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빛 친구와 가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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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빛 친구와 가을 여행
  • 은옥주
  • 승인 2019.10.2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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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가을 여행이야기 - 은옥주 / 공감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무작정 떠난 2박 3일 이었다. 내설악 오솔길을 앞서 걷는 친구의 희끗한 머리 빛깔이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숲속에 선 그녀가 단풍인지 단풍이 그녀인지 서로가 잘 어울려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에 마음이 청명해졌다. 울퉁불퉁한 길을 조심조심 한참을 걸어 오르다보니 어느새 발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문득,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가려면 이쯤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내 발도 단풍이 들었구나! 정상까지 기를 쓰고 악착같이 가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내려갈 때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나이가 되었다.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길이 더 울퉁불퉁하고 돌이 더 많아 진 것 같이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땅만 보고 걸었다. 어느새 길과 내가 하나가 된 듯 무수히 박혀 있는 돌들과 낙엽들이 나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조심해”, “천천히 걸어와”, “균형을 잘 잡아야 돼” 라고 땅과 대화를 즐기며 내려와 냇물 곁 바위에 걸터앉았다. ‘정상까지는 못 가더라도 중턱까지 갔다 오겠다’고 큰소리치며 올라간 친구를 기다리며.
 
그녀는 무슨 일이던지 앞장서는 사람이다. 남의 일도 자기 일 같이 척척 지치지도 않고 하는 열정이 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때로는 정말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잘도 이해하고 덮어주는 성격이다. 이번 여행에 친구는 살뜰히 밑반찬이랑 와인, 과일들을 종류별로 잔뜩 챙겨와 나를 감동시켰다.
 
하루를 더 자고 외설악을 보러갔더니 차들이 줄을 지어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는데, 이제는 목적지가 바뀌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해진 곳 없이 우연히 가다가 들린 조용한 사찰은 꼭꼭 숨겨진 보물 같았다. 오랜 세월을 머금은 절간 마루에 앉아 잠시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쉬는 것도 참 좋았다. 대웅전의 웅장함보다 작은 절간 부속 건물이 궁금해져서 돌아보니 고운 꽃들이 다정하게 피어있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들린 작은 야산에는 옹달샘이 있고 좁은 오솔길이 있어 마음 편안히 쉴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친구의 따뜻한 속마음처럼 자연의 포근한 품에 안겨 쉬는 여행이었다. 이제부터는 머리에 단풍을 이고 사는 고운 친구들과 우리나라 곳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야산의 속살을 보며 느릿느릿 걷는 여행을 해봐야겠다.
 
점점 이름난 명산보다 작은 야산이 좋고, 산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바다에 첨벙 뛰어드는 것보다 모래톱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 것을 보면 내가 지금 나이듦의 특혜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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