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허구 사이의 존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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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허구 사이의 존재’에 대하여
  • 진나래
  • 승인 2019.11.03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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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작가 사이버 갤러리]
(18) 진나래(미디어) - ‘진실'로 여기는 것들의 허구성을 응시하다
인천in이 ‘인천작가 사이버갤러리’를 격주 연재합니다. 인천을 기반으로 꾸준히 활동하는 청장년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조망합니다. 인천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시민,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하려는 기획입니다. 작가 추천에는 고제민(화가) 공주형(미술평론가) 구영은(우리미술관 큐레이터) 윤종필(문화기획자) 이탈(화가) 채은영(임시공간 대표) 님이 참여하고, 글 정리는 고제민 작가가 맡습니다.
 


 들은이야기 화면캡처, VR에세이, 2018 (2)

 
 진나래
2014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수료)
201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조소과 석사(졸업)
2009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조소과 학사(졸업)
2005 미국Fort Hays State University, Graphic Design(1년 수학)
 
<개인전>
2018 랜덤증언, 돈의문박물관마을 더빌리지프로젝트, 서울
2016 작가P의 (재)구성, 인천아트플랫폼 G1, 인천
2015 Dramascope, 인도뉴델리 한국문화원, 뉴델리, 인도
2012 초원장, 스페이스 빔, 인천 ('인이' 예명 사용)
2011 우석홀에서 만나요, 우석홀, 서울대학교
 
<주요 그룹전 및 프로젝트>
2018 Simulacra2, Galleri54, 예테보리, 스웨덴
인천청년문화예술레지던시, 인천 문화예술잡지 <새러데이인천>, (추르추르판판)
조치원 도큐멘타, 세종
픽션-툴: 아티스트 퍼블리케이션과 능동적 아카이브, 인사미술공간(‘만 개의 파도')*
2017 촉각적 원근법,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서울
원도심 탐구생활, 제주문화예술센터 이아 개관전, 제주
라이브쇼-개O예정, 제주문화예술센터 이아 개관 사전 리서치-워크숍 프로젝트, 제주
2016 리-리서치, 우정국, 서울*
Trans-, 주인도한국문화원, 인도뉴델리
Openhaus, ZK/U, 베를린
2015 Social Animals, Alliance Francais, 뉴델리
New World Cinema, 신세계갤러리센텀시티, 부산*
New Host Wanted, The Blueline Gallery 외 인근, 인디애나 블루밍턴*
아무도 모른다, 인사미술공간*
2014 제로 그라운드, 아트 스페이스 풀
예술가의 전진기지 발언, 인천아트플랫폼*
도시신사 A씨의 일일, 서울 시내에서 이루어진 5개의 산발적 이벤트*
도:시 사이, 컴팩스마트시티, 인천*
2013 삼일야화, 경기창작센터*
시화: 시가 되다, 문래 예술 공장 M30*
낙원가족 서비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도시 신사 A씨의 쾌적한 집들이, 교남동 빈 집*
2012 If you dream it: ○□★△×, 서울역 및 후암동 일대(오프앤프리 국제영화예술제)*
그 ‘거리distance’의 창의적 자세, 금천예술공장
Back to the Future: ○□★△×, 인천
Blackout, 관악산 야외 폐수영장
 
< 레지던시 >
2017 우리미술관, 인천 동구 만석동
2016 ZK/U, 독일 베를린(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교류 해외레지던스참가지원)
2014 인천아트플랫폼*
2013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하반기 지역협력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2012 스페이스빔 국제레지던시 'Nightwalkers in Incheon'
 
홈페이지: jinnarae.com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작업실


 진나래 작가
 
진나래 작가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면서 미술에 있어서의 물질과 비물질, 공간과 시간, 노동과 자본의 요소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후 비물질적인 사이의 조각, 관계의 조각을 고민하며 주로 ‘컷 앤 페이스트 글쓰기(cut-and-paste writing)’의 방식으로 ‘진실과 허구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에 관해 작업해왔다. 실재하는 텍스트, 이미지, 이야기들을 편집하여 관람객들과 함께 글을 쓰는 ‘편집-쓰기'의 방식으로 인물들을 창조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2012년부터는 실재하는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삶의 공간에서 허구로 엮어내고자 아트콜렉티브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결성하여 다년간 활동하였다. 인터뷰와 뉴스리서치 등을 바탕으로 허구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이를 실제 세계에 다시 입히는 작업들을 했으며, 대부도 주민들의 생애사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허구적 인물과 내러티브를 만들면서 미시사와 거시사를 연결하기도 했다. 이후 대상을 역사적, 사회적 관계성 속에서 파악하고 맥락화하는 사고를 더 가지고자 사회학과에 진학하였으나, 삶에서 마주해왔던 불편함들, 싸움, 그리고 실제 삶의 공간에서 실재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작업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게 된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언어라는 면에서 오히려 인류학과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고 타자를 다루는 일과 재현의 문제에 주목하며 이와 관련한 예술 영역에서의 문제를 고민하였다.

