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2020년 이제 그만 페미사이드를 멈춰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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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2020년 이제 그만 페미사이드를 멈춰야할 때
  • 박교연
  • 승인 2020.01.0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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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지난달 1228일 오후 2시에 서울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일대에서 페미사이드 철폐시위가 열렸다. 페미사이드(Femicide)는 밀스 칼리지의 다이애나 러셀 교수가 1976년 여성 대상 범죄 국제재판소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합성어다. 러셀 교수는 1992년 출간한 동명의 저서에서도 페미사이드에 대해 재차 언급했다. 그는 페미사이드를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남녀의 권력관계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성에 대한 쾌락, 소유욕, 경멸, 혐오 등의 이유로 남성이 자행한 여성 살해라고 정의했다.

 

프랑스 가디언 등 언론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19년 프랑스의 페미사이드 희생자는 116명에 이른다. 독일에서도 올해만 119명이 희생됐고, 여성인권이 열악한 동유럽과 중남미에서 희생자 숫자는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서유럽의 몇 배 이상으로 높다.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페미사이드에 분노를 느낀 여성들은, 작년 8월부터 세계 각국에서 더는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며 페미사이드 규탄 집회를 동시다발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하루에 가장 많은 여성이 살해되고 있는 멕시코에선 내가 차라리 동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부가 날 더 보호해줄 테니까.”란 말과 함께 #하루에_여성_9_살해 해시태그 캠페인이 벌어졌고, 하루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137번 이상 발생한다는 남아공에서는 엠 아이 넥스트(#Am_I_Next)’ 해시태그 캠페인이 벌어졌다. 수천 명의 로마 시민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자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광장에 모여 행진했고, 브뤼셀 도심 곳곳에는 빨간색 구두가 놓였다. 빨간색 구두는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으로 인해 흘린 여성의 피를 의미한다.

 

우리사회 역시 강력범죄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다. 검찰청 범죄동향 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강력범죄 중 여성피해자 비율은 89.2%이었다. 여성대상 강력범죄는 2000년대에 들어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0년에는 6245(71.3%)였던 숫자가 불과 10년 후인 2011년에는 4배로 늘어 23544(83.8%)을 기록했다. 심지어 이 숫자는 여성대상 범죄의 모든 피해를 기록한 것도 아니다. 강력범죄 피해는 결코 일회성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23차 피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작년 10, 11월에 연달아 들려온 고() 설리(최진리·25)와 고() 구하라(29)의 비보가 대표적인 예다.

 

이번 혜화역 시위에서 여성들은 한국은 불법촬영물,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여성대상 강력범죄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나라라면서 더는 여성혐오로 인해 단 한 명의 자매도 잃을 수 없다며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국가가 여자에게 기본적인 울타리가 되어줄 것페미사이드와 성 불평등을 타개할 실질적 대책들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중앙대 이나영 교수 역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페미사이드는 남성중심 문화에서 어느 사회, 어느 계층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공적영역에서 남녀동수비율 적용을 확대하는 등 여성 입장과 관점에서 폭력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주도 아래에서 남성중심 문화를 개선하는 것은 페미사이드 방지에 가장 빠른 해결책 중 하나다. 페미사이드는 전·현 남성파트너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과 낯선 자에 의해 발생하는 성적인 살인이 가장 많지만, 사회·문화적 관습이나 종교 등에 의해서도 자주 일어난다. 명예 살인, 지참금 살인, 영아 살해, 선택적 낙태 모두 페미사이드의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페미사이드는 다른 여성대상 강력범죄와 마찬가지로 공포와 불안을 통해 여성을 지배·통제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 수잔 브라운 밀러가 말한 강간 이데올로기와 같은 기능을 갖는 것이다. 밀러는 자신의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강간을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 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가 있다.

 

또한, 그는 강간범의 전형성에 대해 “FBI 통계와 엄밀한 사회학 연구 결과를 보면, 전형적인 미국의 강간범은 소심함이나 성적 좌절, 지배 성향을 보이는 부인과 어머니 때문에 시달리는 괴짜 정신병자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의 전형적인 강제강간범은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로 작정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젊은이일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간범이 왜 강간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젊은 하층계급 남성에게는 마초적 방식에 순응하거나 충성하는 것, 특히 집단이나 무리에 속했을 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집단 내 지위와 평판, 정체성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강간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는 페미사이드를 정신이상자나 반사회적 괴물에 의해 발생하는 특수범죄로 보고 있지 않다. 남성지배적인 사회구조는 가부장적인 가치와 욕구를 만들었고, 자연스레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끔찍한 페미사이드를 발생시켰다. 그러므로 여성에게만 더 가혹하고 차별적인 사회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여성의 죽음은 피해당사자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국가는 여성의 절박한 외침에 답을 하고, 사회는 폭력방지를 위해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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