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1인 미디어가 만들어낸 탐욕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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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1인 미디어가 만들어낸 탐욕의 고리
  • 고재봉
  • 승인 2019.10.0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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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고재봉 / 자유기고가



조금 낯선 곳을 가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대번에 뜨는 검색어가 ‘아무개 지역 맛집’이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맛집이라는 말보다는 ‘단골집’이라는 말이 더 친숙한 말이었는데, 이제는 맛집이라는 말이 완연히 우세하다. 하지만 이 맛집이라는 말만큼 얄팍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단골집이야 자신의 경험이 축적되고, 주인과 손님의 신뢰가 쌓여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방송이나 sns에 한결같이 상찬하며 소개하는 ‘노포(老鋪)’들도 거개는 유명인들의 단골집이거나 그 지역의 명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관계가 역전이 되고 있는 모양새이다. 방송을 타고 나면, 멀리서도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줄을 서고 장사진을 펼친다. 바로 ‘맛집’들이 그것이다. 한 번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방송만 믿고 온 것이니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방송국에서 음식을 소개할 때면, 작가가 붙어서 온갖 사연을 만들어내고, 연출가가 음식을 화면에 알맞게 더욱 화려하게 꾸미기 때문이다.
 
막상 사람들은 그 스토리와 연출효과가 걷어진, 말하자면 화장기를 말끔히 지운 날것 그대로의 음식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줄을 서가며 먹어야 하니 실망하는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새로운 경험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입맛이야 제 취향이요, 타고난 것인데, 입맛의 주권을 방송국에 넘겨버려 벌어진 사단이니 방송국만을 탓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 단골이 많고 기술이 축적된 노포조차 살아남기 힘든 시장에서, 새롭게 창업을 한 이들에게 방송은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인천 신포국제시장에도 한 번 찾아왔었다. 신포시장 거리의 한자락을 차지한, 청년들이 주축이 된 ‘눈꽃마을’이 그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방송을 타고난 이후에 기세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많이 위축된 모양이다. 나는 여기서 이곳에서 창업을 하고 열심히 장사를 하는 분들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근자에 생겨난 아주 나쁜 시스템을 하나 비판하고 싶어서 굳이 눈꽃마을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다.
 
요즘은 방송에서 경력이 많고 이미 요식업에서 성공을 한 유명인들이 장사가 잘 안되거나 영세한 점포들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그런데 여기에 1인 미디어가 가세를 하고 있다. 방송이 한 번 나가고 나면 너도나도 줄을 서서 먹게 되고 온갖 매체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니, 1인 미디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만큼 좋은 소재 거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파워블로거나 유튜버와 같은 사람들이 그곳을 ‘검증’을 한답시고 즉시로 방문을 한다. 혹은 방송 이후에 장사가 잘 안된다고 하면 득달같이 찾아가 그 곤란한 모습들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조회수가 생명인 1인 미디어 세계에서 일종의 과잉이 없을 수는 없다. 심지어는 실제 방송에서 소개를 담당하는 유명인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흉내내가며, 무슨 대단한 미식가나 된다는 듯이 음식을 파헤쳐가며 ‘송곳’ 검증을 한다. 한편으로는 방송에 속아서는 안된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자기가 먼저 경험하고 알려주겠다는 ‘사명감’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건대, 이것은 검증의 탈을 쓴 ‘기생(寄生)’이 맞다고 생각한다. 방송 프로그램이 만드는 유행에 슬쩍 무임승차하여, 타인의 노력에 대해 함부로 평가를 하니 좋게 생각해볼 구석이 별로 없다. 입맛의 주권을 포기하고 방송만 믿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소위 ‘맛집’ 신드롬이라면, 이들 1인 미디어는 그 심리를 거꾸로 되파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방송이 선전하고 1인 미디어가 그것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파는 ‘탐욕의 고리’가 만들어져서 아예 고착화되어버린 것이다.
 
신포시장의 눈꽃마을도 이 탐욕의 고리에 갇혀서 낭패를 본 사례 중 하나이다. 당장에 이곳 점포를 비판하는 영상만 하여도 인터넷에서 너무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점포가 잘 되고 안 되고는 운영을 하는 주인 개인의 몫이 제일 클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방송을 타고 일종의 ‘청년 거리’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점포 하나가 아닌 거리 전체의 사활이 기로에 섰다는 점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 거리가 방송에 소개된 것도 해당 관할청인 중구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답답할 노릇이다. 중구청의 입장에서는 어떻든 시장의 사람 없는 거리를 다시 활성화시키고 싶었을 테고, 입주한 사람들에게는 생업의 문제이니 절박감으로 치면 더하면 더하지 덜할 수는 없었을 터이다.
 
까닭에 이러한 방송을 위한 지원이 조금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단골집’을 언급하였거니와, 경험과 신뢰가 쌓여야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장사이다. 생각해보건대, 순리라는 것이 있다. 유명해지고 나서 잘되길 바라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무엇인가를 잘해서 유명해지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물론 선전이 곧바로 이익으로 치환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줄 서서 먹던 집들이 한산해지는 것만큼 쓸쓸하고 애처로운 광경도 없다. 해당 관청인 중구청도 다시 이 거리를 활성화시키고 싶다면 굳이 미디어의 힘을 더 빌리려 하는 것에는 신중했으면 한다. 주변에 노포가 즐비하고 시장에 명물이 많은 지역적 이점이라도 잘 살려야 하지 않을까. 또한 굳이 예를 든 ‘눈꽃마을’의 경우도 그 미디어가 만들어낸 탐욕의 고리에 피해자로 남지 않고, 생업을 잘 이어나기시길 바라마지 않는다는 사족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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