그러한 관심이 최근에는 사람들이 자연과 관계맺기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 외 존재들의 주체성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 ‘나투라 나투란스Natura Naturans’ 인공정원 프로젝트와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 (비)인간 입법 및 사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사고와 달리 현실 세계에서 마주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례들, 그리고 이를 발화하여 다양한 목소리들의 권리를 조정하는 정치와 입법, 사법과정에서 각 존재들은 그 위치를 확인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재 조직화 한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은 재현되지 못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과정만이 아닌, 재현되고 있는 이들이 타자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주체적 발화를 하는 대상으로 인간 외 존재들을 사유하는 일은 그런 면에서 시각을 다각화함으로써 최소한의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진나래 작가는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해 최근 게임엔진을 배우고 있고 이를 통한 내러티브 실험을 진행 중이다. 2018-2019년 인천문화재단 '인천형 예술인 지원사업'의 유망예술 부문에 선정되어, 11월 20일부터 2주간 인천아트플랫폼 H동 프로젝트룸에서 결과 보고전을 열 예정이다.

 

 reconstitution for the artist P_8(작가P의 (재)구성 세부, 관객참여 컷 앤 페이스트(cut-and-paste) 쓰기 및 인스톨레이션, 아트스페이스풀, 2014)
 

<작가 이야기>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기존에 본 것과 들은 것을 편집하고 전달할 뿐입니다. 여기에 주목하여 학창시절과 활동 초기에는 ‘진실'로 여기는 것들의 허구성에 주목하고, 진실과 사실, 허구 사이의 존재를 ‘컷-앤-페이스트’ 쓰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일을 해왔습니다. 재료로는 기존에 존재하는 텍스트, 이미지, 이야기, 뉴스,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쓰는' 것인데,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겠다는 의도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삶은 진실과 허구의 미묘한 겹침 아래에 존재하고 있으며 또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문’이나 ‘가십’이라는 것도 그렇고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어떤 말이 떠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진실’이 무엇인가의 문제에서 벗어나 생물처럼 말이 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억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다 하여 어느 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없다면,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고 아무도 그에 대해 말하거나 듣지 않는다면, 그 사람/사건은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이나 어떤 이야기가 타인과의 연결망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볼 때, 결국 어느 누구도 온전히 허구로, 온전히 진실로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창시절 작업 중에, 퍼포먼스를 하고 그것을 관람한 사람들을 몇달 후에 찾아가서 얻은 진술을 기록한 작업이 있습니다. 어떤 사진이나 영상, 음성 기록도 남기지 않았으며, 목격자들의 증언만이 당시 상황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근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증언은 전시 기간 동안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위치에 남겨졌습니다. 여기에서 텍스트는 어떤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떤 행위와 이 발화자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그런 화자의 존재 그 자체로서 기능합니다. 기존 지면책과 지면기사를 ‘오려붙이기’ 또는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저만의 문학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하지 못하고 이 관심이 꼭 지면 편집은 아니더라도 기존 텍스트와 생애사 인터뷰, 뉴스 내용 등을 편집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라든가, 공동편집-창작이라든가 하는 것들로 이어졌습니다. 팀으로 공동작업을 할 때고 그랬고, 2014년과 2016년 ‘작가P의 (재)구성’과 같은 작업도 이의 연장선입니다. 결국 저는 지식도, 존재도, 객관이나 사실도, 어떤 창작도 기존 재료의 편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편집술인 거죠.
 
