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강제 야간 자유학습 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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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강제 야간 자유학습 하지 않았다면...
  • 이권형
  • 승인 2020.02.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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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갈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원고 요청을 받았는데 마감이 이틀 남았다든가 할 때 말이다. 오늘 같은 경우엔 햇수로 정확히 10년 전 나의 모습을 문득 마주친다. 2010년 당시의 나는 한국 나이 18세의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생으로, 매일 소니 이어폰이 귀에 고정되어 있으며 두발 규제로 머리는 박박 깎아 놓은 영락 없는 당시 인천 남학생이다. 하릴없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때워가며 생각한다. “10년 뒤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10년 뒤의 너는 다급히 칼럼 원고 마감을 치고 있단다.” 주마등의 끝에서 타이핑 소리와 함께 대답이 들려온다. 그때의 내가 정말로 이 대답을 들었다면 어떻게 느꼈을까. 계시라도 들은 양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해봤을까. 뭐가 됐든 의외라는 반응이긴 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는 일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안 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하는 일 중에 하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일의 비중이 얼마나 될까. 10년 전에는 두발 규제로 머리 기르는 것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많이도 아니고 그냥 삭발 수준만 조금 넘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더라. 당시 다니던 인천논현고등학교의 별명이 논현사()’였다는 것만 대도 알만한 것이다. 의외로 야간자율학습도 빼먹은 적 없어서,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등교하면 방과 후에 밤 10시까지 책상에 앉아서 미래를 그려보다 귀가하는 게 일과였다.

 

그래도 그때 나름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 가장 확실히 하고 싶었던 게 아무래도 음악이다. 인천은 진학이 지망 순에 따라 무작위이므로, 선지망 학교에 떨어진 나는 고등학교를 멀리 다녔다. 그래서 생긴 등하교 시간 2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 게 그 시기에 나름 주어진 자유였다.

 

그리고 그때 그리던 대로, 음악 작업을 하며 지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원하는 음악만 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때론 정해진 약속과 규율에 나와 내 결과물을 맞춰야 할 때도 생긴다. 그렇다고 무한정의 자원으로 원하는 작업만 하는 게 항상 좋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과가 상황과 여건에 따라갈 때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경우도 많다. 무한정 주어진 자원 안에서 내 기준에 맞는 결과물과 모습을 목표 삼다 보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상황에 맞춰간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합의의 범위가 커진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나도 원고를 작성하면서 생각한다. “마감 기간이 하루라도 더 있다면 이것보다는 가치 있는 얘길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감은 마감이다. 칼럼이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작품활동 같은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 같은 상황이라서 쓸 수 있는 글도 있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10년 전, 머리를 박박 깎지 않고, 강제로 야자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패셔너블한 사람이 됐다거나, 지금보다 더 끝내주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됐을까? 아마 그건 아닐 거다. 하지만 그때 조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모습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면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솔직히 그때 야간자율학습 한번 안 빼먹어 본 게 후회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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