험한다. 그 순간의 시각적 느낌을 잡기 위해, 1899년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생긴 초기 1호선 역들을 인천에서 서울, 서울에서 인천 방향으로 마치 도장깨기식으로 한 역씩 골라 주변을 오랜 기간 걸어 다녔다. 그렇게 짐 자무시의 영화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에서의 디트로이트처럼 원도심이 되어버린 공간들의 정서가 익숙한 듯 낯선 풍경처럼 드러난 작업이 <1호선>이다.

 

아더 레지던스 아더 로컬리티 전시 설치 전경, 2019 (필자 제공)
아더 레지던스 아더 로컬리티 전시 설치 전경, 2019 (필자 제공)

 

작가는 어떤 지역이나 공간, 사람들을 특정 가치관이나 거대 서사 등으로 단순하게 상징하는 것에 거리를 둔다. 구미를 대상화하는 외부의 시선과 표현에 불편함과 위험함을 느꼈기에, 다른 지역과 공간,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할 때 섣불리 답이나 방향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서울역에서 청량리행 지하철 역 안에서 사람들로 사회 부조리를 드러내는 반면, <1호선>은 지상철로서 역 주변의 보편적 일상에 주목한다. 작가가 12일간 백령도에서 머물며 해안선을 따라 10m 간격으로 찍은 사진을 이어붙이는 작업에서 작가의 시선도 섬의 안쪽이 아니라, 외부로 향하고 있었다. <1호선> 작업 역시 역의 건물이나 철도, 기차가 아닌 1호선 외부 풍경이다.

작업을 위해 사전 리서치를 꽤 많이 하는 작가는 정작 작업을 위해 공간으로 들어서면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투명한 습자지가 되어 장소성을 새겨 넣는다. 작가는 특정한 공간에서 만나는 인물조차 풍경처럼 다가온다고 말한다. 카메라의 대상으로 지역과 공동체의 특수성으로 박제하고 전형화하거나, 고향과 정주로 괄호치지 않고, 장소와 일상의 공통성에 주목하며 지역을 기술記述하지도 묘사描寫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지역은 좀 더 섬세하고 풍성해진다.

채은영(큐레이터, 임시공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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