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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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 구
  • 유정임
  • 승인 2019.11.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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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마을]
항구 - 유정임

월미산 정상에서 시 낭독회가 있었네

밀물처럼 어둠을 몰고

어스름이 출렁출렁

속으로 번져 들었네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네

그 소리

어둠 속 허공에 시인들의 시소리를 실은

배 한 척 띄워놓고

표류중이네

 

산 아래 항구를 내려다보니

언제 들어와 머물렀던 밴지 지금 막 떠나고 있네

水域 불빛들, 젊은 날 웃음 같이 반짝 거리네

멀리 정박해 있는 배들의 불빛이 추억처럼 아득하네

잔뜩 부려져 있는 컨테이너 야적장은 먼 불빛이 무겁네

 

받아드려야 하는 것들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

내 몸도 항구였네

나도 아직 항구에 머물고 있네

 

 

월미산은 6.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이 행해진 격전지이기도 하다. 해발 108m의 낮은 산으로 50년간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시민들의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2001년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2019년 올 봄, 월미산 중턱에 굳게 닫혔던 탄약고의 문이 활짝 열리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이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지 묻는 설문조사를 하기도 하였다. 월미산에 주둔했던 군부대가 평택으로 옮겨간 지 꽤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이 곳은 음식을 숙성시키는 효소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은 싸인판에 역사 박물관’, ‘ 시민 휴식처’, ‘ 자연카페등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적혀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이 곳을 작은 갤러리로 활용해도 좋을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월미산의 사계를 소재로 한 화가나 사진가들의 작품을 감상한다면 자연의 맑은 공기와 더불어 일석이조의 의미있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월미산은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사계절 수목이 아름답고 많은 종류의 새들이 지저귀고 있어 인천 시민들이 발길이 많아진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도 주말에는 가족과 월미도 어귀에 차를 세워놓고 월미산 둘레길을 걷는다. 그러면 길 한가운데 귀여운 청솔모가 나타나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참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가을에 비가 올 때는 도랑을 타고 단풍잎이 떠내려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나뭇잎이 수북이 떨어진 둘레길을 밟으면 폭신폭신한 발바닥의 감촉이 단풍의 색채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한다.

 

월미산이 개방되자 인천작가회의 회원들과 다른 문인 단체에서 시를 써서 시화전을 하기도 했고, 월미산 정상에서 시 낭독회를 열기도 했다. 맑은 공기를 쏘이면서 좋은 시를 낭독하노라면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인천 내항, 차이나타운, 개항장, 월미도가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났다.

이 곳에서 열리는 시낭독회는 뱃고동 소리와 어우러져 바다의 밀물과 한 몸으로 녹아든다. 배 한 척 띄워놓고 시인들의 시는 표류중이지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멀리 정박한 불빛을 불러들이면서 반짝인다. “젊은 날 웃음같이항구에 머물렀다 떠나는 배를 바라보는 위 시 속의 화자는 자신의 몸을 항구로 은유한다. 그래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떠나보내야 하는 것을 살피며 자신을 성찰한다.

 

개인이든 기관이든 성찰의 시간은 언제든지 필요하다. 월미도에서 내려다보이는 내항 8부두와 북성포구 일대는 2019년 현재 인천시에서 항만 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기도 하다. 3만 톤급 선박이 북항에 입항하기 위해서는 만조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준설 작업이 완료되면 물때와 상관없이 큰 선박들도 입항할 수 있다고 한다. 심도 깊은 사유는 스마트한 항구 도시를 만들고 모양이 경쾌하고 말쑥한 시인들을 머물게 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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