다년간 ETC라는 팀으로 도시 내에서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레이어를 입히는 일도 했습니다. ETC는 ‘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의 약자인데, 저를 포함한 세 명의 작가는 걷기, 우연한 마주침, 지역 전문가의 이야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리서치 등을 통해 도시에 귀를 기울이며 도시 및 지역과 가시적/비가시적, 직접적/간접적 소통,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저는 내가 사는 사회를 장으로 하는 예술실천에 관심이 있었고, 무엇보다 공동작업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관심이 방대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제 아이덴티티를 말할 수 없었는데, 노드(Node)와 노드를 연결하는 것이 링크(link)인 것이 아니라 링크들의 합으로서의 노드, 즉 관계적 맥락에서 형성되는 구름같은 아이덴티티를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실재하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실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것들을 재료로 하는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불편해지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트라우마적인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소비하고 당사자가 실명 그대로 노출된 채 출판되는 경우, 그들의 이야기를 내가 멋대로 편집하는 일이 어디까지 양해 가능한 일인가 하는 부분, 그리고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기록의 방식, 무엇보다 ‘예술'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불편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쓸데 없는 생각 말고 작업이나 하라'는 말을 듣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내가 된다고 생각을 할때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술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쓸데 없는’ 생각 말고 저지르는 것이 예술이라면 저는 예술의 탈을 쓴 반예술 지지자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제가 사회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오히려 인류학이나 여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가족사에서부터 시작한 고민인 냉전의 구술에 주목하여 <K의 계보> 수행-시나리오 작업을 하기도 했고, 몇 년 전부터는 자연과 인간, 기술 사이 쟁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보통 자연적인 것, 인위적인 것, 그렇게 구분을 많이 하는데 사실 인간의 이런 행위들조차도 자연적인 것일 수 있고요. 분재나 수석, 정원 문화에서 보면 자연물에 어떤 의미를 담고 조성하는 일을 하는데, 그런 곳에서 영감을 받아 미디어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부터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모든 생명을 위한 정당'을 모의로 조직하는 입법 및 사법 프로젝트입니다. 헌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사회가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사랑, 평화, 평등과 같은 모두에게 보편적일 것만 같은 이상적 추상어가 구체적 사례에 적용될 때 그 선(barrier)을 명확히 드러낼 수밖에 없듯, 헌법이 이상을 드러낸다면 우리는 그것이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통해 실질적 힘의 관계를 명확히 인지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힘의 불균형 속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비단 현실정치만이 아니라 일상, 문화, 학술, 모든 방면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에서 동등한 정치적, 사회적 주체로서 인정받는 과정은 그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사회가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인정하는가와도 관련된다고 생각하기에, 인간 외 존재들의 목소리를 우리 인간이 상상하고 다루어보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비인간은 데모의 참여자가 될 수 없다고 보지만, 자기 삶을 위한 투쟁의 과정이 데모이고 정치라 본다면 인간 외 종이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하여 정치적이지 않은 존재로 볼 수 있을까요? 인간 외 종의 언어, 표현과 소통방식이 우리에게 번역, 또는 전이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인간 외 종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치해내고 있는 것일까요? 외부와 구분지어진 형태로, 태어나고 죽고, 흩어지는 그런 종으로서, 서로 다른 종을 먹고 먹히는 그런 종으로서, 우리는 어떤 공생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과정을 백인들에 의해 나무에 목 매달린 흑인들을 과일에 비유한 Abel Meeropol의 시를 빌어 <Strange Frui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인격체가 아닌, 하지만 어딘가 살아 움직이는, 그 이상한 과일입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것을 먹고 소화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 사이, 그것은 어쩌면 가장 곤란하고 판단 불가능하고 가장 디스토피안적인 결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내가 상상할 수는 없지만, 과정 속에서 존재론적, 인식론적 전환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렇게 결말을 열린 채로 두고 평화와 폭력, 파괴와 연민 사이를 헤집는 여정을 떠나고 있습니다.
 
  
  <작품세계>
 

들은이야기 화면캡처, VR에세이, 2018 (2)


artistp_pool_display( 작가P의 (재)구성 설치장면, 관객참여 컷 앤 페이스트(cut-and-paste) 쓰기 및 인스톨레이션, 아트스페이스풀, 2014)


IMG_5917 (나투라 나투란스, 미디어정원 설치, 예술공간이아, 2017)


IMG_3500(나투라 나투란스 - 흙은 물이 되고 물은 불이 되고, 미디어정원 설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2017)


 IMG_3502(나투라 나투란스 - 흙은 물이 되고 물은 불이 되고, 미디어정원 설치,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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