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대중운동과 정당의 반지성주의적 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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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대중운동과 정당의 반지성주의적 결탁
  • 이김건우
  • 승인 2020.01.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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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김건우 / 서울시립대 3학년, 교지 편집장

 

지난 해 1216, 자유한국당은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를 열었다. 당일 오전 국회는 출입 통제되어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 국회에 들어가고 있지 못 하였지만, 자유한국당 수뇌부가 출입통제에 항의하면서 국회 정문이 열렸고, 수천 명에 달하는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 집결했다.

 

철 지난 사건에 구태여 말을 붙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 대중운동과 정당의 뒤틀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이 날 이 시각 필자는 똑같이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다른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집회로 기자회견을 할 수 없었고 이 기이한 광경을 직접 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이했던 모습은 국회 본청을 좌우로 지키고 있는 애국애족상을 집회 참가자들이 올라탄 모습이었다.

 

규탄대회 참가자들이 국회 본청 앞 애국애족상에 올라가 있다.

 

애국애족상은 말 그대로 국회와 국민이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발전에 정진하라는 함의가 숨겨져 있고, 동상 곳곳에 태극기와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집회에 참가한 극우 대중운동 세력들은 법과 제도를 무시하며 대의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에 난입한 것도 모자라 이 조각상마저도 모욕하였다. 이 광경은 법과 제도, 애국애족을 강조하였던 한국의 보수주의가 법과 제도와 애국애족 정신을 도리어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음을 보여준다. 물론 애국애족상에 올라간 집회 참가자들이 이러한 의도를 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보수주의가 비합리성에 빠졌음을 함축하는 알레고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극우대중운동세력과 자유한국당의 국회 난입 사태는 상징적인 요소들이 많다. 이전의 지배적 사회 구조로의 완전한 회귀를 지지하는 대중운동세력, ‘태극기 세력이 지배적 구조의 상징 중 하나이면서도 대의제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이 점령은 정치 엘리트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해 가능하였다는 점에서 묘하다.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나는 이것이 대중운동이 반지성주의로 귀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책임있는 정치를 해야 할 정당이 이와 결탈학 때 어떠한 위험이 생기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답하고 싶다.

 

반지성주의란 무엇인가?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저자 호프스태터는 지식인에 대한 증오라 정의한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지성적 논의 전반에 대한 적대감으로 귀결되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차단한다. 지성적 태도란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피력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에 대한 성찰적 사고와 민주적으로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포함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대중운동 또는 개인은 방대한 증거를 자랑하지만, 이 증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는 적대감을 보인다. 자신의 증거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는 어떠한 토론도 불가능하다.

 

반지성주의를 태도에 초점을 맞추어 지성과 지성적 태도 일반에 대한 냉소와 가치절하로 보았을 때, 국회난입사태는 충분히 반지성주의적이다. 이 사건은 성찰적인 자기인식과 지성적인 토론을 차단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태는 극우 대중운동과 자유한국당이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정치적 행동에 관해 성찰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지성주의의 표출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일 규탄대회는 공수처 설치와 선거법 개정이 좌파 독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주장이 이슈파이팅을 위한 대중운동의 구호로만 쓰인다면, 설사 이 주장의 논거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찰적인 자기인식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쉽사리 비판하기는 어렵다. 대중운동은 으레 쉽고 자극적인 구호를 통해 가시화되는 전략을 채택한다. 이때 한 논점에 대한 다양한 구호가 대립하고 토론이 가능해진다면 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 날의 국회 난입 사태는 좌파독재라는 규정을 통해 정치적 협상을 일체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정치적 협상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을 점령함으로써 민주적 토론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였다. 정치적 조정 과정에서 정치 엘리트 집단이 대중운동세력과 공모하여 주장을 관철하려 하는 이러한 태도는 충분히 반지성주의적이다.

 

뿐만 아니라 합리성을 권력을 위한 도구적 합리성으로만 이용하는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결국 합리적이지도 않게 되었다. 지난 4월 민주노총은 국회 앞 집회에서 국회 경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황교안 대표는 이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으로 더 이상의 불법 폭력 시위를 막아야 하며 이들 주장에 국회와 정부가 휘둘려서도 안 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자유한국당이 주도한 국회 난입 집회는 승리라고 표현하였다. 보수주의가 중시하는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행위는 결국 보수주의라는 합리성이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준다.

 

당일 국회 난입 사태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태극기세력 역시 반지성주의적인데, 이 모습은 대중운동이 스스로 성찰하지 않고 과열되었을 때 어떠한 위험을 안는지 보여준다. 대중운동은 종종 대중운동을 주도하는 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띤다. 추종자는 스스로 대중운동의 지도자를 열렬히 따르면서 본인 역시 그 지도자와 비슷한 권위를 지닐 것을 소망한다. 대중운동이 과열되면 추종자들은 대중운동이 지향하는 목표의 달성 여부가 아니라 이 집단에서 배제된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더 쫓는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은 같은 대중운동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제와 민주적 토론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태도는 당일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국회 난입 사태가 있기 전 국회 경내 출입은 통제되고 있었다. 직원과 용무가 있는 사람들만 확인을 통해서 출입할 수 있었는데 이에 항의하던 사람들은 내가 자유한국당 당원인데 국회에 왜 못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다른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던 내게 너네 신변 보장 못 해! 얼른 나가!”라고 소리친 집회 참가자도 있었고, 정의당 농성장에 있던 정의당 당직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기사화되기도 하였다.

 

국회 난입 사태는 단순히 극우 세력이 한 짓이라고 문제인 게 아니다. 이 사건은 좌우를 막론하고 대중운동이 잘못된 길로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정치 엘리트 집단이 이에 편승하면 어떠한 위험이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모든 대중운동은 그것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와는 상관없이 반지성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우리는 국회 난입 사태를 보며 더 나은 대중운동과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칼럼 하나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국회 난입 사태에서 반면교사할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다음과 같다. 대중운동과 정치는 특정한 것에 관해 싸워야지 상대 진영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를 해서는 안 된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상대 진영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는 곧 민주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사회를 파시즘으로 이끈다. 20세기 전반기의 파시즘은 총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당파적 이해관계 계산의 결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치의 집권은 당시 독일 온건 우파의 묵인을 통해 가능했다. 온건 우파는 당장의 당파적 이해관계에 급급하여 나치를 인정하였고 충분히 자신들이 나치를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온건 우파의 축출과 나치의 집권이었다.

 

현재 한국의 정치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정당이 책임 있는 정치를 하고 여론을 선도하기보다 각자가 듣고 싶은 집단 극화된 대중의 말만 듣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것처럼 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일 것이다. 다시금 총선을 앞둔 지금, 작년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각 정당들이 더 책임감을 갖고 한국 정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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